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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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는 악몽을 꾼 느낌이었다. 단지 지체장애인 시설을 둘러보고 온 것뿐이다. 더욱이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정부와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부러울 것 없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었다. 시도 단체,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신애원의 존재를 매우 눈여겨보며 장애우 돌봄 시설의 선도적 모델로 제시할 정도였다. 지역사회와 종교 시설이 긍정적인 유대와 협력을 일궈 낸 상생의 첫 사례로 율주제일교회가 운영하는 신애원을 거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민규가 외부 언론을 통해 들어 온 신애원이었을 뿐이다. 정은의 보이지 않는, 이른바 침묵의 소리에 이끌려 바라본 민규에게 펼쳐진 신애원은 설명하기 어려운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곰팡이 가득한 방, 설핏 살펴만 봐도 알 수 있는 구타의 흔적, 더 이상의 주눅 든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이 가라앉아 있는 원생들의 일그러진 무표정, 죽음의 위협마저 더 이상 위협으로 다가올 수 없을 정도로 짓눌려 버린 타성으로 가득한 그들의 모습에서 민규는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알아 온 신애원의 겉모습과 너무 다른 실상에 경악했다.

신애원 1층 입구. 본의 아니게 이뤄진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의 시찰 이후, 정은은 민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목사님.

- ……

-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하셔야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 여기? 신애원을 말하는 건가요?

- 이곳과 교회요.

-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 이곳의 아이들을 구원해야 해요. 그리고 교회두요.

- 구원? 그게 무슨 말이요? 구원이라니.

- 목사님은 지옥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 ……

- 지옥은 바로 여기예요. 절망조차 할 수 없는, 숨 쉴 수 있는 어떤 통로도 막혀 버린. 이곳보다 더한 지옥은 없어요. 이곳은… 하나님도 버린 곳이에요.

- 김, 김 선생. 잠깐만.

- 말씀하세요.

- 대체 무슨 근거로 이곳, 신애원이 지옥이라고 말하는지 난 이해가 안 돼요.

- 보시지 않았나요?

- 뭘 말이요? 혹시 지금 아이들이 자는 방의 비좁음, 아이들의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 그걸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그건 지엽적인 문제예요. 그리고 난 지금 이곳 신애원을 처음 본 거요. 처음.

- 목사는 원래 보이는 세계 너머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배후의 진실을 더 확실히 보려고 미국에 가신 거 아니었나요?

미국행에 대한 비난처럼 들리는 그 말이 민규의 심기를 자극했던 걸까. 민규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 목사를 무슨 신이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목사도 그냥 사람이요.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은 무슨. 진실은 본래 규명되어야 진실이요.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확인되는 사실. 그게 진실 아닌가.

민규가 소리 높여 말하자 정은의 표정이 더 무겁게 굳었다. 민규가 발끈한 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보긴 어려웠다. 그 반응은 민규를 향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망, 그 절망의 마지막에서 호소하는 절규에 가까운 신음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킨 정은이 말을 이었다. 방금 전보다 한층 더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 정말 진실을…… 진실을 알고 싶으세요?

- 그렇소. 내 눈에 드러난 진실. 당신이 이곳이 지옥이라고 부르짖던 그 진실을 직접 봐야만 믿을 수 있단 말이요.

- 민규 씨.

갑자기 정은이 호칭을 목사에서 민규 씨로 바꿨다. 그렇게 말한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민규는 정은의 모습에서 청년 시절의 그녀를 보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민규가 정은을 좋아할 수밖에 없던, 사랑해 주고 싶을 수밖에 없던 격동의 순간에는 언제나 정은의 부드럽지만 절박하고 안타깝게 흐느끼는 감정이 호소가 있었다. 그 감정의 호소에 민규는 더 한층 다가서고 싶었다.

- 말해요. 김 선생… 아니.

- ………

- 정은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정은의 눈빛도 함께 흔들렸다. 민규는 순간 지대한 혼란을 느꼈다.

'뭘 망설이는 거야. 대체 뭘?'

한참을 안타깝게 자신을 쳐다보던 정은이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 진실을 보게 된다면 민규 씨. 당신은 벗어날 수 없을 거야.

-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말하는 거 아니었어?

- 민규 씨.

- 말해 줘. 알고 싶어. 진실을.

민규의 마음속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파동이 일어났다. 그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한 것이었다. 자신을 자극하던 정은을 향한 변명이나 반발 작용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정은을 통해 나타난 자신의 오래전 모습, 그 모습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동경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여기에서마저 진실을 감추고 싶진 않아.'

진실을 알고 싶다는 다짐을 천형의 선고처럼 내린 민규에게 정은은 더 이상 날카롭게 굴지 않았다. 이제 민규는 자신을 내내 짓누르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떨쳐버리기 힘든 불길함이 민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1층 입구 앞에서 정은과 대화를 나누던 민규의 시선이 그 자신도 모르게 입구의 반투명 유리문을 향했다. 짙게 차양이 내려진 유리문 너머로 서 있는 그 누군가. 윤서주란 이름을 가진 더없이 슬프고 강렬한 눈빛을 품에 안은 소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저 아이도 정은과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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