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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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민규의 솔직한 속마음은 그랬다. 정은이 말한 양복 차림의 남자,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이제 오전 11시를 훌쩍 넘어섰다. 스마트폰 진동은 고장 난 기계의 그것처럼 계속해서 울렸다. 오히려 정은이 걱정스럽게 물을 정도였다.

- 전화 …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규는 정은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여전히 남궁숙애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신애원 원장이 자신을 훈계하던 원장실에 남아 있었다. 또한 그의 눈은 원장실 소파 맞은편 서가 중앙에 설치된 벽붙이용 대형 티브이에 고정되었다.

지금 민규가 노려보고 있는 티브이는 시커먼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재연되지 않았다. 민규는 티브이 전원을 다시 켤 자신이 없었다. 방금 전 보았던 충격적인 장면의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속 소리에 이어 직접 촬영한 동영상 안에 등장하는 신애원 아이들. 그 아이들의 비명 소리와 마주하는 순간 민규는 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생각을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민규가 말문을 열었다. 정은은 민규의 오랜 침묵을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 누구죠?

- 목사님.

- 저 화면 속의 인물. 아이들을 유린한 파렴치한 가해자.

- …

- 저 악마가 누구냐구요.

- 이제 … 궁금해지신 건가요?

민규가 그제야 정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정은은 원장실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열린 문 너머로 아이들이 보였다. 꾀죄죄한 머리통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어느새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순간, 아이들의 눈동자가 민규의 가슴에 와 박혔다. 숨죽여 원장실 안에 서 있는 민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엔 설명하기 어려운, 하지만 그만큼 분명한 절박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민규를 할퀴듯 노려보며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충동을 자극하고 또 자극했다.

'뭐해요. 다시 티브이 전원을 켜요! 티브이 전원을 켜서 그 악마를 확인해요! 그 악마가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똑똑히 보라구요!'

민규가 물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 보안이 이렇게 허술한데 원장은 어떻게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죠?

- 자신만만이요?

- 누구나 쉽게 이 끔찍한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죠.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 그게 뭐죠?

-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누구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 보려 하지 않는다고?

민규가 정은의 말뜻을 헤아려 보려던 그때였다. 정은이 민규가 현재 생각하는 그 생각을 대신 말해 주었다.

- 신애원에 있는 모든 이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 누구를?

- 그 악마를요.

- 안다고?

- 악마가 버젓이 날뛰는데도 … 알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거에요.

- 뭐라고? 침묵?

민규의 치가 떨렸다. 정은은 그 순간, 민규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빼앗아 들었다. 순간 민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은을 바라봤다. 정은은 민규를 보며 물었다. 질문과 동시에 티브이 전원을 켰다.

- 당신도 침묵할 건가요?

- …

- 저 화면 속 아이들, 지금 저 문 밖에 서서 우릴 숨죽여 바라보는 아이들이에요. 저 아이들이 당한 거라고요. 악마는 이곳 신애원 사람들 모두의 침묵을 등에 업고 자신만의 소돔에 완전히 취해 있어요.

- 악마가 … 그 악마가 저 장면 속에서 등장한단 말이요?

- 보시겠어요? 보셔야 해요.

- …

- 지금 등장해요. 그 악마가.

정은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한 번 티브이 화면에선 한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녀의 두 팔, 다리를 묶고 가학적인 성 학대를 시작하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이제 알몸 차림으로 변해 있었다. 남자의 구릿빛 몸은 단단하고 견고해 보였다. 마치 오랜 시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투사의 느낌이었다. 소녀가 그 악마 앞에서 계속해서 울었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하지만 악마는 소녀의 간절한 바람을 무참히 짓밟았다. 악마는 방금 전 같은 원생 남자아이에게 당한 소녀를 다시 한 번 잔혹하게 유린했다. 유린의 순간 악마인 남자가 무언가에 도취된 듯 카메라 방향을 자신의 얼굴을 향하도록 했다. 남자는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자신이 승리자란 쾌감, 아슬아슬한 상황을 즐기는 쾌락주의자다운 표정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악마를 발견한 순간, 민규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민규에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시선을 돌린 그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들이 직접 당한 비명 소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원장실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바라본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 티브이 꺼요! 어서!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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