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이름 뒤에 병기한 번호는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십자가 형태로 시각화한 사건 번호입니다. - 편집자 주 

"위와 같이 피고인은 신도들로 하여금 피고인을 신과 같은 존재인 '성령'으로 믿게 하여 피고인을 의심하는 것은 '성령 훼방 거역에 해당하는 중죄'라고 가르쳐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없고 현세에서도 질병에 걸리는 등 벌을 받게 된다고 교육함으로써 신도들이 감히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특히 유아기나 아동기부터 이 사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피고인을 신격화하는 분위기에서 자라 교회 생활에 전념하는 외에 달리 사회 경험이 없고 '남녀가 함께 차에 타거나 교제하는 것만으로도 죄이고 간음에 해당한다'고 교육을 받아 성적 행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행위'라고 믿고 있어 피고인이 성적 접촉을 하여도 그 의미를 쉽게 깨닫지 못하고, 피고인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그 행동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등 심리적 항거 불능 상태에 있는 20대의 여성 신도들을 사적으로 불러 추행하거나 간음하기로 마음먹었다."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202번)의 성범죄 판결문에는, 이 목사가 피해 교인들을 세뇌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나온다. 이 판결문만 놓고 보면, 교주를 신격화·절대화하는 이단·사이비 교회라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뉴스앤조이>가 이번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목회자 성범죄 283건의 판결문을 하나씩 살펴본 결과, 비단 '이단·사이비'에서만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게 아니었다. '이단'이냐 '정통'이냐에 관계없이, 목회자의 권위를 앞세우거나 목회자 말에 무조건 순종·의존하도록 강요하는 교회에서 주로 성폭력이 발생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피해자는 총 529명이었다. 그중 276명(52.2%)은 가해자의 목회 활동과 관련 있었다. '목회 활동과 관련된 사람' 276명 중 162명은 교인이었다. 제자·내담자·직원·부교역자 등 가해자와 '지시 감독 관계'에 있는 피해자는 53명이었고,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도 37명이었다.

피해자 성별은 여성이 515명(97.4%)으로, 남성 12명(2.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성별을 알 수 없는 피해자도 2명 있었다. 총 529명의 피해자 중 240명(45.4%)은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였으며, 20대까지 더하면 396명(74.9%)에 달했다.

통계를 종합해 보면, 가해 목회자가 종교 지도자라는 '위계位階 관계'를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인 피해자 162명에 대한 범행 중 가해자가 칼과 같은 흉기로 피해자를 협박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인들에게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거나,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통제·지배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판결문에는 가해 목회자가 자신만이 피해자를 '지도·양육·훈육'할 수 있다고 강조한 사실들이 드러나 있다. 한 목사는 피해자를 "사랑하는 딸"이라고 부르면서 '영적 아버지'를 자처했다. 또 다른 목사는 피해자에게 자신을 "아버지", "아빠", "서방님" 등으로 부르게 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이성 교제에도 간섭했으며, 다른 남성을 만나면 "음란하다"거나 "남자에 빠져서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다그쳤다.

법원은 이와 같은 목회자 성범죄가 '목회자와 교인 간에 존재하는 위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반복해서 지적해 왔다.

"피고인은 평소 자신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라고 칭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인 목사가 전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자신의 말을 거역하면 결국에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신도가 있으면 예배 시간에 그를 지목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비난을 하였다." - 2019년 인천지방법원, 기독교대한감리회 우 아무개 목사(173번)

"피고인은 (중략) 청소년 시절부터 위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이 깊은 피해자들이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빠와 딸' 관계를 내세워 단둘이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신앙심으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목사인 자신의 행동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기습적으로 추행하기로 마음먹었다." - 2017년 창원지방법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김 아무개 목사(25번)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할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이 내리는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피고인에게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 2017년 대전지방법원, 기독교한국침례회 노 아무개 목사(88번)

"피고인은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담임목사로서 깊이 신뢰하고, 피고인의 지시에 거부할 수 없는 교회 분위기 안에서 성장하여 온 점, 피해자들에게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가 전부인 상황으로서 피고인으로부터 추행 피해를 당하더라도 이를 신고하거나 타인에게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악용하여, 교회나 집에서 피해자들과 단둘이 있는 틈을 타 피해자들을 추행하기로 마음먹었다." - 2021년 서울동부지방법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황 아무개 목사(279번)

피해자 심리 지배해 범행
10대 청소년 교인 여러 명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인천새소망교회 김 아무개 목사. 그는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10대 청소년 교인 여러 명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인천새소망교회 김 아무개 목사. 그는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목회자 성폭력 사건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루밍'이다. 그루밍 성폭력 가해 목회자들은 범행 대상자를 고르는 과정을 거친 다음, 피해자를 위하는 행동 등을 하면서 환심을 샀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인과 달리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대해 주면서, 종국에는 가해 목회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도록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했다.

법정에 선 그루밍 성폭력 가해 목회자들은 "사랑하는 사이였다"거나 "합의된 관계였다"면서, 결별한 피해자가 뒤늦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고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와 10~20살 이상 차이가 났고 배우자도 있었다. 피해자는 '연인'이 아니라 가해자가 돌봐야 할 교육 부서의 중·고등학생이었다. 피해자들은 정서적 취약 상태에서 가해자를 심리적으로 깊이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법원은 2017년 노 아무개 목사(88번)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판결문에 '그루밍 성폭력'이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르는 단계를 거쳐, 피해자가 교회 내에서 자신에게 특별한 관계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등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의 수법을 취했다. 이 사건은 인천새소망교회 김 아무개 목사(22번) 사건보다 3년 먼저 판결문에 '그루밍 성폭력'을 명시한 사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해자에게는 부인이 있었고, 피해자는 성인이 될 때까지 피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다음은 그루밍 성폭력을 인정한 법원 판결문 내용이다.

"피고인은 청소년부 관리를 전담하던 전도사로서, 피해자가 오로지 교회 및 그곳에서의 인간관계에만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는 점을 잘 알고 그와 같은 취약점을 이용하여 위와 같은 피해자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함께 대외 활동을 하는 등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정서적 지배)' 수법으로 피해자를 간음 내지 추행하기로 마음먹었다." - 2020년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유 아무개 목사(174번)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롯한 학생들을 담당한 전도사로서, 나이 어린 신도였던 피해자의 신앙생활을 돕고, 피해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무를 부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평소 자신을 잘 따랐고 점점 더 자신에게 의지하고 순종하게 된 것을 기화로, 피해자를 장기간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피해자를 강제 추행, 강간하였다." - 2021년 인천지방법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안 아무개 목사(161번)

"피해자는 그동안 피고인의 이른바 '길들이기' 과정으로 인하여 성폭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자신의 말보다는 자신에 비하여 압도적인 권위와 신뢰를 받고 있는 피고인의 말을 더 믿을 것이라는 불안감, 처음 피해를 당한 후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하고 피고인과의 관계가 지속되면서 오히려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고통이므로 견뎌 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 등으로 인하여 피해 사실을 부모나 수사기관에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 2017년 대전지방법원, 기독교한국침례회 노 아무개 목사(88번)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가 어렵다.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시점이 늦고, 이를 알아도 공론화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회 내 다른 교인들과 인간관계가 단절될 것을 염려해 자신이 당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 박신원 실장은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자의 90%는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그루밍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정서적·신앙적으로 통솔·조종하는 식으로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뒤늦게 피해 사실을 깨닫고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도 했다.

박 실장은 "교회에서는 성범죄 자체보다도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을 더 큰 범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유혹에 넘어갔다'고 주장하면 이해해 주는 반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면 교회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사와 교인은 '신뢰 관계'
성범죄 발생하면 '가중 요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목사와 교인 간 관계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범행으로 규정했다. 양형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목사와 교인 간 관계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범행으로 규정했다. 양형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국회는 2019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을 개정해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해당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16세 미만 미성년 피해자에 대해서는 "합의하에 했다"는 가해자의 변명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경우 지난 6월 성범죄 양형 기준을 개정하면서 '인적 신뢰 관계'의 정의에 '제자·신도·부하' 등을 명시했다.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범행은 성범죄 사건 형량 산정 시 고려되는 '일반 가중 인자'다. 필수적으로 반영하는 '특별 가중 인자'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정해진 범위 내에서 더 높은 형을 선고하는 데 고려 요소로 활용된다.

양형위원회는 "실제 다수 발생하고 있는 사례를 이에 준하는 가중적 요소의 예시로 추가할 필요가 있다"며 인적 신뢰 관계에 '신도'를 추가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법원도 양형 기준에 이를 명시한 것이다. 개정 양형 기준은 2022년 10월부터 기소되는 모든 사건에 적용되지만, 법원은 그 이전부터 목사와 교인 간 관계를 '인적 신뢰 관계'로 천명하며 선고 시 불리한 요소로 참작해 오고 있다.

"피고인이 자신이 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교회의 신도이자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수회에 걸쳐 추행 또는 유사 강간한 사안으로, 피해자가 위 장애로 인하여 항거 불능 상태에 있음을 잘 알면서 목사와 신도라는 인적 신뢰 관계에 있음을 기화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지적장애로 인하여 범죄에 매우 취약한 피해자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범행이 이루어진 점에서 죄질 및 그 수법이 매우 나쁘다." - 2016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편 아무개 전도사(267번)

"피고인은 교회 목사로서 자신과 인적 신뢰 관계를 형성하여 온 교회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강제 추행 등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른 점…" - 2021년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기독교한국침례회 박 아무개 목사(122번)

"피고인이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성직자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자신에 대한 영적 권위를 존중하고 이를 신뢰했던 여성 청년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수회에 걸쳐 강제 추행을 한 것으로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 2017년 청주지방법원, 기독교한국침례회 배 아무개 목사(133번)

기반센 전문위원 진희원 변호사(법무법인 화평)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해당 교인은 범죄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속해 있던 공동체와의 관계 역시 상실하게 된다.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오던 교인들로부터 어느 순간 손가락질을 받고 교회를 떠나야 하거나, 교회를 직장으로 삼고 있다가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불합리한 억측과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까지 더해져 피해자는 더욱 고통받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신뢰 관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목회자들은 더욱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룩한 범죄자들' 기사 리스트

① '가해 목회자 259명' 성범죄 판결 10년 치 분석
② 10·20대 여성 교인에 집중된 피해
③ 성범죄 목회자 감싸고돈 교단들
④ '징계 불가'한 목사들…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⑤ 성범죄 저지르고도 강단에 서는 목사들
⑥ 해외 교단 사례로 본 목회자 성폭력 예방 및 대응
⑦ 매년 53만 기관 성범죄 경력 조회…교회는 '예외'
⑧ 주요 교단장들 "성범죄 경력 조회 도입해야"
⑨ 신고부터 징계까지,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⑩ 징계하면 끝? '피해 회복' 없는 교단 시스템
⑪ 교인 97.9% '목회자 성범죄 경력 조회' 찬성
[다큐] 거룩한 범죄자들: 2013~2022년 목회자 성범죄 10년 취재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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