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자유의 확립 등에 주력했다.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버지니아의 몬티첼로로 돌아가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해 민주적인 교육 보급에 노력했다. 자연과학과 건축학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몬티첼로의 성인(聖人)'으로 불렸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난 청교도들은 신을 기쁘게 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독립 선언서의 초안 작성자이자 미국 최초의 정당인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을 만든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25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에서도 한 문장, 한 문장 되새길 만한 명문이 아닐 수 없기에 영어 원문을 병기해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자명한 진리로 간주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러한 권리 가운데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가 있다. 이러한 권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부는 피통치자의 동의로부터 자신들의 정당한 권력을 도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해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은 민중의 권리가 된다. 그때 민중은 정부를 교체하거나 폐지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본래의 원리에 기초를 두면서도 피통치자의 동의에 맞는 방식으로 정당한 권력을 조직할 수 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hat to secure these rights, Governments are instituted among Men, deriving their just powers from the consent of the governed; that whenever any Form of Government becomes destructive of these ends, it is the Rights of the People to alter or to abolish it, and to institute new Government, laying its foundation on such principles and organizing its powers in such forms, as to them shall seem most likely to effect their Safety and Happiness.)

신은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스스로 다 실현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렇기에 우리가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신비로운 은총을 통해 우리를 이끌면서도 인간의 문제 가운데 대략 절반가량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갖게 했다. 그러한 자유의지에는 신의 뜻과 사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이성 내지 합리적 인식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와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의 능력도 있다. 나아가 누군가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해야 할 윤리적 책임 의식도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그런 자유의지가 발현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세계관,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의 권위적 해석만이 용인되었던 중세 가톨릭의 여러 문제에 대해 종교개혁은 기도와 은총을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는 평등하고 자율적인 개인을 탄생시켰다. 종교개혁 없이 현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등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변화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기본권으로 갖게 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종교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나아가 관용의 가치를 옹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간 스스로의 자치(self-rule)를 통해 이상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제아무리 좋은 정치의 질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성과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행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오죽하면 인간의 별칭이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the fallible)이겠는가. 신은 우리에게 다른 피조물이 갖지 못한 위대함과 동시에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이를 통해 신의 계획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 따라서 우리는 신을 기쁘게 하게 위해 좀 더 좋은 사회, 좀 더 나은 인간적 질서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렇게 해도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자각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과업을 안게 되었다. 누구도 그렇게 많이 알 수 없고 확고부동한 판단을 얻기 어렵다는 자각, 인간이 아무리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자세, 어느 하나의 주장과 판단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관점으로도 인간의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고 주장하는 것에 어느 정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에만 다른 피조물들로부터 배우려 하고, 이견을 갖는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다. 비록 기대한 만큼 성취하지 못해도 다시 또 노력하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세력의 범위를 넓히고 그들 사이의 신뢰도를 높여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절대자에 대한 인간적 경외는 바로 이런 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지 모르겠다.

"설령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갖게 해 주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제아무리 잘 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하며 좌절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고통과 고뇌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까? 정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교회에 순종하고 헌신하면서 영적으로 평안의 삶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현실 속에서의 헛되고 헛된 노력이 아니라 현실에 거리를 두고 영원하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정치란 완벽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완전하고 이상적일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못하기에 정치가 필요하고 또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란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지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을 기꺼이 담대하게 추구하는 일이자,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절감해야 하는 슬픈 측면이 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업 앞에 서 있다는 자각,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치가 갖는 본질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당연히 정치라는 과업은 위험하고도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에 절대자 앞에서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사실 이런 자세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 오늘밤 나는 조금 피곤합니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나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슬픔이 당신에게서 온 것이고, 당신이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 (65쪽)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을 기피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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