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앞선 두 사건보다 박진희·박민희 씨(가명) 사건에 대한 교단의 대응은 그나마 나았다고 해야 할까. 자매에게 성폭력을 가한 목사는 2021년 1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가해자가 속한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21년 9월, 111차 총회에서 그를 제명하기로 결의했다. 교단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였다.

결과만 보면 기침의 대응은 적절한 듯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겪은 일을 고려하면 결코 교단이 잘했다고 볼 수 없다. 피해자들은 2021년 2월 기침 총회에 사건을 알린 후 가해자가 제명되기까지, 약 7개월 동안 교단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몇 개월간 이렇다 할 액션을 보이지 않는 교단에 항의하기 위해, 피해자들과 이들을 돕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가 총회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도 교단은 진행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불통'과 '불투명'.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이 교단을 믿기 힘든 가장 큰 이유다. 사건을 교단에 가져가면 목사·장로들이 징계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목회자인 가해자는 일반 신자인 피해자보다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높다. 교단 관계자 중 누구라도 피해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때마다 진행 상황을 공유해야 하지만, 대부분 교단이 그러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목사·장로들의 인식 수준이 떨어지고, 낮은 인식 수준을 메울 제도도 없기 때문이다.

박진희 / 저는 교단이 가해자를 제명하는 절차가 자발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너무 욕을 먹으니까, 망신당하니까 징계했다고 생각해요.

박민희 / 제명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만, 그 제명이라는 게 저희들한테 '미안해. 힘들었겠구나. 사과할게' 이런 의미는 아닌 거예요. '어쨌든 우리가 사과할 일도 아니고 너희랑 직접 만나지도 않을 거지만, 우리 입지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한번 조치를 취해 볼게' 이런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어요.

불통과 불투명

진희·민희 씨에게 7개월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기침 총회는 기반센이 사건을 알리는 공문을 보낸 후 처음에만 '논의하겠다'는 회신을 보냈을 뿐이었다. 기반센이 기침 관계자를 닦달했지만, 교단은 이후 어떠한 상황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서는 '윤리위원회 목사들이 항소심 판결까지 지켜보려 한다', '춘천지방회가 가해자의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부정적인 소문만 들려왔다.

박진희 / 교단에서 저희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저희가 기반센에 물어보면 기반센이 기침 총회 담당자와 어렵게 통화해서 알려 주는 식이었죠. 절차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랐고, 뭔가 진행이 된다는 말만 듣는 거니까 진짜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할 길이 전혀 없었어요.

박민희 / 어떤 과정에 있는지 계속 궁금했어요. 기반센에서도 문의는 했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기침 총회에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윤리위원회를 열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해요. 전화를 아예 안 받을 때도 있었다고 했고요. 교단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묵묵부답이니까 답답했어요.

박진희 / 당시 기반센을 통해서 듣기로는, 나중에 사건이 마무리되면 교단이 저희에게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여태까지 연락이 없어요. 그래서 기반센에 문의해 보니, 이게 명확하게 '사과하겠다'고 나와 있는 문서가 있지 않는 한 성사되기가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그냥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었죠.

이들은 만약 교단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면 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인지 감수성이 낮은 50~60대 남성 목사·장로들 앞에서라도, 그들이 피해자들을 지지하지 않고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보자'는 식의 권위적인 자세로 나온다 하더라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박민희 / 그런 고자세로 '와서 얘기해 보라'고 했어도 일단은 가서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거죠.

기침은 작년 9월 111차 총회에서 가해 목사를 제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직접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침은 작년 9월 111차 총회에서 가해 목사를 제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직접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피해자들에게는 교단과의 소통 창구가 없었다. 강소영 씨(가명)도 그랬다. 가해자는 2019년 5월 1심 판결이 난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광주동노회에서 면직됐는데, 소영 씨는 그가 어떤 절차를 통해 징계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판결 전 소영 씨 어머니가 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회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들었던 얘기는 "징계를 하려면 고소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15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노회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법원에서 1심 판결이 나온 후 가해자가 면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판결문을 비롯한 어떤 공문서도 받아 보지 못했다.

김영희 씨(가명)도 마찬가지였다. 기반센과 함께 예장통합 서울강북노회 목사 두 명을 만난 이후, 노회 재판국 판결이 나기까지 몇 달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징계가 다 결정된 후 기반센을 통해 노회 재판국 판결문을 받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결과는 '정직 1년'.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다 호소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호소한들 결과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오유미 씨(가명)가 교단의 폐쇄성을 확인한 순간은 2018년 12월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경기북노회 임시회였다. 피해자 한 명과 그를 돕는 교인들이 회의를 참관하러 갔는데, 노회는 이들을 막았다. 회의가 끝난 후 피해자에게 결과를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았다. 당시 노회 서기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회의를 일반 교인에게 공개할 의무는 없다", "우리가 사건을 없던 걸로 치겠다 한 것도 아니고, 조사하겠다는 정도는 충분히 다 알았을 것이다. 일일이 브리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오유미 / 노회와의 소통 창구는 서기 목사였지만,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은 듣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는 그도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연락도 안 됐죠. 저희는 가해자가 사과하고 사임한다면 정말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희가 계속 덮으려고 했어요. 요구 사항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계속 뒤통수 맞으니까 형사소송도 하고 언론에도 알리게 된 거죠.

교단의 불통과 불투명성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였다. 피해자들은 징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려 교단 홈페이지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예장통합 광주동노회·서울강북노회와 예장합동 경기북노회 홈페이지는 노회 소속 목사·장로가 아니면 회의록 같은 정보를 하나도 볼 수 없다. 기침 총회 홈페이지 역시 소속 목회자가 아니면 총회 규약이나 윤리위원회 규정 등을 볼 수조차 없다. 이러한 폐쇄적 운영은 교단이 과연 누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지 보여 준다.

박진희 / 저희 사건뿐 아니라 다른 교단에서 유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도 관심 있게 보도를 봤거든요. 근데 다들 대응이 비슷한 것 같아요. 우선은 문제를 부정하려 해요. 개방해서 논의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폐쇄적이고, 쉬쉬하고, 어떻게든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원하는 느낌이에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회피하고 거부하는 반응이고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교단이 교인을 보호하는 일에 중점을 두지 않는구나'였어요.

 

성폭력 피해를 당한 교인들은 대부분 주류가 아니라 일상이 힘든 사람들, 특히 아동·청소년의 경우 교회에 생활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에요. 저희 같은 경우도 당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아동 센터와 교회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어요. 성경적으로 보면 교단이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더 내밀어야 하는데, 오히려 폐쇄적이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니까 '과연 교인들의 안전을 생각하는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이런 본질적인 부분의 결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교단에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처지를 공감하고 정보를 적극 공유하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교단에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처지를 공감하고 정보를 적극 공유하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원 없음

소통이 되지 않으니 지원도 없었다. 혹시 교단에서 무엇이라도 지원을 받은 것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네 사건 피해자들은 모두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고 일축했다. 교단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유미 / 지원은커녕 노회가 피해자들 신상과 피해 내용을 공개하고 오히려 가해자로 몰았어요.

강소영 / 교단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게 상상이 안 돼서, 인터뷰 질문을 보고 코웃음이 먼저 나왔어요. 정말 상상이 안 돼요. 그냥 피해나 더 안 줬으면 좋겠는 정도죠.

<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피해자들은 모두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다. 믿고 의지했던 영적 권위자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가 수감되고 면직됐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피해가 발생한 지 짧게는 4년, 길게는 16년이 지났는데도 트라우마는 계속됐다. 해리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폐소공포증, 악몽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됐다. 이들에게는 지금도 일상이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생존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피해자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심리 상담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박진희·박민희 씨는 최근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했고, 가해자가 항소해 2심을 진행하고 있다. 오유미 씨는 1심 진행 중이다. 김영희 씨는 2018년 7월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는데, 2022년 11월 현재까지도 가해자에게 배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소영 씨도 2020년 2월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아직까지 배상금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에게 사건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다.

교단은 목사 자격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관리 책임 또한 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단은 목사 자격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관리 책임 또한 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이용필

성폭력 가해자의 배상 책임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목회자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교단에는 배상 책임이 없을까.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가 교단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2020년 6월 이재록 목사 개인과 만민중앙교회의 배상 책임을 모두 인정한 바 있다.

물론 만민중앙교회는 이재록 목사를 신적인 존재로 믿는 이단 집단이고, 교회가 그의 성범죄를 적극 은폐하려 했다는 사정이 있다. 그럼에도 판결문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법원은 만민중앙교회와 이재록 목사를 '사용자'와 '피고용인' 관계로 봤다. 만민중앙교회 교회 헌법에 목회자에 대한 지휘·감독 수단이 마련돼 있으므로, 둘 사이에 사용 관계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이재록 목사의 성폭력이 교회 사무를 집행하면서 일어난 일이므로, 그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교회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목회자가 소속한 교단에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있는지는 법원에서 다퉈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 교단의 책임은 명확하다.

김영희 / 교단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게 정상이에요. 가만히 있지 말고. 가해자 징계만 하지 말고. 피해자 상담은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 같고요. 금전적인 부분으로도 배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교단이 관리를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노회에서 목회자를 잘 관리했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강소영 / 가해자는 목회라는 활동을 매개로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건 교단이고요. 권한을 부여했으면 그에 맞게 잘하고 있는지 감독도 하고, 나쁜 짓은 하지 못하도록 관리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권한만 주고 나 몰라라 해서 나쁜 일이 벌어졌다면, 그 권한을 부여한 교단에도 당연히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박진희 / 사실 저희는 교단을 상대로도 한번 소송을 해 보고 싶어요. 저희가 때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할지 회의를 하는데, 매번 나오는 얘기예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례가 별로 없으니까요. 변호사님께 여쭤봐도 알 길이 없고…. 소송을 하고 싶은데 못 한 거죠.

법으로 규제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이 사건을 공론화한 가장 큰 이유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이러한 점을 우려한다. 법원은 가해자가 성범죄에 취약한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범죄 수위에 따라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단체에 최대 10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한다. 취업 제한 대상 기관은 유치원·학교는 물론 사회복지관·쉼터 등 다양하다. 이런 곳에 취업하려 하거나 이런 곳을 운영하려 하는 사람에 대해, 각 기관의 장과 행정기관의 장이 성범죄 경력을 조회할 수 있다.

가해자들은 법원에서 판결한 대로 일정 기간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단체에 취업할 수도 없고, 이런 곳을 운영할 수도 없다. 하지만 교회는 법으로 정한 취업 제한 기관이 아니다. 가해자가 교단에서 면직됐더라도, 교단이 난립하는 한국교회 현실상 성범죄 경력을 숨기고 교회에 취업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교회를 세울 수도 있다. 목회를 하지 않더라도 교회학교 교사를 하게 된다면 아동·청소년 등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위치에 있게 된다. 피해자들은 이런 현실을 우려한다.

박진희 / 저희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고령이라는 게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어요. 근데 저는 이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는 고령이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말로 상대방을 그루밍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에요. 숨이 붙어 있고 움직일 수만 있어도 얼마든지 재범할 수 있다고 봐요.

 

가해자는 10년간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기관에 취업이 제한됐는데, 교회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할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은 여전히 억울하다고 하거든요. 공판 때 왔던 동료 목사들, 제명 투표할 때 반대표 던진 목사들, 그런 사람들과 비공식적으로라도 얼마든지 목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단이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기는 한지 우려스러워요.

강소영 / 저는 목회자가 될 때나 교회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부서를 맡을 때나, 성범죄 경력은 당연히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교회학교 교사는 봉사직이기에 규제하기는 어렵겠지만, 공동체에서 합의가 된다면 세부적인 지침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죠. 저는 청소년 시기에 부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직후에 대학생이던 교회학교 교사에게도 성폭력을 당했거든요.

 

교회를 법이 규정하는 취업 제한 기관에 포함하는 건 어려울 수 있겠지만, 법으로 규제하지 않더라도 교회가 자성해서 그에 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이건 교회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정말 법으로 규제하는 데까지 가지 않도록, 교인들이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교회 안에서 합의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성범죄 경력 조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성 인지 감수성 교육을 하는 건 필요해 보여요.

교회는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청년 등 전 연령대가 주기적으로 찾는 곳이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는 지역 아동 센터는 열지 못해도 교회는 열 수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터뷰에 응한 피해자들은 교단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보려 했다가 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어떠한 과정도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단의 대응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묻자 "평가할 가치가 없다", "어디가 아쉽다거나 어느 부분이 부족했다고 말할 것도 없이 그냥 답이 없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의미 없기는 하지만, 교단이 어떻게 반응했다면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됐을까.

박민희 / 처음부터 어떻게든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 줬다면 저희가 상처를 덜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맨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서 계속 피하려고만 했잖아요.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징계하는 과정에서도 일단은 저희를 만나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조금 위로를 받았을 것 같아요.

오유미 /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가해자에게는 목사 자격 박탈로 확실한 처벌을 내려야 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처럼 만드는 일은 없어야겠죠.

강소영 / 사회 재판에서는 '피해자 보호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다든지, 그런 최소한의 보호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도 과한 욕심인 것 같긴 하지만.

 

그런 게 안 되면 상담이라도 지원해 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피해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떠나게 돼요. 근데 제 주변에는 교회는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못하는 바보가 많거든요.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데, 그런 방법을 혼자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국가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상담비를 지원해 줘요. 교단도 피해자들에게 여성주의 상담을 연결해 주거나, 그게 아니면 상담비라도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가해자들은 속속 돌아오잖아요. 그래서 좀 더 멀리 보자면, 가해자가 복귀하고 피해자는 떠나는 공동체가 아니라 '피해자가 돌아오고 가해자는 떠나는', 피해자가 용납한다면 그때 가해자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큰 꿈을 꿔 봅니다.

'거룩한 범죄자들' 기사 리스트

① '가해 목회자 259명' 성범죄 판결 10년 치 분석
② 10·20대 여성 교인에 집중된 피해
③ 성범죄 목회자 감싸고돈 교단들
④ '징계 불가'한 목사들…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⑤ 성범죄 저지르고도 강단에 서는 목사들
⑥ 해외 교단 사례로 본 목회자 성폭력 예방 및 대응
⑦ 매년 53만 기관 성범죄 경력 조회…교회는 '예외'
⑧ 주요 교단장들 "성범죄 경력 조회 도입해야"
⑨ 신고부터 징계까지,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⑩ 징계하면 끝? '피해 회복' 없는 교단 시스템
⑪ 교인 97.9% '목회자 성범죄 경력 조회' 찬성
[다큐] 거룩한 범죄자들: 2013~2022년 목회자 성범죄 10년 취재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