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맞이해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기독인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2월 1일부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4월까지 기독교와 정치학의 연관성을 설명합니다. 월·목 주 2회 총 20편의 글을 기고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기독인을 독자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까, 내가 아는 한 독실한 신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치학자이니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정치에 참여할 것을 권장하겠지만, 구원받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 기독인의 입장에서는 정치란 오히려 멀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정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관심사이자 썩고 더러운 곳이다. 그런 정치가 구원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경건한 신자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합리적 의심'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삶과 구원받는 삶이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아니라는 반론 또한 당연히 경청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인이기에 정치를 멀리하고 무관심해야 한다고 하면, 글쎄 그건 동의할 수 없다.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독인이라면 더더욱 '좋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회피할 수 없는 소명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해 나갈 텐데, 그 전에 아베 피에르 신부가 자신의 책,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도서출판 우물이있는집)에서 한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고 싶다. 그는 썩어 빠진 정치를 비난하며 투표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투표할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자들은 그 권리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던 자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 권리에 매우 익숙해서, 그것을 별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무언가 중요성을 깨달으려면 그것을 빼앗겨 봐야 한다. '정치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더럽기 때문에 난 차라리 투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화가 난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공익의 수호를 말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에 속하는 일이니까.) 그런 사람은 비열한 사람이다." (239쪽)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가'라는 제목으로 처음 강의를 한 건 2014년 봄이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주최한 인문학 강좌에서 정치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았다. 당시 나는 '인간으로서 목적이 있는 좋은 삶'을 사는 데 있어 정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조하고 싶어 이 제목을 정했다. 당연히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를 정치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 강의 내용도 그렇지 않았다. 아무튼 정치가 좋은 삶을 사는 문제와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강의를 잘 마쳤다. 그때 수강자 한 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종교적 구원의 문제로써 정치에 대해 말하는가 싶어 이 강의에 관심을 갖고 수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라고 소개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구원이라고 하니 종교와 관련된 주제로 기대했구나' 하는 생각에,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에도 부산과 울산의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와 부산가톨릭신학대학에서도 정치에 대한 강의를 했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 선교 훈련원과 서울 청파교회에서 있던 목회자들의 공부 모임에서도 같은 주제로 강의했다. 그때는 '정치의 발견' 혹은 '민주주의의 재발견' 같이 세속적으로 제목을 정했고, 강의 내용에서도 종교적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저 보통의 정치학자가 하는 정치 내지 민주주의론 강의처럼 보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구원받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있을 수 있을까?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015년 10월, 내가 학교장으로 있는 정치발전소에서 기독인을 대상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를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그런 난제를 만난 느낌이었다. 취지는 좋다 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청년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대표와 함께 강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가'라는 제목을 공유하면서도, 양희송 대표가 기독교 관점에서 보는 정치 문제를 다뤄 주면 내가 일반적인 정치학자로서 강의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강의 자료를 준비하면서 나를 괴롭힌 건 '그 놈의' 구원이라는 단어였다. 그냥 민주정치가 인간에게 왜 중요한가라는 내용만 말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것이 구원과 무슨 관련이 있지?'하는 누군가의 잠재적 질문 앞에 늘 속수무책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와 기독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오래전, 그러니까 1980년 중학교 졸업 후 추첨으로 배정받은 고등학교가 우연히 미션스쿨이었고, 싫든 좋든 매주 한 번은 채플 수업을 듣고 예배에도 참석해야 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교제해 결혼한 내 처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주일이면 같이 교회에 가야 하는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거의 35년 이상을 기독교 환경에서 살아온 셈이다. 그간 한 번도 기독교와의 관계 속에서 내 존재를 생각해 보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에서 이번 기회에 기독교와 구원 문제를 내가 전공한 정치학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강의 형식으로 말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미지의 경험에 대한 긴장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믿음이 약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그간 나 스스로 교회 안팎의 경험을 통해 판단했던 것을 객관화해서 말해 보면 어떻게 될까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다.

현장 강의는 2015년 12월에 있었다. 그때 강의에서도 그랬지만 강의를 마치고 나서도 주변 기독인들로부터 유익한 질문과 반응을 많이 접했다. 정치의 중요성 혹은 정치를 좋게 만든 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일에 사람들이 보인 관심과 열의는 크고 분명했다. 기독인과 정치학자가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이 꽤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분명 보람 있는 일이었다. 강의와 강의 이후, 많은 대화를 통해 '기독인에게도 민주정치에 대한 소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작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기독인들에게 민주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나 자신의 불안한 처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했다. 고매한 종교적 고민을 거친 사람의 글이 아닌 점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깊은 이해를 바란다. '신학자의 민주정치론'도 필요하고, '정치학자의 기독교론'도 필요하겠지만, 그 어느 쪽도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신학과 민주주의론 사이에 중첩될 수 있는 영역이랄가. 아니면 기독교적인 믿음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 민주정치론을 최대한 개척해 본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 하는 자세로 임해 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논쟁이 될 만한 내용이기보다는 어떤 공통적이거나 기초적인 것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날카롭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공부를 좀 더 한 다음으로 기약하겠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모두에게 잘 부탁한다.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을 기피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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