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1929년~).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심리학자이며 언론인이다. 인간의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합리적 토론으로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앞에서 무기력한 피동적 객체의 지위를 극복하는 문제, 혹은 근대 시민사회의 적극적 구성 주체이자 스스로 국가권력의 정당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문제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정치가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성의 문제를 하나 더 살펴보자. 통속적으로 말하면 '소통을 잘하면 된다'는 주장과 '권력을 선용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갈등을 뜻한다. 전자를 '철학적 인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치적 인간'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정치철학의 전통 속에서 현대 정치의 이상적 모습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저널리스트인 위르겐 하버마스를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공적 영역의 위기'라는 주제를 탐구해 왔다. 그 핵심은 국가 통제와 경제(자본)의 지배적인 영향력에서 어떻게 자율적인 공적 영역을 복원할 것인가에 있다. 이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이해에 기초해 합리적 토론을 이끌 비판적 시민으로, '공중의 형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미의 공적 영역을 생각할 때마다 파당적 진영 논리나나 주관적 열정에 휘둘리지 않는 어떤 '이상적인 대화 상황'이 연상되곤 한다.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권력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좀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해 불편부당한 논의를 이끌어 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공적인 인간'을 상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수의 관점이 공존할 수 있는 토론 상황이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하버마스적인 공적 영역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상과 닮아 있다면, 그때의 시민과 정치가는 권력적이고 파당적인 관점에서 자유로운 '철학적 인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유행하게 된 '소통'이란 용어도 무의식적으로 비권력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사심 없이 소통만 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소통을 강조하는 철학적 인간과 달리 '정치적 인간'은 훨씬 더 현실주의적이고 투쟁적인 느낌이 있다. 독일이 낳은 최고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가가 정치를 "권력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 또는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했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이란, 라틴어로 호모 폴리티쿠스(Gomo politicus)라는 말처럼, 로마 공화정의 전통과 닿아 있고, 통치 내지 지배와 같은 강한 주제를 함축하는 듯 보인다. 아니면 "모든 인간의 일반적 경향, 죽음에서만 멈추는 영속적이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권력 욕구"에 기초를 두고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라고 하는 '인위적 인간'(artificial man)을 불러들인 토마스 홉스의 문제의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언뜻 살벌해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정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는 없다.

하버마스적인 공민이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불편부당한 판단을 가지 시민을 생각하게 한다면, 현실주의 정치철학의 전통에서 정치적 인간은 권 문제 때문에 존재하고 따라서 권력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정치 본성을 생각하게 한다. 분명 정치적 인간은 권력과 지배의 문제에 과도하게 경도되 위험성을 갖게 한다. 반면, 철학적 인간으로 구성된 공적 영역은 정치가 차지하는 위치가 애매하다는 한계가 있다.

철학적 인간의 관점을 최대로 확장해 본다 해도, 그때 정치는 정당성 내지 규범적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가 거의 전부 아닐까? 혹은 정치란 것이 공적 영역에서 이성적 논의에 비례해서 정당화 되는, 수동적인 차원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촛불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사회 진보파들의 정치관도 대개는 이런 차원에 머물 때가 많다. 그럴 경우 소통에 나서지 않는 국가권력을 규탄하고 항의할 수는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만 하고 돌아서면 끝날 때가 많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나아가 조직적 주체가 되는 일, 그래서 정치를 민주적 실천의 중심 영역으로 생각하는 일은 소홀히 다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Myles Dworkin, 1931~2013)은, "정치를 대학원들이 청학 세미나 하듯 운영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정치적 인간은 철학적 인간으로 포괄 혹은 대체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 인간의 현실에 눈감지 않겠다는 결의 없이는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식과 대화 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분명 철학적 인간은 공적 문제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대화 혹은 그러한 인식 및 대화의 능력을 제고하는 문제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갖는다. 이를 통해 현실의 정치에서 발견되는 '퇴행의 악순환'을 끊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문제를 탐색하려 한다. 반면 정치적 인간은 공적 문제를 둘러싼 갈등적 상황을 전제하며, 인간의 인식 능력 그 자체에 대해서도 환상을 품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시민들 모두를 아리스토텔레스로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2천 5백 년 전 인간의 정치적 인식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를 회의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적인 조건과 환경 및 정보 능력은 계속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정치가 퇴행과 개선을 반복하는 순환적 상황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정치가 갖는 고민은 별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완전함이나 확실성보다는 불완전함과 불확실성 속에서 정치의 미덕을 발견하는 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적 인간은 이런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마도 철학적 인간과 정치적 인간은 상호 배타적이기보다는 인간의 정치가 안고 있는 딜레마적 상황의 두 측면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적 문제에 대해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춘 시민 내지 공민으로 이루어진 정치 공동체', 사실 이것만큼 강력한 정치 비전은 없다. 분명 우리는 이상적 최선에 대한 철학적 모색을 중단할 수 없다. 아니 그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여 좋은 삶 내지 정의로운 사회의 형상을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삭막한 정치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상의 눈만으로 현실의 권력관계와 투쟁, 전쟁, 갈등, 이견을 다루고 헤쳐 나갈 수는 없다. 정치의 현실이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근본적인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과 이견, 차이 등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적응하고 개선하고 바꿔 나갈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적 지혜와 이성이 왜 필요한가를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정치란 인간 현실의 딜레마적 상황 위에서 그 역할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진리나 과학 위에 정초할 수가 없고, 그렇기에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이론에 의해 계도될 수도 없다. 그런 불확정성 내지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 작용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가? 이상적이고 완전한 인간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목적 혹은 그것을 지향하는 정치 비전을 갖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많은 고뇌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치 비전을 수용할 것인가?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을 기피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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