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뉴스앤조이>는 지난해 11월 '거룩한 범죄자들' 기획을 통해, 지난 10년간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목회자 253명의 현황과 이들이 소속된 교단의 징계 여부를 취재했다. 253명 중 소속이 확인된 목회자는 133명. 그 가운데 교단이 목회자의 범죄 사실을 파악한 것은 69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69명 중 가해 목회자를 징계한 사례는 26건에 그쳤다. 

올해 3월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김종미·남오성·임왕성)가 '거룩한 범죄자들' 데이터 및 자체 조사를 토대로, 각 교단에 성범죄 목회자를 징계하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개혁연대는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목회자가 소속한 교단 총회 및 노회·연회·지방회 61곳에 징계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내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하지 않는 교단 앞에서는 1인 시위를 예고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회신조차 하지 않았고, 회신하더라도 이미 은퇴했거나 징계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향후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회신한 곳은 8곳뿐이었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많은 교단 임원이 "성범죄는 엄단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며 <뉴스앤조이>의 기획 의도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뒤늦게라도 교단들의 후속 조처를 기대했다. 목회자의 범죄 사실을 몰라서 징계를 못 할 수는 있지만,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1월 23일 현재 기준으로, 실제 징계를 한 교단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징계에 나서겠다고 회신했던 곳들은 불문에 부치거나,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다. 

"은퇴 앞두고 있어서"
"당사자 사연 들어 보니"
"노회장과 친한 목사라서"
교회개혁실천연대가 4월 4일 성범죄 목회자 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목회자들이 소속한 연회·노회·지방회에 징계 현황을 질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징계 의사를 밝힌 8곳 중 실제로 후속 조처를 한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개혁실천연대가 4월 4일 성범죄 목회자 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목회자들이 소속한 연회·노회·지방회에 징계 현황을 질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징계 의사를 밝힌 8곳 중 실제로 후속 조처를 한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전상건 총회장) 군산노회는 지역 가게 점원을 강제추행해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은 조 아무개 목사(247번)를 징계하지 않고 있다. 기장 군산노회는 올해 3월 개혁연대에 답장을 보낸 곳 중 가작 적극적으로 징계 의사를 보인 노회다. 당시 노회는 "목회자의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하려 한다. 이 건도 헌법과 노회 법규에 따라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며 "자칫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지나가 버렸을 이 문제를 드러내 확인해 주신 귀 단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노회 분위기는 조 목사를 징계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군산노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사자가 내년 초에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 노회 내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징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오정호 총회장) 인천노회도 의붓딸을 성추행해 징역 2년 6개월을 복역한 이 아무개 목사(187번)를 징계하지 않았다. 인천노회도 개혁연대에 "사건 번호를 알려 주면 판결문을 확인한 후, 임원회와 정책위원회를 통해 징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진척된 것은 없다. 당시 개혁연대에 회신했던 인천노회 서기는 "관련 서류를 새 서기에게 모두 넘겼지만, 지금까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기 부노회장이 됐지만, 서류 처리 및 징계 절차를 밟는 것은 서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성범죄 가해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징계에 부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성서침례친교회는 대학생들을 추행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 아무개 목사(59번)에 대해 "사실로 확인된다면 관련 규정에 의해 징계 처리해야 할 것"이라면서 임원들과 논의해 향후 대책을 통지하겠다고 개혁연대에 회신했다.

그런데 이후 성서침례친교회는,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해 목회자를 만나 본 결과 "당사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법부 판결을 받았으며, 자숙하면서 5년의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여 특별한 징계 없이 회복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불문에 부쳤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에게 "나랑 사귀지 않겠느냐"는 등 음란성 메시지를 보내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의식 총회장) 대전서노회 소속 김 아무개 목사(31번)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대전서노회는 "임원들과 논의 후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했지만,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당사자가 '노회에 누를 끼쳐 정말 죄송하다'고 눈물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징계에 부치지 않았다. 노회 관계자는 김 목사가 은퇴한 지 오래돼 징계하기 곤란했다며 "시무목사였다면 처리했을 것이다. 언행이 문제가 된 거라 사과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덧붙였다.

예장합동 남부산남노회 소속으로 지역 아동 센터를 운영하던 김 아무개 목사(67번)는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2심에서는 무죄였던 부분까지 유죄로 인정돼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됐다. 남부산남노회는 "형사법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노회에 김 목사를) 고소하는 사람이 없어 징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뉴스앤조이>는 노회가 직접 당사자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노회 관계자는 난색을 표했다. 그는 "김 목사가 현 노회장과도 친한데, 노회장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뭔가 하기가 좀 어렵다. 다만 노회 차원에서 지원하던 선교비를 다 끊는 선에서 정리했다"고 말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대형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청주에서 목회하던 당시 시내버스에서 피해자를 성추행해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권 아무개 목사(11번). 그는 지난해 <뉴스앤조이>에 "교회와 노회는 이 사실을 모른다. 억울하다. 언젠가 목회를 접을 생각을 하고 있다. 가족이 있으니 제발 알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예장통합 목회자인 그는, 취재 당시 교단이 다른 고양시 한 대형 교회 부교역자로 임지를 옮긴 상태였다. 그런데 <뉴스앤조이>가 취재에 나서자, 그는 또다시 파주에 있는 예장통합 소속 다른 교회로 자리를 옮겨 갔다. 

권 목사에게 다시 연락을 하자,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부드럽게 그만둘 타이밍을 보고 있다", "타이밍을 잡지 못해 끌려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판결이 잘못됐고 억울하다고 했다. 정말 판결이 잘못됐다면 당당히 밝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는 당회나 담임목사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교인들이 시험 들지 않겠느냐는 말에 권 목사도 동의하면서도 "처자식이 있으니까 아이들 공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연대는 올해 3~4월 각 교단 노회와 연회 장소를 찾아 성범죄 목사 치리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피켓 시위를 예고하자, 많은 곳이 부담감을 느끼고 징계할 테니 시위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실제 징계까지 한 곳은 드물었다. 사진 제공 개혁연대
개혁연대는 올해 3~4월 각 교단 노회와 연회 장소를 찾아 성범죄 목사 치리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피켓 시위를 예고하자, 많은 곳이 부담감을 느끼고 징계할 테니 시위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실제 징계까지 한 곳은 드물었다. 사진 제공 개혁연대

개혁연대에 절차를 밟겠다고 회신한 교단과 노회 중 상당수는, 개혁연대가 봄 정기노회나 연회 때 1인 피켓 시위를 예고한 곳들이었다. 각 교단들은 징계 절차를 밟을 테니 시위를 하지 말아 달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책임 있게 조치한 사례는 드물었다.

예장통합 서울강동노회는, 개혁연대가 안 아무개 목사(161번)에 대한 징계 여부를 묻자 봄 노회에서 "소재가 불명"이라는 이유로 면직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무임목사 기간이 3년 경과하면 자동 면직된다는 교단 헌법 조항에 의거한 것이다.

안 목사는 이번 기사에서 언급한 이들 중 형량이 가장 높다. 피해자를 그루밍해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는데, 범행 기간 교단 유수의 교회들에서 목회하며 안수까지 받았다. 범행 장소 중에는 그가 공부했던 신학교도 포함돼 있었다.

안 목사가 무임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2021년 1월 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구속됐으니 교회 사역을 중단했고, 노회에도 나가지 못했다. 개혁연대는 사건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하라며 판결문을 구할 수 있는 사건번호까지 보냈지만, 서울강동노회는 사건을 조사하고 징계하는 대신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이영훈 대표총회장)는 청소년 교인을 상대로 유사성행위 등을 저질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한 아무개 목사(272번)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제명 및 출교 처리할 계획이라고 개혁연대에 밝힌 바 있다. 기하성은 최근 징계위원회를 소집했으며, 한 목사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알려 왔다.

유일하게 징계 절차를 밟은 곳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호남특별연회다. 호남특별연회는 2020년 청소년 성매수죄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받은 문 아무개 목사(96번)에게 '정직 1년'을 선고했다.

연회 관계자는 "감리회 교리와장정에는 징역형 이상을 확정받으면 감독이 당사자를 기소하게 돼 있어 그 절차를 밟았다"면서, 형량을 결정한 것은 연회 재판위원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사자도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근신하겠다며 총회 재판위원회에 항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유일한 징계 사례마저도 '합당한 징계'인지는 의문이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문 목사는 2014년에도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한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상습범이라는 뜻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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