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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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주요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운동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기독교 여성/피해자의 섹슈얼리티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목회자 성폭력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운동의 맥락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방식의 운동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한계들을 짚어 보고 더 많은 공동체 내 폭력을 직면하고 아우를 수 있는 대안 담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을 심약하거나 요보호 대상으로 일반화하는 반성폭력 운동의 딜레마를 살펴보며 '안전할 권리'보다 '누릴 권리'를 고민하는 반성폭력 운동의 가능성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연재에서는 앞서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의 급진적 목소리와 발화 행위에 더욱 주목해 보겠습니다. 향후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진영과 기독교 구성원들이 조직 내 성폭력과 안전에 관한 주제를 다룰 때에, 섹슈얼리티 문제를 보다 활발하게 다루는 공론장을 만드는 데에 토론하고 소통할 아이디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투 운동과 
기독교 여성들 
: 요보호 대상에서 '발화하는 주체'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 저항해 왔던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은 미투 운동을 만나 더욱 활발해지며 각 교단의 '철옹성 같은 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계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 저항해 왔던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은 미투 운동을 만나 더욱 활발해지며 각 교단의 '철옹성 같은 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계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최근 2~3년간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미루던 오랜 성과들을 바삐 써 내려가는 중입니다. 헌법 개정과 지침서 발간, 상담 체계 마련과 예방 교육 체계화 등 많은 성과가 줄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를 여쭈었더니 활동가들은 2018년 한국 사회를 들썩였던 '#(해시태그) 미투 운동'을 꼽았습니다. 

"미투 이후 피해자들이 말하기 시작한 게 제일 큰 변화죠. 피해자들이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니까 교회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요. 요즘은 피해자가 '난 부끄럽지 않다. 왜 나를 감추려고 하느냐, 내 이름 드러내 놓고 해라'고도 하시고, 작년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우리가 피해자 대신 (회견문을) 읽으려고 하니까, '왜 나를 빼냐. 내가 교단에 가서 직접 얘기하겠다. 교단이 목사로 세웠으니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면서 인터뷰까지 다 하셨죠. 여성들의 적극성이 정말 높아지셨죠."

"기본적으로 강남역 여성 혐오 사건으로 발발된 미투 같아요. 교회 미투하면서, 그게 꼭 목사가 아니라도 정말 무수히 묻혀 있는 사건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왔죠. 기본적으로 교회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이라고 하는 것들은 워낙 많으니까요. 경험들이 나오니 그 여파로 교회 내 성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여성주의 예배 모임도 생겼잖아요? 그냥 묻히거나, 유야무야됐던 사건들도 정식 공론화가 되고, 각 교단의 철옹성 같은 벽들도 이제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확실히 미투 영향으로 신고해야겠다고 결심한 분들이 있으세요. 교회 성폭력 특징 중 하나가 인식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고, 또 문제에 대해 말 꺼내는 것도 굉장히 오래 걸린단 말이죠. 근데 당시 정치인, 공직자 사건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나도 신고해야겠다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내 문제도 해결해 달라'는 것이죠."

"교회 미투 전에는 '꽃뱀'이나 '이단' 같은 소리를 들으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고 사건은 무마되었다면, 이제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말할 곳을 찾으셨죠. 2018년에 우리 활동이 교단에 알려지니까 한동안 굉장히 오래된 사건들을 제보하시더라고요. '공소시효도 지났고, 교단법도 정비 안 돼 있고, 해결 못 할 건 알지만, 내 얘기를 들어 달라.' 교회협 여성위원회에도 직접 제보들이 들어왔고요. 아! 우리에게 해결을 요청하고 계시구나. 우리도 그래서 중심 과제로 성폭력을 인식하게 됐죠."

대다수 활동가들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2018년 한국 사회 미투 운동은,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활동가들의 위 증언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피해 여성들의 주체적 발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여성들은 더 이상 과거의 피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개인이 경험한 성폭력 경험을 구조적·조직적 측면에서 재인식하고 '고발하고 발화하는 주체'로서 한국 사회와 기독교 각 교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활동가들은 미투 운동을 계기로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을 말하는 존재'로 변화했다고 인식하고 있는데요. 이는 곧 과거의 여성들이 '성폭력을 말하지 못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기독교 여성들은 여러 기독교 조직 안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한 성폭력 경험을 적극적으로 말할 곳을 찾고, 들으라 요구하고, 책임과 해결을 요청하는 매우 정치적 주체로 변모하였습니다. 파편화되어 있던 개인의 경험들이 모이면서 연대를 이루었고,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보다 구조적 측면에서 교회 성폭력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제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운동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도, 슬퍼하는 피해자도 아닌, 수치스러웠던 성폭력 피해 때문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가리지 않는, 자신의 섹슈얼리티 권리를 주장하는 '성적 주체'로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 저항해 왔던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은 미투 운동을 만나 더욱 활발해지며 각 교단의 '철옹성 같은 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계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2년 전까지도 '어디서 성폭력을 들먹이냐'던 각 교단 총대들이 더 이상 회피하지 못하고 문제를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이러한 현장의 변화가 곧 교단법 개정 등 조직 내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미투 운동은 한국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미투'를 넘어 '위드유'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과거 고통스러움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 줄 언어를 찾게 되었고, 자신의 피해를 피해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 이러한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투 운동과 반성폭력 운동은 남성을 고발하고 괴롭히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찾아 주고 더 많은 목소리를 통해 보다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조직의 젠더 문제를 드러내는 데에 있을 겁니다. 더 많은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과 여성들 일상의 섹슈얼리티 경험이 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해서 저는 더 많은 교회 미투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응원하고 바랍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더 많은 여성이 자기 경험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성폭력은 살인과
무엇이 다른가
: 인정 투쟁

개인이 속한 사회의 문화와 제도가 '성폭력 범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처벌하느냐에 따라 사회 인식뿐만 아니라 반성폭력 운동의 담론과 목표, 전략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또 성 관념이 매우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치열한 인정 투쟁을 거치게 되고요. 이러한 인정 투쟁 과정에서 해당 성폭력 사안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취약성, 가해자의 폭력적 의도가 강조되어야 유리한 측면이 분명히 있죠.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성폭력에 관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와 같은 인정 투쟁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위와 같은 심각성·취약성 같은 것들을 유난히 강조할 필요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책임, 그리고 강제력 여부를 묻지 않는다면, 서로의 성적 경계가 침해되는 일을 지금보다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이나 취약성에 주목하기보다 인정 투쟁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한국 사회 성폭력에 대한 인정 투쟁, 또 한국 사회에 더해 종교적 맥락이 더해지면서 중첩되는 피해자의 인정 투쟁 과정과 맥락에 질문해 보는 것이죠. 

예컨대, 왜 성폭력은 인정받으려면 투쟁에 가까운 치열한 과정이 필요한지, 다른 폭력 범죄와 다르게 피해자는 누구로부터의 어떤 인정이 필요한지, 성과 안전에 관해 어떤 관념을 가지는 사회이길래 피해자가 직접 자기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지, 왜 유독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 구성되었는지(살인 사건이나 방화를 막기 위한 사회운동이나 '반살인 운동' 단체는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인정 투쟁에서 피해자들이 해방될 수 있을지 등 다 열거할 수 없는 성폭력의 인정 투쟁과 성, 안전에 관한 토론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또 궁극적으로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구성되는 운동 담론 또한 언제나 피해자에게, 가해자에게, 또 해당 조직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요. 정확히 말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죠. 사회가 인정하고 공감할 만한 성폭력 피해와 가해의 의미를 구성하는 일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담론과 대책들은 운동에도, 피해자나 가해자에게도, 또 당사자들이 속한 공동체에도 결정적인 판단 기준으로 세워지게 되니까요. 이는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어떻게 정립하는지, 그리고 사후의 회복 여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작업이고, 완성형이란 있을 수 없죠. 

'취약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다시 사유할 용기
교회가 건강하고 적극적·주체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하고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까요.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가 건강하고 적극적·주체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하고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까요.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심각한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수반된 성폭력만을 성범죄로 인정하는 사회 법과 성폭력을 치리할 제도 자체가 없는 교회법 사이에서,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들은 필연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실제로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 등의 개념이 도입된 요즘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지 불투명하기도 한데요. 2022년 7월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성범죄 양형 기준에서 '인적 신뢰 관계' 이용 성범죄 피해자 유형에 '신도'를 추가 명시1)하였죠. 이 부분이 현장에서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지가 추후 분석될 필요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법적·문화적 사각지대를 돌파하고자 구성되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과 현장에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는 화간/간음을 저지른 '상간녀'/'창녀'와, 순결하고 연약한 친족 성폭력의 '요보호 대상'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이 기나긴 질문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치 성매매 담론 논의에서처럼 언제나 자발성과 비자발성 논쟁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성에 관한,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의에서 아직 이 양극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부장적 기독교 조직의 성폭력 통념에 문제 제기하는 '매우 급진적'인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이 한국의 가부장적 성 통념과 기독교 성 규범이 중첩되는 '한국' '기독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완전히 돌파하지 못하고 교묘히 굴절되는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여성을 성적 주체가 아니라 '취약한' 존재로 주변화·객체화·대상화하는 한계를 갖게 됩니다. 이 굴절되는 지점에 우리는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는 엄연히 존재하며, 이것은 그녀의 성폭력 경험과 성폭력을 당한 이후를 살아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는(배상미, 2017:35)2)" 매우 역동적이고 역사적이며, 다층적 의미소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피해자는 폭력을 맞닥뜨린 취약하고 고통스러운 몸과 동시에,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살아가야 하는) 아무렇지 않은 몸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며, 피해 당시의 순간을 포함한 매 순간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행위성을 가진 주체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생애는 성폭력 피해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은 단일하지 않으며, 고통받는 연약한 피해자로만 살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 경험은 피해자의 전체 삶의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 삶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점(변혜정, 20043))을 놓치지 맙시다. 여성/피해자는 언제나 성별 또는 피해로만 규정되는 단일한 집단일 수 없고, 성별뿐만 아니라 연령, 계층, 학력, 인종, 직업, 가족 관계, 성격, 성 정체성, 직업, 섹슈얼리티 경험, 종교 등 다양한 맥락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기를 반복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진 능동적 주체, '사람'입니다. 비록 가부장적 한국 기독교 문화 속에서 이러한 주체성이 가질 수 있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위와 같은 개인 차이를 고려한다면 모든 여성/피해자들이 모두 같은 한계를 갖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에서만 피해자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배상미는 근본적으로 다른 폭력과 성폭력이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성적(sexual)'이기 때문인데도(배상미, 앞 논문:24),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는 사회의 반성폭력 운동도 최근에서야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성폭력 운동 진영이 생산한 다양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과 피해자들을 '피해자스러운' 모습 안에 가두려는 가부장적 욕망을 비판하는 맥락 위에서(배상미, 앞 논문:24)" 이제 다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아름답습니까. 피해자를 '피해자다움'에 가두려는 의도라는 것이 가부장적 욕망에 기인한 것이니, 이를 돌파해야 한다는 제안이 말입니다.

기독교 여성들의
'급진적' 
성 해방운동 가능성

공소시효로부터 '잊히고', 폭행·협박의 흔적을 증명할 수 없어 '삭제된' 자신의 피해를 공론장에서 '발화한' 여성/피해자들의 행위는, 국가·사회·제도·교회(법)가 다 담지 못하는 개인적·구조적·종교적 섹슈얼리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여성들의 절규였습니다. 또한 이미 드러났고 향후 계속해서 나오게 될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였고, 무엇보다 더 이상 '화간'의 자리에도, '요보호'의 자리에도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성적 주체'이자 '정치적 주체'로의 급진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한국 여성운동의 측면에서 매우 '급진적인 성(sexuality) 해방운동'이 아닐까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은폐되었던 각계각층의 성폭력이 폭로되고 오늘날 여성이 놓인 현실에 대한 자각들이 더 이상 가둬지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미투 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기독교 성폭력 사건들 또한 가시화됐고, 사회 법의 '신뢰 관계 양형 기준' 조정, 각 교단 헌법 개정, 시기 및 대상에 따른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 등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25년 이상을 투신해 온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활동가들의 '저항의 시간'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제왕적 목회자 성폭력'의 심각성을 기독교 안팎에 고발하고 이로 인해 상처받은 '연약하고 취약한 약자를 보호할 책임'을 강조하는 데에 방점이 있었고, 이는 결국 여성 피해자를 남성 목회자로부터 보호해야 할 '요보호' 대상으로, 가해 목회자를 통제가 불가한 '괴물'로 제한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한계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성폭력 피해의 순간과 피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보기, 성폭력 취약자로 분류되는 아동·청소년·여성에게 공개적으로 이들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할 장을 제공하는 것이 '성폭력 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열등하고 부정한 것, 정상적 성 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는 사회 시선에 맞서 피해자가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누릴 '권리'를 주장하기." (배상미, 2017:35) 

기독교 여성/피해자에게 교차·중첩되어 작동하는 여러 권력과 문화,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기독교 여성/피해자에게 교차·중첩되어 작동하는 여러 권력과 문화,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취약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사유한다는 것이 운동적 측면에서 어떤 실천적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자 배상미의 몇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함께 상상해 보시죠. 여성으로서 강자가 행하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섹슈얼리티를 향유하고 '누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반성폭력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너무 급진적인가요? 나아가 반성폭력 운동이 규범적 성 행동에서 벗어나는 성적 언행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여성/피해자의 '보다 다양한 성적 경험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실천할 권리'를 저해하는 폭력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재정립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교회가 여성/피해자의 수동적·소극적인 섹슈얼리티가 아닌, 건강하고 적극적·주체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하고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까요? 

이미 많은 기독교 여성들은 교회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에 대한 인식과 관심, 애정을 기본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함을 바탕으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긴밀하게 소통하며 일생 동안 성적 존재로서, 또 사회적 존재로서 크고 작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기독교 여성은 요보호 대상도, 위험인물도 아닙니다. 남성들과 같은 욕구와 욕망을 가진, 누구보다 더 뜨거운 심장과 날카로운 이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잘못되거나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가부장적 한국 사회, 남성 중심적 교회 문화와 목회자들의 기울어진 권력 남용, 일생에 거쳐 젠더화된 신앙생활, 그리고 반성폭력 운동 담론에 있을 겁니다. 기독교 여성/피해자에게 교차·중첩되어 작동하는 여러 권력과 문화,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긴 글을 덮으며 
더 긴 질문들을
여러분께 드립니다!

어쩌면 그동안 목회자도, 기독교 여성들도 서로를 조심하고 피하라는 메시지를 받아 왔던 것은 아닐까요?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성'을 가리고 눈치만 보느라 그 귀한 선물의 값어치를, 그 고귀함에서 나오는 신비함과 즐거움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죄악시하고 위험하다고 회피만 해 온 것은 아닐까요? 10회에 걸친 기나긴 연재를 마치면서 내어놓는 결론치고는 우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금기시되었던 기독교 여성과 (예비) 목회자 간의 데이트 또는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혹시 모를 위험한 성폭력 상황에 대비해 미연에 방지되어야 하는 '부적절한 것', '위험한 것', '금지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논거로는 성폭력을 예방할 수도, 성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교회 성폭력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인간의 통제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섹슈얼리티를 등한시하고 통제 대상으로서 죄악시해 온 결과는 아닐까요? 이제라도 기독교 모든 구성원들의 다양한 성적 경험이 탐구되고 시도되고 선택하고 누리고 책임질 수 있는 섹슈얼리티 권리 확보라는 맥락에서 섹슈얼리티와 성폭력에 관해 다시 논의할 공론장이 빨리, 그리고 자주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 여성/피해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평등하고 안전한 성적 관계들의 연합을 꿈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발칙하고 솔직한, 보다 생산적이고 건강한, 보다 따뜻하고 신앙적인 공동체 문화에 대해 재논의할 좋은 기회가 마련될 거라 기대해 봅니다. 앞서 오랜 글들의 길목 길목에서 다룬 이야기들과 그 소재들, 크고 작은 주제들을 통해 우리의 논의가 더욱 풍부해지고, 깊이 있는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귀하게 쓰이길 기도합니다.

본 연재는 2023년 성공회대학교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 졸업 논문을 바탕으로, 그리고 기독교 여성으로서 저의 개인적 신앙생활 경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또한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로서 촉발되었습니다. 반복되는 목회자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1998년 최초의 공청회로부터 최소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군분투해 오신 모든 교계 반성폭력 활동가들께 다시 한번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 또한 그분들이 계셨기에 살아남아서, 다시 용기를 내서, 급진적이고 발칙한 발화를 하는 한 여성 주체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이 연재의 중반에 드렸던 질문을 상기해 보면서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기독교 여성/피해자의 성적 해방이 목표가 되는 반성폭력 운동을 상상해 봅니다."

 

1)  <뉴스앤조이>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4513
2) 배상미(2017),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 <여/성이론>, (36), 12-37. 
3) 변혜정(2004), "성폭력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한국여성학>, 20(2),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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