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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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민규는 새벽 시간부터 교회를 찾았다. 최근 교회의 흐름이 새벽 예배를 차츰 폐지하는 추세였지만 율주제일교회는 달랐다. 금요 철야 예배가 있고 난 다음 날인 토요일 새벽에도, 그 다음 날 일요일 새벽에도 예배를 진행했다. 덕분에 율주제일교회는 교계로부터 얄팍한 시대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기도하는 교회, 흔들리지 않는 교회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민규가 교회를 찾은 건 지난번처럼 새벽 예배에 참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교회에 도착한 민규는 정확히는 교회 주차장이 아닌 그곳으로부터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신애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새벽 6시란 사실에도 아랑곳 않고 신애원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율주의 안개는 지독했다. 민규가 차에서 내렸을 때, 5층짜리 신애원 건물이 희뿌연 안개의 숲에 에워싸인 채로였다. 그 희미한 형체가 민규의 시야에 늪 속에 파묻혀 버린 수많은 의문의 전사자들, 그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유골들의 윤곽처럼 비쳐졌다. 섬뜩한 오한이 일순간 민규를 감싸 안았다.

그래도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민규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애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김인철이 선사해 준 사택의 신발장 안에 한 가득 담긴 명품 구두 중 하나를 착용한 민규의 발자국 소리가 자갈밭과 같은 신애원 입구 도로를 걸을 때마다 자박거리는, 제법 불규칙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짙은 새벽안개, 그 안개의 늪 속에 파묻혀 있던 신애원 건물 외관이 조금씩 민규의 눈앞에서 선명해졌다. 건물 외관이 선명해지면서 한 가지 일관된 내부의 시선들이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신애원 3층 창문 너머로 창문을 깨뜨릴 듯 가까이 붙은 채로 민규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은 하나의 창문에도 예외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은 표정과 눈빛으로 민규를 보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민규의 걸음걸이를 더 강하게 채근했다.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민규의 눈앞에 다시 그 소녀, 윤서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서주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민규를 바라본 채 정문 앞을 지키고 섰다. 민규는 신애원에 들어서는 입구가 자물쇠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섬뜩해 보이는 쇠사슬로 봉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윤서주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아직은 초봄의 날씨 탓일까. 민규가 입을 열자 새벽 차가운 공기와 뒤섞여 하얀 입김이 거칠게 배어 나왔다.

- 네가 전화한 거야?

민규의 말을 들은 윤서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가 슈트 상의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 이내 스마트폰 너머로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 비명 소리는 단순한 울먹임이 아니었다. 제대로 소리칠 수도 없는 극한의 공포가 영혼을 짓누를 때, 그 짓누름을 견디고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짓 짜낸 신음이었다. 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명과 아우성. 그 소리를 듣는 민규의 얼굴은 다시금 일그러졌지만 윤서주는 일말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눈동자의 떨림도 없이 또렷이 민규를 바라봤다.

어젯밤 일이었다. 신애원 원장 남궁숙애에게 지독한 수치의 여진을 남기는 경고를 들은 뒤 돌아온 민규는 도저히 설교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첩을 꺼내들고 지난 주처럼 아브라함과 이삭, 그 사이에 일어난 번제단 사건에 대한 나름의 기억을 반추해 몇 개의 단어를 수첩에 적어 넣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민규가 수첩에 적어 넣은 단어가 자꾸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하나의 단어가 반복해서 쓰여 나갔다.

'비명… 비명'

비명이란 한 단어가 민규의 수첩, 그 한 면을 빼곡히 채워 나가던 순간이었다. 그때, 걸려 온 전화 한 통. 액정엔 새롭게 저장된 '김정은 선생'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민규로서는 정은의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은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외압과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어쩌면 민규가 이곳, 율주제일교회에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정신의 끈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기울어진 자신의 마음을 거역할 자신이 민규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받은 전화. 하지만 정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끔찍하게 터져 나오는 아이들, 그 수효를 가늠할 수 없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 도살장에 끌려 나온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아 버린 끔찍한 절박감이 민규를 미치게 했다.

밤새도록 그 소리에 시달린 민규는 결국 일요일 새벽, 이곳 신애원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입구에서 민규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정은이 아니었다. 윤서주. 그 아이였다. 민규가 소리치듯 물었다.

- 김 선생은? 정은이는 어디 있어?

- 선생님을 왜 여기서 찾아요. 주일학교 교사인 선생님은 교회에 있잖아요.

- 이 소리. 너도 들었지?

- ………

- 너도 들었어. 모를 리가 없어. 아이들의 멍 자국, 그 불안에 찬 표정들. 맞아. 이건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 ………

- 비켜! 들어가겠어. 들어가서 확인하겠다고!

- 들어가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 뭐?

민규가 쇠사슬로 단단히 동여 묶인 입구 문을 거칠게 흔들 때였다. 민규의 행동을 가로막은 건 냉소적인 분위기로 무장한 윤서주의 말이었다.

-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더 끔찍해질 걸요.

- 무슨 소리야! 넌 도대체 뭐야?

윤서주가 자신을 다그치는 민규를 향해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 한 개를 건넸다. 본 적이 있는. 액정이 열리면 자신의 이름으로 찍힌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이 넘는 정은의 것이었다.

- 먼저 김 선생님을 찾아가요. 여기 와서 이러지 말고.

정은의 스마트폰을 대신 손에 쥔 민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눈길의 방향은 윤서주였다. 내내 살아 있는 상태라고는 보기 어려운 죽은 듯한 무표정을 품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민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민규가 말문을 열었다.

- 넌. 여기 왜 있는 거야? 어떻게 나온 거야.

- ………

- 그리고 뭘 본 거야?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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