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장통합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 이계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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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접근권 
1) 교회는 장애인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교회 생활을 위하여 물리적 장벽과 정보와 의사소통의 장벽을 제거하기 위하여 각종 편의 시설을 제공한다. 
2) 교회는 장애인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교회 생활을 위하여 부정적인 인식의 장벽을 제거한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의식 총회장)이 2001년 제86회 총회에서 채택한 '장애인 헌장' 중 일부다. 예장통합은 다른 교단에 비해 장애인과 관련한 신학적·실천적 작업이 많이 진행됐다. 총회 사회봉사부 안에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이계윤 회장)가 있고, 이 협의회는 시각장애인선교회·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지체장애인선교연합회·농아선교회 등 네 단체의 연합이다. 다른 대형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오정호 총회장)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에는 예장통합처럼 장애인 선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없다. 

예장통합 총회는 일찍이 장애인과 관련한 여러 작업을 진행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날에 맞춰 1991년부터 '장애인 주일'을 제정했고, 2001년 장애인 헌장을, 2006년에는 장애인 복지 선교 지침을, 2008년에는 장애인 차별 해소를 위한 활동 지침을 채택하고 각 교회에 배포했다. 최근에는 2020년 105회 총회에서 노회별로 매년 1회 이상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의했고, 2024년에는 발달장애인 세례문답서를 발표했다. <장애인 목회>(2019), <교회와 장애 인식 개선>(2021) 등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다. 매년 장애인 주일에 맞춰 '목회 자료집'을 배포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종 문서에는 앞서 언급했듯 교회 안에서의 장애인의 이동권, 편의 시설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교회 안에 장애인 편의 시설을 갖춰, 장애인들이 원활하게 예배를 드리고 교회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신학적 작업 또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번 <뉴스앤조이>와 무지개신학교가 조사한 서울 종로구에서는, 딱히 예장통합 소속 교회라고 해서 유의미한 차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총회 차원에서 여러 연구와 작업을 진행하는 일은 당연히 권장되어야 하지만, 일선 교회들의 변화가 잘 관찰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수년간 예장통합 총회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계윤 목사를 5월 11일 서울 용산역에서 만났다. 이계윤 목사는 전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당사자다. 그는 장애인 당사자, 목사로서 교회에서 겪는 어려움과 수십 년간 교단에서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소회를 풀어 냈다. 편의 시설을 갖추기 힘든 개척교회의 현실적인 여건을 이해하면서도,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들이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장애인 선교를 고민해 온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이계윤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계윤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근거'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

우리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와 함께 총회에서 여러 작업을 했던 교수님들도 교회 가면 다 장로님이고 그래요. 그분들이 열심히 작업을 하셨는데, 정작 당신이 작업한 결과를 그 교회에서도 몰라요. 우리 교단은 총회가 있고 노회가 있고 지교회가 있잖아요. 사실은 그 단위들이 별로 연계성이 없어요. 총회가 결의했으면 노회와 교회는 이걸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실제적인 고민을 해야 되잖아요. 근데 다들 임기가 1년씩이니 자신들이 뭘 결의했는지도 잘 몰라요. 구속력도 없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장애인 선교에 대한 자료들을 계속 만드는 이유가 있어요. '왜 해야 하느냐'고 하면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근거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일례로 우리가 이번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세례 지침서를 만들었어요. 통합 측에서만 만들었으니까 한국교회 전체로 따지면 이런 문서가 있는지도 모를 거야. 하지만 언제라도 '발달장애인 세례를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할 때, 찾아보면 지침서가 있는 거예요. 이렇게 근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어요. 

어떤 가이드를 제공하기 위한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다른 교단에도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합동 측이나 감리교나 성결교나 침례교 안에도 장애인 선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가 꽤 많아요. 금년에 침례교단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주일을 지키기로 했거든요. 우리나라에 장애인의날이 만들어진 지 40년 만이에요.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참 늦었죠. 다른 교단 사람들은 저에게 너무 부럽다고, 통합 측이 앞서나간다고들 하는데, 저희도 무슨 권한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럼에도 계속 총회를 설득해서 만들어 가는 거죠. 다른 교단들도 시스템을 만들어서 때로는 경쟁도 하면 좋겠는데, 다만 부러워할 뿐 교단 차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죠.

예장통합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는 매년 노회 차원에서 실시하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위해 <교회와 장애 인식 개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장통합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는 매년 노회 차원에서 실시하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위해 <교회와 장애 인식 개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어렵게 교회 앞까지 갔는데 입구에 턱이?

제가 장애인 사역을 시작한 게 1986년이에요. 휠체어를 탄 지는 한 8년 됐어요. 전에는 목발을 사용했죠. 목발을 짚고 다닐 때는 크게 불편한 걸 못 느꼈어요. 목발과 휠체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일단 수동 휠체어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가면 자기 힘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100m도 안 될 겁니다. 인도를 보면 끊어진 부분에서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게 돼 있죠. 수동 휠체어로는 혼자서 못 올라가는 각도예요. 

전동 휠체어를 타면 인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할 수 있지만, 상체에 힘이 없거나 상체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위험하죠. 앞으로 가려면 살짝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나가는 거니까, 설령 휠체어가 뒤집어지지 않는다 해도 위험을 느끼는 거예요. 이렇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인도가 끊어진 부분을 경사로로 연결해 놨지만, 이 정도 경사로도 수동 휠체어로는 오르기가 쉽지 않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인도가 끊어진 부분을 경사로로 연결해 놨지만, 이 정도 경사로도 수동 휠체어로는 오르기가 쉽지 않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회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고 생각해 봅시다. 요새는 저상 버스가 많이 생겼죠. 그런데 저상 버스가 오더라도 장애인 입장에서는 '저 버스가 나를 태울까 안 태울까' 고민을 해야 돼. 인도에 바짝 붙여 줘야 램프(ramp·경사로)가 닿아서 타고 들어갈 수가 있는데, 버스가 인도와 멀리 떨어지기도 하고 그냥 가 버리기도 하니까요. 사람이 많을 때는 '기사가 나를 발견했을까' 이런 것도 고민해야 해요. 

그렇게 힘들게 교회 앞까지 갔는데 예배당 입구에 턱이 있는 거예요. 경사로가 있어도 조악한 곳이 많죠. 어떤 데는 시멘트로 막 메꾸기도 하고, 철판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경사가 높기도 하고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누가 잡아 줘야 해요. 수동 휠체어는 더 힘들죠. 

우리가 교회를 향해 계속 얘기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교회들이 입구를 평평하게 한다든가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서 본당까지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은 많이 진행됐어요. 근데 본당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 예배당 안에서 어디 앉아야 할까요. 두 가지죠. 하나는 맨 앞, 또 하나는 맨 뒤. 그러면 나는 가족들과 같이 교회에 갔는데도 따로 앉아야 하는 거예요. 

1980~1990년대에는 교회가 장애인석을 따로 만들어 놓는 게 굉장히 큰 배려였어요. 예배당에 장애인석이 있으면 '장애 인식이 잘돼 있네'라고 생각했던 거죠. 사실 그건 장애 인식이 잘돼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을 또 하나의 집단으로 분리하는 또 다른 차별이라는 걸 그때는 인식하지 못한 거죠. 

하나 질문해 봐야 하는 게 '예배당에는 꼭 장의자가 있어야 할까'라는 거예요. 장의자가 예배당을 굉장히 경직된 구조로 만들잖아요. 예배당이 좁을수록 장의자 사이 폭이 좁아져요. 비장애인이 걸어다니는 기준으로 하다 보면 휠체어가 들어가기는 어렵죠. 가족과 같이 가도 따로 앉아야 하고요. 상가에 입주해 있는 개척교회에서도 장의자를 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장의자 만드는 나무가 안 나와요. 다 외국에서 수입해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꼭 장애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공간을 유용하게 쓰려면 개별 의자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배드리고 위치를 바꿔서 성경 공부도 하고 교제도 하고, 개별 의자를 쓰면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잖아요. 배리어 프리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겠어요?

또 하나는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설교를 부탁받을 때가 있어요. 설교하러 갔는데 일단 강단은 다 계단이야. 강단 계단은 대부분 폭이 넓어요. 누군가 들어 올려 줘야 한다는 거예요. 또 강대상도 높잖아요. 제가 올라가면 어떤 식탁 같은 조그만 거 가져다 놓고 설교하라고 하는 거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강대상이 아닌 거예요. 

장의자는 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배리어 프리 관점으로 보면 예배당 내부를 경직되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장의자는 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배리어 프리 관점으로 보면 예배당 내부를 경직되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교회는 '누구나 다' 오는 공간

교회들의 물리적인 구조가 그렇게 돼 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지금 목회자나 교인들 머릿속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는 이동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전제가 있는 것 같아요. 목사 중에는 더더욱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회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하면 그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에 해당돼요. 교회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를 떠나, 교회는 법률을 넘어선 하나님 말씀 — 성경에 기초해서 형성됐어요. 교회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에요. 성경 말씀대로라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잖아요.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꾸 법률 들먹이면서 '우리는 저촉되지 않아', '벌금 안 내' 이렇게 말한다면 이미 교회가 아닌 거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다' 나에게 오라고 했어요. '누구나 다'에 예외는 없죠. 하다못해 4명의 친구가 지붕을 뜯고 들것에 실어 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회는 와야 되는 거예요. 또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에요.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그 부족한 사람 중 한 부류가 이 땅에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인 거죠. 그렇다면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열려 있어야 해요.

맨 처음 한국에서 교회가 시작됐을 때, 교회는 식자(識者)들이 모인 곳이 아니었어요. 다 어려운 사람들이었죠. 특히 장애인 쪽으로 보면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여사가 오봉래라고 하는 시각장애인 여성에게 복음을 전한 게 처음이었어요. 왜 오봉래였나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 외국인, 서양인은 낯선 사람이었어요. 귀신이 아닌가 했을 정도죠.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보는 걸로 따지지 않고 오로지 다가온 사랑으로 따졌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었던 거죠. 굉장히 중요한 실마리예요.

이게 복음이 열린 길이란 말이죠. 예수님이 '누구나 다' 오라고 했기 때문에, 초기 선교사들은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한국 사회가 산업화하고 교회도 점점 많아지면서, 초기 선교사들이 실천했던 '누구나 다' 오라는 예수님의 정신을 교회들이 잊어버리고 만 거죠. 그러다 보니 교회가 장애인을 배제한 비장애인만의 공간이 돼 버리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성경은 항상 집단보다는 개인이 우선이었어요.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말씀도 있고, 목자가 양 아흔아홉 마리를 놓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도 나오죠. 베드로전서에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와요. 한 사람은 100분의 1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100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야 하는 거죠. 

장애는 몸 바깥에 있는 것이다
이계윤 목사는 '장애'라는 말을 현시대에 맞게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계윤 목사는 '장애'라는 말을 현시대에 맞게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장애인 선교가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면, 장애인 성도는 혼자 살지 않거든요. 가족 단위거든요. 장애인 성도가 교회 오는 걸 막는다면, 그 가족도 교회에 못 오게 하는 거예요. 장애인의 가족, 친척, 친구가 꼭 장애인이 아니에요. 장애인 성도를 한 명 받아들인다면 비장애인 성도 여러 명이 교회에 올 수 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적인 교회(inclusive church)가 되는 거죠. 저는 장애인만 다니는 교회는 원하지 않아요.

어떤 목회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우리 교회는 장애인이 없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A church without disabled is just disabled church(장애인이 없는 교회는 장애가 있는 교회다)." '장애인이 없는 교회'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장애'라는 말의 정의부터 다시 하는 게 필요해요. 제가 휠체어를 탔거나 목발을 짚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아니에요. 휠체어를 타고 갔는데 턱과 계단이 있어요. 그때부터 장애를 '겪는' 거예요. 용어를 잘 써야 해요. 장애를 '앓는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에요. 장애를 '입는다'? 뭐 입을 게 없어서 장애를 입습니까. 장애를 '겪는다'가 정확한 거예요. 장애는 내 몸 바깥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가 장애물이 되고 있는 거예요. 교회가 그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죠. '우리 교회는 장애인이 없으면 좋겠다'는 말 자체가 장애인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힘들게 교회까지 왔잖아요. 교회까지 왔는데 막고 있는 거 아니에요, '당신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장애물을 만드는 거라고요. 

중요한 건 '한 사람에 대한 가치관'

현실적으로는 오래전 건축된 교회들이 큰 문제죠. 그때는 정말 장애인 생각 안 하고 지었으니까. 거기에 엘리베이터 설치하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또 중요한 게 화장실이에요. 장애인 화장실이 배치돼야 하는데, 오래된 교회에서는 공간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일이 되거든요. 그런 교회가 많을 거예요. 

지금 정부 통계를 보면 장애인의 53.9%가 65세 이상이에요. 교회도 특히 고령화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우리 교회에는 장애인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종종 교회에 설교하러 가요. 교회에서 하는 얘기는 그거예요. "우리 교회에는 아직 휠체어 타신 분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사 옆으로 어르신들이 계단 손잡이를 잡고 힘들게 올라가고 계세요. 그리고 정작 교회에 와야 할 분들, 정말 몸이 힘드신 분들은 그냥 집에 계시는 거예요. 성경에는 4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는데, 지금 교회는 그런 분들이 교회에 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죠. 이게 한국교회 현실이에요.

숭인동 한 상가 2층에 있는 ㄷ교회. 주일예배 시간이 되자 한 노인이 손잡이를 잡고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숭인동 한 상가 2층에 있는 ㄷ교회. 주일예배 시간이 되자 한 노인이 손잡이를 잡고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실제 이야기예요. 손봉호 교수님이 서울영동교회 개척 멤버신데요. 손 교수님은 밀알선교단 이사장이셨고 원래부터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분이 예배당을 지을 때 꼭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하셨대요. 다른 교인들이 "왜 해야 하느냐. 우리 교회에는 장애인이 없다"고 했죠. 그때 손 교수님이 그러셨대요.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5년 안에 휠체어 타는 분이 한 명은 올 것이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는 거예요. 

진짜 5년 만에 딱 한 분이 오셨대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말이 바뀌죠. "한 명밖에 오지 않았다"라고. 그런데 그 한 명이 생기니까, 서울영동교회가 휠체어를 타고도 다닐 수 있는 교회라는 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장애인 부서까지 만들어졌어요. 어떤 생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차이죠.

이번엔 제 이야기예요. 제가 어떤 목사님 요청으로 설교를 하러 갔어요. 저를 부른 이유가 있었어요. 그 교회는 고전적인 교회라 예배당 양쪽으로 계단이 죽 있었어요. 그 목사님이 계단을 부수고 엘리베이터를 만들자고 했더니 장로님들이 다 반대한 거예요. 그럴 수 있죠. 근데 이런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인근에 휠체어 타시는 분이 계셨는데 이 교회에 꼭 나오고 싶었대요. 그분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교회에서는 아직 예산이 안 돼서 못한다고 한 거죠. 그랬더니 이분이 그 예산을 들고 왔대요. 내 돈 줄 테니 만들어 달라고. 정작 돈이 생기니까 장로들이 '그걸 꼭 해야 돼?'라고 한 거죠. 결국 예산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미적미적하다가 그 사이에 그분이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저를 설교자로 불렀던 거죠. 그날도 보니까 교회 어르신들이 옆에 손잡이를 잡고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시더라고요. 제가 설교하면서 장로들을 겨냥해 말했어요. "여러분이 언제까지 두 다리에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난 좀 일찍 이렇게 됐을 뿐이다. 오늘 올라오다 보니 어르신들이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시더라. 그분들은 이 교회 교인이 아니냐.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게 뭐가 문제냐." 예배 끝나고 장로님들이 저한테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걸 생각하면 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에 대한 가치관 — 꼭 '장애 인식'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 한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봐요. '우리는 도저히 못한다'고 하는 마음속에는 편의 시설이라는 게 뭔가 거창한 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요새는 이동형 경사로나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리프트도 있어요. 제 후배가 목회를 하는데 상가 건물 3층이에요. 교인이 많지 않아요. 그중 한 성도가 와상 환자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분이 꼭 교회에 나오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이동형 휠체어를 어디서 구입해야 하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이런 걸 보면 교회가 돈이 많고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가에 입주해 있는 개척교회는 더 힘들 거라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개척교회 고민이 덜하다고 봐요. 요새 지어진 상가는 엘리베이터나 화장실을 다 갖춰야 하거든요. 그런 곳에 입주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되는 거죠. 물론 최근 지어진 건물일수록 입주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들긴 하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걸로 고민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개척한다고 했을 때 어떤 교회가 될 것인지 그려 보지 않겠어요? 그 모습이 신체 건강한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인가요? 뭐 그렇다면 편의 시설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러나 정말 소외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천국 잔치가 있는 교회가 돼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시작부터 달라질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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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내 친구가 다닐 수 있는 교회는 어디일까?
② 휠체어 이용자가 다닐 수 있는 교회 '21.9%' 
③ "돈 있으면 되고, 돈 없으면 안 되는 게 우리가 그리는 교회는 아니니까"                                 
④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교회'라는 공간
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 "종교 시설은 자격 갖춘 사람 위한 곳 아냐"
⑥ "휠체어 탔다고 장애인 아냐…문턱 있는 교회가 장애 겪게 하는 것"
⑦ 오래된 교회들의 노력 
⑧ 최근 지어진 예배당, 배리어 프리 관점에서 보면
⑨ 함께 살아가기, 함께 존재함을 넘어
⑩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낯선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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