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 1968~1755) 프랑스 계몽시대의 정치사상가이자 법학자.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영국의 정치체제와 로크의 영향을 받아 절대군주제를 비판하면서, 국가의 기원과 법의 본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군주제를 입헌주의의 기초 위에 세우고자 하면서, 국가 권력 내부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의 중심 질료가 '통치와 권력 문제'에 있다는 내용을 말하다가 이를 반대하는 견해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악한 정치론' 말고 시민의 각성과 정의감을 고취하는 '선한 정치론'을 말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시민만 깨어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텐데, 혹은 깨어 있는 시민 1백만 명만 모으면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데, 왜 자꾸 통치나 권력의 문제를 말하는가 하는 항변이기도 했다. 그러나 통치와 권력의 문제를 빼고 정치의 문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다시 강조해야겠다. 괴롭지만 그것이 인간의 정치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의 출발은 통치(government)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자각하는 데서 비롯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통치하고 잘 통치받는 것을 이상적인 정치 상황으로 보았다. 이는 민주주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공동체를 다스려 보는 일은 공적 윤리 중 으뜸으로 여겨졌다. 타자를 다스린다는 것과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것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문제라고 인식한 이들은 민주주의자들이었다. 현대 민주주의가 통치 참여를 더 이상 시민의 의무로 삼고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좋은 정부와 좋은 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이 정치의 중심 문제인 점은 변함 없다.

자연과학자의 연구 내지 관찰 대상이 '자연'인 것처럼 정치철학자들의 관찰 대상은 '정치적 자연'이다. 정치적 자연 문제는 '질서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어떻게 하면 무질서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정치적 우주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통치는 곧 공동체에 대한 사랑 내지 충성과 병행하는 의미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철학자들은 정치적 관계의 마음이 해체되고 충성하는 유대감이 깨졌을 때를 두려워했다. 

근대 사회계약론자가 자연 상태에 대한 가정으로 정치적 질서의 체계를 구축하려 한 것도 갖은 의미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정초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 역시 "먼저 통치가 가능해야 하고 그 뒤 통치의 자의성을 제어해 가는 것"이 인간 사회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기본 원리라고 생각했다.

고대 정치철학자들이 목적으로 삼은 것은 좋은 정체(politeia), 즉 '질서 잡힌 사회'(Well-oredrd sociery)였다. 어떤 정치 이론가도 무질서를 제창한 적은 없다. 질서는 목적을 가진 인간들의 삶을 가능케 하는 평화와 안전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좋은 삶은 정치 공동체의 좋은 질서 없이 불가능했다. 질서는 삶을 보호하는 소극적 의미에서 자유를 향유하는 적극적 의미까지, 좋은 것들로 이루어진 체계였다. 공적 질서 속에서 공적 참여와 자기실현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조차 "신이 목자(통치자)였을 때는 그 어떤 정체도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스스로 공동체를 이끌어야 했을 때 직면하게 된 상황과 대응책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말했다.

"제우스는 전체 인류가 전멸할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헤르메스를 그들에게 보내어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 및 우애와 화해의 유대로서 존중과 정의를 전달하게 했다."

요컨대 질서를 가져오는 원리를 터득하고 공유하지 못하면, 어떤 정치 공동체도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선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 없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나 국가는 없다. 더 나아가 어쩌면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법이 제 기능을 할 때에만 나올 수 있는지도 모른다. 통치나 법, 권력, 질서가 선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개개인들이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치가 서 있는 기초 원리가 아닐 수 없다.

근대 자유주의는 개인 삶이 정치 질서와 큰 관련이 없다는, 사고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정치적 인간에 대해 매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정치적 질서와 통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법의 정>신󰡕을 저술한 몽테스키외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 행동은 연약함에서 비롯되지만 사회생활을 하자마자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은 사라지고 전쟁 상태가 개시된다고 보았다. 법의 지배(Rule of the Law)와 견제・균형(Check and Balance)의 원리를 구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 지배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일반 이익과 관계되어 있고, 정치적 권위는 사회의 이름으로 표명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권위와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존 로크는 마지못해 인정했고 장 자크 루소는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정치적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마키아벨리의 기여는 특별하다. 그의 가장 큰 기여는 인간 정치에서 갈등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 있다. 이전의 정치에서 갈등은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갈등과 파당은 부정되어야 했고 정치는 그런 갈등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문제로 이해됐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갈등과 싸움은 없앨 수가 없다. 따라서 '갈등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번영이 가능한 공동체를 구상해야 했다.

▲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m, 1751~1836). 미국의 네 번째 대통령으로 평가되기 보다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그는 지금도 헌법 해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연방주의자논집을 3분의 1 이상 작성했다. 미국 수정헌법의 첫 열 개 조항의 작성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권리 장전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정치 이론가로서 그는 새로운 공화국은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국가 권력을 그 기능에 따라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누어 제도화한 '3권 분립론'을 사실상 매디슨의 독창적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1971년, 매디슨은 재정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과 결별하고 연방주의자의 핵심 정책인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하며,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그들이 민주공화당이라 부른 미국 최초의 정당을 창립했다.

애덤 스미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했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갈등의 원천인 열정(passion)과 야심(ambition), 파당(faction)은 없앨 수 없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디슨은 야심과 파당은 인간의 정치적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이를 없애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을 파당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 효과를 다루는 데 두었다. 매디슨은 선동에 취약한 소규모 사회라면 파당의 파괴적 효과를 막을 수 없겠지만 일정한 규모 이상의 정치 공동체라면 '대표의 원리'를 통해 파당의 유해함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 이후 정치철학이 이뤄 낸 가장 거대한 전환은 갈등과 질서를 배타적인 요소가 아닌 상호 의존적이고 변증법적인 요소로 이해하는 사고다. 정치는 갈등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갈등의 해결과 재조정을 촉진하는 활동 양식이기도 하다. 변화와 안정,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질서와 갈등 등은 모두 이율배반적인 짝이자 서로가 존재하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한 것으로 간주됐다.

정치철학의 문제의식도, 개인의 생명과 소유물 또한 공동체를 규율하는 법과 질서 그리고 이를 집행할 정당한 권력 없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에서부터, 잘못된 공적 권력 내지 정당하지 못한 공적 권위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포괄하게 되었다. 권력과 통치를 선용하는 문제와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억압이고 폭력일 수 있다는 문제 사이의 이율배반적 상황 위에 오늘날의 정치와 정치학이 서게 된 것이다.

고대나 현대나 어느 시대든 최선의 정치체제에 대한 실천적 고민은 정치철학의 최대 관심사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스티븐 스미스(Steven B. Smith, 1951~) 교수에 따르면, 그런 지식 내지 지혜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고대의 철학자들은 '에로스'(Eros)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좋은 질서, 좋은 정치, 좋은 공동체를 구현하고 그 속에서 좀 더 자유롭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에로틱한' 활동으로 여긴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정치가 내지 정치학자의 과업으로 보인다. 보람 있는 삶, 가슴 뛰는 삶, 아름다운 인생을 살 가능성이 더 커진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정치가와 정치학자가 어찌 섹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을 기피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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