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교회개혁실천연대·기독교반성폭력센터·<뉴스앤조이>가 '거룩한 범죄자들' 긴급 좌담회를 열고 목회자 성폭력의 쟁점과 향후 문제 해결 방향을 논의했다.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이번 좌담에는 남오성 공동대표(교회개혁실천연대)·박신원 실장(기독교반성폭력센터)·진희원 변호사(법무법인 화평), <뉴스앤조이>가 패널로 참석했다.

남오성 공동대표는 목회자 성폭력의 원인으로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성직주의'를 꼽았다. 남 공동대표는 "한국교회에는 '목사가 옳다', '목사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이상한 교리가 있다. 목사의 설교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교리에 이견을 내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로 매도된다. 목사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서로 평등한 관계라는 공감대를 가져야 하지만, 목사를 일종의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교회에 팽배하기 때문에 목회자 성범죄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희원 변호사는 2018년 이후 미투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사회에서는 성범죄에 대한 시각이 전환되고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됐지만, 교회에는 여전히 후진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목회자 성폭력 사건을 맡아 진행하다 보면, 가해자들은 주로 '친해서 그랬다', '애정 표현이었다'라고 변명한다. 이제 일반 성폭력 사건에서는 이런 식의 변명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성폭력 가해 목회자들은 여전히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박신원 실장은 교회의 폐쇄적인 특성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고 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에게 이런 피해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면, 교회는 피해자보다 목회자에게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교회에 어떤 분란과 싸움이 일어날지, 혹은 수적으로 교인이 얼마나 줄어들지에 훨씬 더 집중해 왔다. 피해 사실 공론화를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목회자 성폭력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성폭력 가해 목회자를 제대로 징계하는 것이 교회와 교단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좌담 참석자들은 성폭력 가해 목회자를 제대로 징계하는 것이 교회와 교단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목회자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예방·대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는 교단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남 공동대표는 "신학교에 들어올 때 성범죄 가능성이 있거나 비슷한 행동을 한 경우 목회 기회를 잡을 수 없도록 아예 차단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성범죄나 성 윤리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일반 직장에서는 주기적으로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교단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피해자들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교단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은 가해자 징계를 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안내하지 않고 있다. 성폭력대책위원회를 두고 있는 일부 교단의 경우에도 관련 정보를 찾고 연락하기가 힘들다. 설령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2차 가해성 질문을 하는 등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얻는 피해로 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많다"고 했다.

반면 사회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중심으로 조사·재판을 진행하는 등 세밀한 지원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해바라기센터 등 전문 기관을 연계하고, 재판 시 신뢰 관계자가 동석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피해자가 수사·재판 절차에서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진 변호사는 "교회 성폭력 사건을 진행하면서 교단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면서 "교회 안에는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 기준도 공유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관련 시스템 자체가 전혀 없다. 피해자들은 고립되거나 교회를 떠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제기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어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은 결국 교단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좌담 참석자들은 성폭력 가해 목회자를 제대로 징계하는 것이 교회와 교단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봤다. 진 변호사는 "사회에서도 장애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장애인 관련 시설에 취업할 수 없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동을 대하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공무원의 경우 수사가 개시되기만 해도 관계 관청에 수사 개시 사실을 통보하게 돼 있다. 이는 국민 전체에 봉사하는 공무원직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가해 목회자들을 징계하고, 목회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목사직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라고 했다.

박 실장은 피해 회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징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활도 완전히 죽은 다음에야 일어날 수 있다. 목회를 잠깐 멈췄다고 해서 책임을 졌다, 혹은 자숙의 기간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한 징계가 이뤄져야 피해자의 회복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가해 목회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목회자 성범죄 문제 해결의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목회자 성폭력 제도 및 전문 기구 마련 △성범죄자 취업 제한 제도 시행 △교회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 등을 꼽기도 했다.

이번 '거룩한 범죄자들' 좌담회는 교회개혁실천연대·기독교반성폭력센터·<뉴스앤조이>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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