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맞이해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이 '기독인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2월 1일부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4월까지 기독교와 정치학의 연관성을 설명합니다. 월·목 주 2회 총 20편의 글을 기고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우리에게 구원(救援, salvation)이란 무엇일까? 기독인에게 민주정치론 강의를 요청받은 2015년 10월, 기독교 안에서 구원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살펴보게 됐다. 같은 신(하나님 혹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원에 대한 해석이 많이 다른 것을 봤다. 그때, 신의 계획 내지 신의 의지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생각하게 됐다. 구원에 대한 누군가의 과도한 확신이야말로 오히려 절제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자각한 기초 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의무를 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구원은 신의 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이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건방진 일일지 모르겠다. 지배와 강제를 포함한 권력 현상을 회피할 수 없는 '인간 정치’를 말하며, 정치가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면 필시 세상을 기만하는 일이 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독일을 대표한 종교 사회학자이자 어머니에게 칼뱅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 분명 인간 개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문제는 정치의 방법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다만 정치가 신의 선물이고, 신에게 부여받은 소명이 좀 더 나은 정치를 실천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충분히 따져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정치가 내지 정치학자라면 누구나 읽어 보았다고 말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후마니타스)의 저자이다. 그는 정치를 하는 것이, 손에 강제와 폭력이라는 악마의 무기를 쥘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정치라는 인간 활동은 매우 특별한 윤리성을 갖고, 이를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나아가 본질적으로 악일 수밖에 없는 폭력과 강제를 행사했음에도 어느 종교에서든 정치가와 군인을 구원하는 특별한 장치를 갖고 있음을 밝혔다. 그렇기에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공적 과업을 하는 일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함을 강조했다.

나 스스로 기독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세례도 받고 부정기적이나마 교회에 나가지만, 사실 어떤 신념을 가진 자발적 행위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누구든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내면의 참혹함을 알고 있는 절대자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보기에, 종교의 역할을 긍정한다. 또 인간이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기원에 대해 탐구하는 존재이기에 구원받고자 노력하는 삶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가끔 사제나 목회자의 설교 중 민주정치의 가치를 위협하는 내용을 만날 때마다, 혹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노력을 폄하하는 대신 오로지 교회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만을 강박할 때마다, 그게 신의 뜻에 합당한 일일까 회의해 보곤 한다.

신 앞에 평등한 개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착하게 살고 또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타적인 삶이 좀 더 인생을 풍부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구원받는 일에 다가가기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개인윤리의 차원에서는 분명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개인들과 그들 사이의 수많은 집단 갈등 속에서 공적 질서를 형성하고 관리해야 하는 정치의 윤리성은 그와 다른 차원을 갖는다. 단순히 개개인의 선한 삶을 말하는 것으로만 충분하다면 사실 정치라고 하는 '아주 특별한 인간 활동’은 근본적으로 필요 없을지 모른다.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오래전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이지만, 인간이란 부모의 죽음은 잊고 살아도 자기 돈 떼먹은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는 존재다. 천국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기꺼이 죽고자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재산을 끝가지 움켜쥐는 사람이 대다수이지, 자신의 가족이 아닌 이웃과 사회에 헌신하고 현세를 떠나는 사람은 적다. 인간이 악하기만 한 존재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라는 점, 실존하는 악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제대로 악을 대면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악이 승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 괴롭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제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선한 의지가 더 많이 발현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는 점, 우리의 정치적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나 싶다. 나아가 정치적 고뇌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이를 넘어서는 초월적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의의 실마리로 삼아, '정치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정치와 신의 계획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한다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정치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건 세속적인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하는 일 아닌가? 신실한 기독인이 정치에 관심을 두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아가 정치인이 된다? 글쎄 이런 생각 자체가 뭔가 어색한 일 같다. 기독인과 정치 참여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짝 아닐까? 분명 이런 의문은 사회 현실이나 정치 현실과 무관하게 기도 생활만을 강조하는 교회 안팎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과거 한국이 권위주의 정권의 비민주적 통치하에 있을 때, '정교분리’를 앞세워 현실 참여를 부정하게 여기고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강요하는 일이 사실상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지독히 정치적인 행위'였듯이,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무작정 분리시켜야 할 일을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수 없고 다만 다른 원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듯 말이다. 그렇기에 '기독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논리도 아니고, '기독인이라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논리도 아닌, 마치 건강한 영혼과 건강한 육체의 관계처럼 서로가 잘 구별되면서도 또 잘 결합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네덜란드 출신 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념대로, 인간 세상을 혁명적으로 이상 사회로 바꿀 수는 없겠다. 하지만 '우리의 소명은 세상 한가운데 있고 바로 여기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차원만으로도 기독인의 현실 참여는 적극적으로 고려할만 할지 모른다. 

정치, 어떤 이유에서건 피할 수 없는 인간 활동이라면 제대로 대면해야 할 일일것이다.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을 기피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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