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과는 언제 한대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박진희 씨(가명)와 박민희 씨(가명)는 물었다. 자매는 교회 성폭력 피해자다. 10대 때 다녔던 교회와 지역 아동 센터에서 목사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 작은 교회 담임목사이자 센터 원장이었던 가해자는 자매가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교회와 센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했다. 자매는 성인이 되어 가해자를 고소했고, 그는 2021년 1월 징역 7년형을 받았다.

가해자가 소속한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에서 이 사건은 지난해 9월부로 끝난 이야기다. 당시 기침 111차 총회에서 가해자를 제명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올해 9월 112차 총회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자매는 기자에게 물었다. 교단이 자신들에게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사과는 언제 하는 거냐고.

기침은 이 사건이 '모두 끝난 일'일 뿐 아니라 '잘 처리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가해자를 제명한 일도 피해자와 그들을 돕는 이들이 교단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모른다. 이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교단과, 그런 교단에 여전히 사과를 기대하는 피해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자니 그 인식의 차이가 너무 아득해 보였다.

교단은 한 번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자매는 교단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단은 한 번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자매는 교단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단이란 무엇인가.' 목회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묻는다. 교단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소속 목회자의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실제로 어떻게 대처했는가, 어떻게 해야 했는가…. <뉴스앤조이>가 지난 10년간 성범죄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회자들을 취재한 결과, 교단이 소속 목회자의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 제대로 징계한 경우는 20%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성폭력 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회복이다. 가해자를 징계한 것만으로 박수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교회는 교단을 불문하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조차 요원한 상황이다. 대부분 교단은 범죄 사실 자체를 모르고, 알아도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으며, 징계해도 솜방망이 처분에 그친다. 합당한 처벌을 내린다 해도 그걸로 끝이다. '(타 교단과 다르게) 우리는 잘 처리했다'는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피해자 이야기가 들어갈 공간은 없다.

이번 기사에서는 교회 성폭력 피해자의 시각으로 교단의 대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다. <뉴스앤조이>는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은 네 가지 사건의 피해자 다섯 명을 각각 대면·통화·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건 당시 감정과 여러 사람에게 거부당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고 인터뷰에 응한 이들에게 한국교회는 큰 빚을 진 것이다.

접근조차 하기 힘든 교단 시스템

목회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교단'이라는 집단을 생각해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 워낙 개교회주의가 강하고 교단이 난립하다 보니,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정확히 어느 교단에 속했는지 모르는 교인도 많다. 교단의 존재를 안다 해도 어디에·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여러 언론 보도에서 보듯이 교단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 줄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진희·민희 씨는 가해자가 속한 교단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가해자가 기침 춘천지방회 회장을 지냈다는 것과, 자신이 지방회에서 유력하다고 자랑하듯 말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해를 공론화하려고 했을 때 선뜻 교단과 접촉하지는 못했다.

박진희 / 제가 예전에 상담사였던 친척 오빠한테 상담받으면서 이 사건을 이야기했을 때, 오빠도 어디에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춘천에 있는 제일 큰 침례교회에 전화를 했대요, 이 사건을 알리려고. 근데 그 교회에서 '우리랑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그 일 때문에 저는 사실 교단에 큰 기대는 안 했어요. '개인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겠다', '내가 뭔가 요청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후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라는 단체를 통해 교단에 알린 거예요.

박민희 / 세부적인 사항은 몰랐지만, 교단이 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교단에 소속된 목사가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걸 교단이 알게 되면 굉장히 사건이 커진 거잖아요. 자연스럽게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약간 기대했던 것 같아요. 알리면 뭔가 액션이 있겠다고 생각했죠.

김영희 씨(가명)는 2017년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 당시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영희 씨가 상담을 받으며 믿고 의지했던 목사였다. 가해자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이후 영희 씨는 언론에 사건을 알렸다. 가해자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교단 소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교단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예장통합 부산동노회가 성범죄 목회자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을 받아 줬다는 언론 보도를 본 기억도 영희 씨의 선택에 한몫했다.

김영희 / 한번 총회에 전화를 해 볼까 고민을 했어요. 근데 전화해 봤자 저 한 사람의 말보다는 다수의 말을 더 믿을 것 같았어요.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총회가 과연 믿을 만한가 싶더라고요. 차라리 그냥 언론 보도로 알리는 게 좋은 방향이겠다고 생각했죠.

이렇듯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은 교단을 통한 사건 해결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접근성도 떨어지고 신뢰도도 낮기 때문이다. 2018년 '미투 운동'과 함께 교회 성폭력의 심각성도 부각되면서, 피해자가 쉽게 교단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주요 교단 중 홈페이지 메인에 '성폭력 신고·상담' 배너를 달아 둔 곳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밖에 없다. 이 두 교단은 교단 내 여성 단체들이 '여성 연대'를 이뤄 활동하면서 여성 의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진희 / 기사도 찾아보고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했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어요. 뭐 어디다 전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도 그랬지만 피해를 당한 교인은 교단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몰라요. 일부 교단에 그런 제도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일반 교인 입장에서는 접근하기도 어렵고 홍보도 안 돼 있어서 피해자들이 그냥 알음알음해야 해요. 그 알음알음하는 과정부터가 되게 힘든 거죠.

기장 홈페이지(왼쪽)와 감리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성폭력 상담·신고 배너가 달려 있다. 
기장 홈페이지(왼쪽)와 감리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성폭력 상담·신고 배너가 달려 있다. 
신뢰 떨어뜨린 첫 반응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피해 사실을 접한 사람의 반응이다. 첫 반응이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지지로 나타나면, 피해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첫 반응이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 혹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태도로 나타나면, 피해자는 움츠러든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이 교단에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교단의 첫 반응은 어땠을까.

강소영 씨(가명)는 미성년자 시절 교회 전도사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다. 성인이 되고 몇 년 후 그것이 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2019년 5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아직 1심 판결이 나오기 전, 소영 씨의 어머니는 딸이 당한 일을 듣고 노회에 찾아가 가해자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소영 씨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강소영 /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당시 제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셔서 충격이 크셨고 감정도 많이 격해지신 상태였을 텐데, 그런 피해자 부모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오히려 가해자 입장을 자꾸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어요. "사회 법에서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가 어렵다"거나 "노회 재판에 회부하려면 고소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15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요.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은 교단 목사·장로들에게 좋은 핑곗거리다. 물론 교단이 사법기관처럼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건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첫 반응부터 "사회 법 판결이 나와야 징계할 수 있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교단 스스로 권위를 저버리는 일이자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가해자를 당장 징계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한다거나 일단 가해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등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임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진희 / 저는 사실 재판을 진행하는 도중에 교단에 알리고 싶었어요. 근데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하면, 교단에서 더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어요. 판결이 나온 후에 교단에 알렸죠. 판결문과 가해자를 꼭 징계해 달라는 호소문을 써서 보냈어요.

 

근데 교단 반응은 "항소하지 않았느냐",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랬던 걸로 기억해요. 화가 많이 났던 게, 가해자는 저희 사건 말고도 2017년에 이미 아동 성추행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든요. 저희도 소송을 진행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런 것까지 다 이야기했는데도 교단에서는 그냥 회피한 거죠. 핑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언론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교단은 피해자 입장에 공감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이걸 공론화해서 여론이 형성돼야 뭔가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박민희 / 몇 개월이 지나도 교단 쪽 반응이 없어서, 기반센을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기침 총회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기반센에서 혹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해 줄 수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생업도 있는데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들었지만, 피해자라고 숨어 있거나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면서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자회견에 함께했어요.

 

순조롭게 진행됐는데 마지막에 문제가 좀 있었어요. 기자회견 후 기반센 직원분들이 총회 본부에 직접 올라가서 책임자와 이야기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려고 하니까 총회 관계자들이 입구에서 막는 거예요. 몇 분간 실랑이를 하다가 한두 사람만 겨우 들어갔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이게 교단과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구나'라는 걸 현실적으로 맞닥뜨렸던 것 같아요.

박민희 씨는 기자회견에서 "교단의 침묵으로 계속 한 영혼을 잃어버리게 두면서 교단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박민희 씨는 기자회견에서 "교단의 침묵으로 계속 한 영혼을 잃어버리게 두면서 교단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김영희 씨는 기반센의 도움을 받아 당시 예장통합 서울강북노회 목사들과 직접 만났다. 영희 씨가 직접 진술하지 않고, 기반센 직원이 영희 씨의 대리인이 되어 대신 진술했다. 낯선 50~60대 남성 목사·장로들 앞에서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큰 부담이다.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 대응 전문가를 대리인으로 세울 수 있다면, 진술을 반복하는 고통이 절감되고 낮은 성 인지 감수성에서 나오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피할 수 있다.

김영희 / 아무래도 저 혼자 갔으면 제대로 말 못 했을 거예요. 대리인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교단 반응은 별로였어요. 가해자를 감싸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사람은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뭔가 자기들 교단에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쉬쉬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상황이 굉장히 불쾌했어요.

오유미 씨(가명)는 어렸을 적부터 출석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비슷한 수법으로 여성 청년 여러 명을 반복해서 추행했다. 유미 씨를 비롯한 피해자 세 명이 가해자를 고소했고, 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피해자들은 처음엔 사회 법이 아니라, 가해자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교단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보려고 했다. 예장합동 경기북노회에 고소장을 제출하자, 노회 서기 목사에게 연락이 와 만남이 성사됐다.

오유미 / 저희가 이 사람 면직 안 되냐고 물었더니, 그 서기 목사가 "면직은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교단 헌법상 목사 면직 요건은 '이단일 경우' 하나라고. 전병욱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도 면직이 안 됐다"고 하는 거예요. 저희가 그러면 이 사람이 더 이상 목회할 수 없게 하는 방법은 뭐냐고 하니까, 가해자 나이가 은퇴까지 몇 년 안 남았으니 그때까지 '정직'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렇게라도 해 달라고 했어요. 서기 목사는 가해자가 건강도 안 좋고 나이도 많으니 "이제 그 사람은 끝났다"고 저희를 계속 설득하려고 했어요. 재판 절차를 거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합의하라는 식으로.

 

가해자의 퇴직금 이야기도 꺼냈어요. 24년이나 목회했는데 퇴직금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저희 요구 사항을 가해자에게 다 전달할 테니, 우리도 퇴직금 같은 부분은 양해를 해 주라고. 저희는 싫다고 했어요. 저희도 20년 이상 다닌 교회에서 봉사는 봉사대로 하고 헌금은 헌금대로 하고 저희 부모님도 다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치면 우리 20년은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되물었어요. 그런데도 그 목사는 "내가 너희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다"면서 계속 저희한테 용서하고 합의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이처럼 아무리 교단 일을 잘 아는 목사·장로일지라도 성폭력 사건의 성격을 잘 모르고 성 인지 감수성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를 만나면, 교단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사실상 교단을 통한 사건 해결은 어려워진다. 오유미 씨와 피해자들은 노회의 대응을 겪으며 교단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노회 서기는 첫 만남부터 합의를 종용했고, 노회는 피해자의 임시노회 참관을 막은 상태에서 '서류 미비'라는 이유로 고소장을 반려하고 가해자의 사직서는 보류했다.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교단의 초기 대응을 보며, 피해자들은 일말의 기대감도 가질 수 없었다.

오유미 / 왜 임시노회를 참관도 못 하게 했는지 무척 궁금했고, 권력으로 말도 안 되게 찍어 누르려 하는 행태에 화가 났어요.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목사가 아니라 동네 양아치 같았고요. 그날 이후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불신과 적대감을 갖게 됐어요. 교단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교회 성폭력 사건은 무조건 형사소송으로 가야 피해자가 덜 다친다는 거예요.

솜방망이로 때리거나, 아예 안 때리거나

김영희 씨가 피해를 당한 사건은 2018년 4월 <뉴스앤조이>와 JTBC에 보도되며 파장이 일었다. 당시 교계에서는 성폭력을 저지른 목회자가 교단에서 징계를 받지 않고 자진 사임하는 일이 자주 벌어져, 교단이 이런 자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았다. 영희 씨 가해자가 속한 예장통합 서울강북노회는 여론을 의식한 듯, 임시노회를 열어 징계 절차가 끝날 때까지 자진 사임을 받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노회의 이러한 결정은 성범죄 목회자를 제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몇 달 후 노회 재판국은 가해자에게 '정직 1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 법정에서 징역 6개월을 받은 성범죄자가 교단 법정에서는 정직 1년을 받은 것이다. 영희 씨가 이 사건을 교단에 알린 이유는, 가해자가 목회를 계속한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1년만 지나면 다시 '합법적으로' 목회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실제 <뉴스앤조이>가 확인한 결과, 가해자는 수감 전 목회했던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노회 임원들은 가해자가 노회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영희 / 성추행 가해자에게 정직 1년은 말도 안 되는 처분이죠.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어요. '한국교회는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됐든 1년이 지나면 다시 목회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시 목회할 여지를 만들어 놨다는 것 자체가 제 입장에서는 터무니없죠. 감싸고돌 사람을 감싸야죠. 자기네들 자식이 당해도 그런 식으로 판결할 건가 싶었어요. 저는 아직도 교회를 못 가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에요.

 

그 사람이 목회를 다시 시작했다면, 노회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요. 교단은 목회자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명확하게 처벌해야 하는 게 맞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죠. 지금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면 희생양을 더 만드는 꼴이 되는 거예요. 노회에서 분명히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김영희 씨 가해자는 수감 전 목회했던 방식과 같은 '카페 교회'를 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김영희 씨 가해자는 수감 전 목회했던 방식과 같은 '카페 교회'를 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오유미 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장합동 경기북노회는 피해자들의 고소장은 반려하고 자체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조사처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 위원회는 "아직 사회 법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 징계를 미뤘다.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오자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또 징계를 미뤘다. 가해자는 2022년 7월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경기북노회는 10월 11일 열린 정기회에서, 외려 가해자의 당회장권을 인정하고 이 사건을 더 이상 재론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오유미 / '노회가 노회 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회 법 고소 전 노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도움은 고사하고 2차 피해를 겪은 뒤로는 노회에 기대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 않았어요. 실망하거나 슬픈 마음이 들기보다는 '역시 경기북노회구나' 싶었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궁금했죠. 다만, 교회가 이렇게까지 부패했다는 것이 세상에 낱낱이 밝혀져서 하나님이 아닌 목사를 섬기는 자들이 정신 차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처럼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아예 처벌조차 하지 않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준다. 피해자들은 사건이 일어났던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물론, 다른 교회도 다니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교회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폭력 양태에 따른 처벌 수위가 교단 헌법에 명시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법을 정비해 둔 교단은 국내에 한 군데도 없다.

김영희 / 이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린양을 한 마리 버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양을 버리고 목회자를 세운다? 그 꼴이 난 거예요. 이런 식으로 끝내면 안 됐어요.

(계속)

'거룩한 범죄자들' 기사 리스트

① '가해 목회자 259명' 성범죄 판결 10년 치 분석
② 10·20대 여성 교인에 집중된 피해
③ 성범죄 목회자 감싸고돈 교단들
④ '징계 불가'한 목사들…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⑤ 성범죄 저지르고도 강단에 서는 목사들
⑥ 해외 교단 사례로 본 목회자 성폭력 예방 및 대응
⑦ 매년 53만 기관 성범죄 경력 조회…교회는 '예외'
⑧ 주요 교단장들 "성범죄 경력 조회 도입해야"
⑨ 신고부터 징계까지,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⑩ 징계하면 끝? '피해 회복' 없는 교단 시스템
⑪ 교인 97.9% '목회자 성범죄 경력 조회' 찬성
[다큐] 거룩한 범죄자들: 2013~2022년 목회자 성범죄 10년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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