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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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응… 성함이…?

예의를 갖췄지만 일전 김인철 장로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시건방짐은 여전했다. 그 순간, 민규는 사무실 전체를 둘러봤다. 지금 둘러보는 공간인 원장실의 거대한 위엄, 대기업 총수의 개인 집무실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역시 김인철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민규를 마주 보고 있는 얼굴 한 가득 소름 끼칠 정도의 수많은 주름을 품고 있는, 오히려 그 주름을 감추기 위해 정도 이상으로 포장한 과도한 메이크업이 더한 흉측함을 풍기는 신애원 원장 남궁숙애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랬다. 마치 그것은 김인철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동일했다.

- 민규입니다. 정민규.

- 아. 그렇죠? 정민규 목사님. 우리 담임목사님.

- 우리 담임목사님…이라면 원장님께서도?

-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곳 신애원은 율주제일교회의 것인데요. 이곳의 원장이 율주제일교회를 섬기지 않으면 어딜 섬기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남궁숙애가 그렇게 서두르고 조급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가는 사이 비서로 보이는 한 여자가 들어왔다. 비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진보랏빛 투피스에, 가슴팍에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브로치까지 꽂아 넣은 남궁숙애의 치장과는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결코 초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기업 회장실을 연상케 하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무장한 원장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박하고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여자가 들어와 민규의 자리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민규가 자연스럽게 잔을 집고 한 모금 마실 때였다. 남궁숙애가 고개를 숙인 사이 민규를 내려다보며 한마디했다.

- 이번 주 수요일에 왔다 가셨다고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민규가 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답했다.

- 예. 잠깐 들렀습니다.

그렇게 말한 민규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응접용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캘린더를 향했다. 토요일 오후 4시. 평소 같으면 주일 설교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와의 연락을 최대한 삼갔을 민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 민규는 직접 차를 몰고 사택을 떠나 율주제일교회 옆에 위치한 교회 산하 부속 시설 신애원 원장실에서 원장 남궁숙애와 마주하고 있다.

이렇듯 평소와는 다른 예외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는 이번에도 김인철이었다. 당일 오전에 걸려 온 김인철의 수족인 고동식의 전화를 받는 순간, 민규는 표현하기 어려운 중압감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고동식은 토요일엔 설교 원고를 작성해야 한다고 한사코 외출을 마다하려는 민규를 세련되게 몰아붙였다. 아니, 세련되고 말 것도 없었다. 고동식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김인철이었다. 다짜고짜 신애원 원장 남궁숙애와의 면담을 요구하는 자신의 제안을 강하게 거부하는 민규를 향해 고동식의 결정적인 말이 이어졌다.

'김인철 장로님이 원하십니다. 바쁘시더라도 잠깐만 시간 내시죠.'

'김 장로가 원하는 일' 그 말을 듣는 순간 민규는 감히 피해선 안 된다는 정신적으로 강한 인력에 사로잡혔다. 민규는 김 장로가 무슨 이유로 신애원 원장을 만나라고 지시했는지에 대해선 아예 질문조차 못했다.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상관없이 만나야 한다는, 더 정확하게는 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기계적인 의무가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었다.

그렇게 민규는 토요일 설교 준비의 원칙을 깨고 신애원 원장 앞에 마주섰다. 원장 남궁숙애는 이미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민규가 김인철의 지시에 의해 자신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잔인할 만큼 여유롭고 과장된 미소까지 머금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목회자에 대한 정중한 예의로 포장되었지만 남궁숙애의 이어지는 말은 권고를 넘어선 일종의 통보 내지는 경고였다.

- 정 목사님. 제가 할 말이 있는데요.

- 예. 말씀하세요.

원장과 시선을 마주하기 싫었던 민규는 연신 잔을 내려다보며 커피 마시기에 집중했다. 평소엔 커피 마시기를 즐기지 않았던 그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커피를 홀짝거리는 것조차 하지 않으면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숙애는 자신의 시선을 부러 피하는 민규를 향해 여전히 미소 지은 얼굴로 말했다.

- 다음부터 이곳에 오실 때는 율주제일교회 권사인 제게 먼저 방문 의사를 밝혀주세요.

- 예?

- 그렇게 함부로 오시지 마시구요. 그게 뭡니까. 게다가…

민규가 남궁숙애에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 갔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엔 이미 웃음기가 사라진 뒤였다. 천박한 눈화장, 짙게 그린 마스카라 너머로 숨어 있던 섬뜩한 눈동자가 날카롭게 움직였다.

- 김정은 선생과 함께 오셨다고요?

-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잘못된 게 아니라고요?

- 김정은 선생은 이곳 신애원의 돌봄 교사로 알고 있어요. 그분과 함께 이곳을 시찰한 게 담임목사로서 못 할 일을 한 겁니까.

- 한마디만 할까요?

- ……?

- 김정은. 그 년은 미친년이에요.

- 원장님!

- 목사님. 소문이란 거. 그것도 율주시 원주민들 거의 전부가 알고 듣고 인정하는 소문이라면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닐 수 없어요.

- 원장님. 대체.

- 제 말 막지 말고 끝까지 들어요!

- ………

- 그 더러운 썅년은 칠순이 다 되는 내 남편한테까지 꼬리 치는 창녀예요. 그러니 그 나이 되도록 결혼도 안 하고 제발 꺼지라는데도 교회와 이곳 주변을 얼쩡거리며 뭐 하나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어슬렁거리는 쳐 죽일 년이라구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남궁숙애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지점을 놓쳐 버린 듯 보였다. 민규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자, 남궁숙애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김인철 장로님이 이 소식 듣고 매우 불쾌해하셨다는 거 명심하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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