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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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의 수요일. 교회는 사순절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재의수요일이었다. 그날은 민규가 정은과 만나는 날이었다. 정은이 민규에게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월요 새벽 예배에서 정은을 만난 이후, 그 만남의 마지막 자리에서 정은은 '부탁'이란 말과 함께 만나자는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민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은에게 일종의 원죄와 같은 두려움의 굴레를 끌어안고 있던 민규는 정은이 말하는 어떤 요구에도 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정하지 못했다. 여전히 민규는 정은 앞에서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건 14년 전, 일방적 헤어짐에 대한 뿌리 깊은 죄책감의 결과였다.

당사자인 정은은 전혀 그렇게 반응하지 않겠지만 민규에게 들려오는 율주제일교회 피아노 반주자 김정은에 대한 풍문은 들어주기 어려운 추잡함 일색이었다. 이제 막 교회에 부임한, 그것도 이 지역 소문을 제대로 접하기도 어려운 고립된 담임목사 신분이던 자신에게까지 풍문이 들려왔다면 정은에 대한 내용이 율주시 전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 거란 짐작이 민규에게 충분히 가늠되었다.

풍문의 내용은 민규의 귀를 더럽힐 정도로 지저분했다. 정은이 겉으로는 교회에 충실하고 교회가 운영하는 정신지체아 자립 시설인 신애원의 돌봄 교사로 착실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창녀에 가깝다는 게 악소문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무서웠다. 소문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 사이에 기정사실화되었다.

소문을 듣고 난 뒤, 민규는 왜 월요일 새벽과 주일 예배 때 사람들이 김정은을 때론 집어삼킬 듯 노려보거나 혐오 동물 바라보듯 인상을 구기며 외면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율주제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은을 둘러싼 소문을 믿고 있는 눈치였다. 피아노 교사에다 돌봄 교사로 일하는 정은이 순진한 사람들을 꾀어 불륜이며, 스캔들이며, 가족, 이웃 가리지 않고 저지르고 다녔다는 것, 그 때문에 임신한 아이를 낙태한 것도 벌써 여러 번이며, 율주제일교회를 비롯해 율주시 남자 중에 정은과 관계 맺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소문이 먹구름처럼 정은을 에워싸고 있었다. 민규와 동갑내기인 정은이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있는 이유 역시 창녀처럼 몸을 함부로 놀리고 다닌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민규는 그들의 소문 중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했다. 아니, 설령 백번 양보해 그게 사실이다 해서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었다. 민규는 정은의 말과 태도, 행동보다도 그녀의 눈빛에서 진실을 읽었다. 정은의 눈빛에는 흔히 말하는 세속적 탐욕이나 일말의 물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규가 알고 있는 정은은 결코 그런 부적절한 시도를 감행할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은이 파리 목숨에 가까운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 자리에 앉은 자신에게 저녁에 독대를 요청한다는 건 민규로 하여금 그 먹구름 가득한 소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소문의 주범들은 대부분 율주 시민들이었다. 그들 대부분 정은을 세속적이고 비윤리적인 여자로 낙인찍은 상태였다. 민규는 정은과의 만남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은은 이런 민규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아님, 원래 천성이 본래 다른 이의 감정 상태와는 무관해 보였기에 정은은 민규가 당연히 약속 장소에 나올 것으로 믿는 눈치였다.

그렇게 수요일 저녁이 돌아왔다. 수요일 저녁. 민규는 정은이 말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정은이 말한 곳은 공교롭게도 교회였다. 교회 중에서도 현재는 사용이 불가해진 장소. 비밀 장소가 되어 버린 교회 3층의 복도 끝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이미 오래 전에 문을 걸어 잠근 3층은 지난주 한 장로와 동행하던 장소였다. 복도 끝 입구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저녁 8시. 저녁 예배가 이제 막 끝날 때쯤, 몇 되지 않는 수요 예배 참석 교우들이 2층 대예배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복도의 끝. 정은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민규는 3층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불부터 점등하려 했다. 하지만 스위치가 고장 난 걸까. 아님, 전등이 고장 난 걸까. 3층 복도의 불은 끝내 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이 꺼져 있어도, 복도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외부 건물 조명에만 의지해야 하는 어둑어둑함에 불구하고, 복도 끝에 서 있는 정은을 알아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정은과 눈을 마주한 민규가 가장 먼저 질문을 꺼냈다.

-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죠?

정은이 바로 답했다.

-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잖아요.

- 가야할 곳…? 어디를요?

- 신애원이요.

신, 애, 원. 왜 정은으로부터 신애원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의 온몸에 뜻 모를 소름이 돋았는지 민규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해를 앞서는 건 몸의 반응이다. 공포, 두려움, 슬픔, 분노와 같은 즉흥적 감응은 비록 그것이 즉흥적으로 보일지라도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여 온 근본적인 생각과 맞닿아 있는 법이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민규는 어느 순간부터 신애원이란 교회 부속 정신지체 장애인 시설에 대한 거부감과 뜻 모를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이윽고 정은은 닫혀 있던 복도 통로 문을 개방했다. 자물쇠를 다루는 솜씨가 꽤 익숙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규가 물었다.

- 왜 그곳에 가야 하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민규의 뜻은 분명했다.

- 내가… 왜 그곳에 가야 하냐고요?

정은은 민규의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 직접 보고 난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아요.

- 저기 김 선생. 난… 난 말이요.

순가 민규가 망설였다. 정은을 창녀, 부적절한 여자, 이중인격자로 몰고 있는 수많은 교인의 데스마스크 같은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민규에게 정은이 못 박듯 한마디했다.

- 나에 대해 속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 ………

- 그럼 따라와요.

그 말을 끝으로 정은이 열린 복도 통로 문 사이로 들어섰다. 유리 구조물로 마감된, 신애원으로 연결되는 구름다리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결국 민규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정은에 대해 남아 있는 죄의식을 털어 내기 위해서라도.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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