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화이트 <당신 곁의 이방인, 퀴어 크리스천으로 살기>(학이시습) 

<당신 곁의 이방인, 퀴어 크리스천으로 살기> / 멜 화이트 지음 / 한명선 옮김 / 학이시습 펴냄 / 591쪽 / 2만 8000원
<당신 곁의 이방인, 퀴어 크리스천으로 살기> / 멜 화이트 지음 / 한명선 옮김 / 학이시습 펴냄 / 591쪽 / 2만 8000원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1994년, 미국 복음주의 진영에서 잘나가던 한 목사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빌리 그레이엄, 팻 로버트슨, 제리 폴웰 등 내로라 하는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대필 작가로 활동했던 멜 화이트 목사 이야기다. 자신의 성적 지향과 평생 불화하던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벽장 문을 열고 나온다. 이후 파트너 게리 닉슨과 성소수자 인권 단체 '소울포스(Soulforce)'를 설립,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에 맞섰다. 이 책은 그의 40년 삶이 담긴 자서전이다.

원서는 1994년 출간됐지만, 지금의 한국 상황에 대입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30년 전 미국의 극우 개신교처럼 한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고,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폐지하고, 도서관에서 성교육 책을 없애는 움직임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진 우파의 작동 방식과 대응 방법을 다룬 '에필로그'는 동성애 반대를 바탕으로 결집한 개신교 세력이 극우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는 이 때에 시의적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멜은 이러한 혐오와 폭력에 결코 똑같이 맞서지 않고 "더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부록에 수록된 보수 교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멜의 편지들을 엿보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책의 서문을 작성한 멜의 전 부인 라일라 화이트는 "멜의 이야기는 당신 삶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또 그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함으로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하나님과 이웃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했다.

무참한 혐오와 폭력의 세계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퀴어 당사자와 비당사자 모두에게 가닿을 책이다. 원제는 '문 앞의 낯선 사람(Stranger at the Gate: To Be Gay and Christian in America)'. 낯설지만 당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기독교 우파들은 미국 전역에서 영적 권력이 아닌 정치적 권력을 조직하고 있다. 모든 교육 선거구와 일반 선거구에 속한 투표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이 죄와 죄인들로부터 ‘이 나라를 정결케’ 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중략) 수많은 신문 또는 방송 기자들이 동성애에 대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좌파 언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제거하려 한다. 오랫동안 나와 일했던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은 공공 도서관에서 게이와 레즈비언 간행물과 동성애자 작가가 쓴 시, 소설, 전기를 없애려 한다. 심지어 어떤 작가나 책이라도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한다면 그와 그의 작품을 없애 버리고 싶어 한다. (중략) 퀴어 퍼레이드를 취소하려 하고 방해하며 우리의 커뮤니티 센터, 학교, 심지어 교회까지 닫으려 한다." ('12장 1990~1991, 마지막 침묵 1년', 408~410쪽)

 

"2000년 전 젊은 유대인 예언자 예수는 종교 우파였던 바리새인들과 맞섰다. 그는 담대한 사랑만이 바리새인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포했다. 난 희망한다. 언젠간 제리 폴웰과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한다'는 그릇된 주장을 하는 이들이 그들이 끼친 끔찍한 폐해를 깨달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날까지 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들과 맞서고 논쟁하고 더 조직하고 더 투표하고 더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들에게 똑같은 증오를 돌려주어 앙갚음해야 한다는 달콤한 유혹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14장 1993~1994, 정의를 위한 시간', 483쪽)

 

"나는 사랑이 메말라 버린 우파를 걱정하는 일보다 사랑스러운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이 용기 내지 못하는 일에 더 큰 우려가 생겼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중립을 지킨 채 급진적 우파가 점점 더 득세하는 것에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의 잠재적 친구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침묵하는 중립은 동성애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스럽고 창조적이며 책임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마음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더 큰 선을 위해' 우리 권리를 희생시키는 모든 사람은 사실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 젊은 세대가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5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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