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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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선 8회의 연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소속 주요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운동 담론, 그리고 피해자 섹슈얼리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은 두 번의 연재는 앞서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와 기독교 여성의 섹슈얼리티 논의에 관한 몇 가지 방향과 아이디어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교회 성폭력은 목회자 성폭력이다?'
: 운동 담론을 비판적으로 읽기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최소 25년의 역사 동안, 반복되는 목회자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각 교단에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저항하고 투쟁해 왔습니다. 각 교단들은 이에 책임 있는 응답을 하지 않은 채 은폐와 회피를 거듭하며 피해자와 운동 주체들을 외면해 왔죠. 다행인 것은 최근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교회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더욱 거세진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화와 기독교 여성들의 연대는 '제왕적'이라고 불릴 만한 권력을 휘두르며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짓밟는 목회자 성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운동 주체들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더욱 가열차게 각 교단 헌법 개정, 피해자 상담 지원 체계 마련, 여성신학적 성서 해석 연구 및 발간 사업들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 구조 안에 진입하기 위한 여성 대표성 확보 운동까지 다각의 반성차별·반성폭력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그러나 운동은 조직 전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성적 침해 문제와 '모든' 구성원의 동등한 섹슈얼리티 회복에 관심하기보다는, 조직적 권력과 책임을 가진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기독교 성폭력은 대부분 목회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담론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운동 주체들에게 신고·접수되는 피해 사례가 목회자 성폭력 사건이 다수였고, 이러한 사건의 해결과 처리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목회자 외에 평신도 간의 문제를 교단 차원에서 치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논의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죠.

"사실 상담 의뢰의 60~70%가 교회 리더십에 의한 피해이기는 해요. 그럼 이게 다수라고 볼 수는 있죠. 그런데 이것만으로 '교회 성폭력은 목회자 성폭력이다'라고 하면,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들의 해결 방안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중략) 작년에 개신교인 설문 조사 내용을 보면 일반 교인이 가해자라고 응답한 비율이 꽤 많이 나왔거든요. 분명히 많이 발생하는 거죠."

제가 활동가들께 '교회 성폭력은 목회자 성폭력이다'라는 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드려 보았는데요.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러한 담론의 효과가 기독교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들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이해하게 하거나, 물리적 정도에 따라 피해를 위계화·사소화할 수 있는 문제, 또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 외에 조직 내 다양한 섹슈얼리티 침해 문제들이 비가시화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서는 활동가들도 저의 문제의식에 동의했지만, 현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21년 개신교 성 인지 감수성 여론조사'1)를 통해 개신교인 800명을 온라인 조사한 결과를 볼까요? 최근 3년간 출석 교회에서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다른 교인이 피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장로 등 교회 중직자, 청년부 리더, 목사와 교역자 등 교회 안에서 권력과 권위, 역할을 가진 직분자들을 모두 합산해도 모든 유형에서 가해자는 압도적으로 일반 교인이 더 많다는 응답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결과가 공개되자 아래와 같은 댓글이 작성되는 것을 활동가들이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그것 봐라. 교회 성폭력은 이렇게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성도들도 이렇게나 많이 일으킨다. 비단 목회자들만 가해자인 게 아니다." 

같은 결과에 관한 언급인데 매우 다르게 들리시죠? 문제를 해결할 의도라기보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태도에 대화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요. 매우 입체적으로 기독교 현장을 분석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위의 조사 결과를 가지고 '교회 안에 목회자 말고도 가해자는 얼마든지 많으니, 목회자만 가지고 문제 삼지 마라'고 하는 방향의 해석이 나온다면, 우리는 또다시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화'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단의 책임을 덜자고 성도들을 가해자화하려 하다니요. 제가 목회자 성폭력에만 집중하지 말고 시야를 좀 넓히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의도가 전혀 아닙니다.

물론 문제를 돌파할 운동 담론을 연구하고 구성하는 운동 진영 내부의 고민이 단순히 누가 가해를 더 많이 저지르냐에 국한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위 조사가 기독교 현장 상황을 모두 반영한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겠죠. 우선 성희롱·성폭력에 관한 직·간접 경험을 모두 질문했기 때문에 성별에 대한 유의미성이나, 응답자의 연령층 분포도 자세히 볼 필요가 있겠죠. 세대에 따라 성 인지 감수성이나 성폭력에 관한 인식이 매우 차이가 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전체 기독교인 중 일반 교인의 숫자가 목회자보다 월등히 많고, 신앙생활에서 대면하거나 교류하는 시간 또한 목회자보다 일반 교인 간 더 많을 것이기에 이러한 변인들이 더욱 고려되어야겠죠. 어찌 되었든 우리가 이 조사에서 유의미하게 볼 수 있는 점은 교회 안에서도 '가벼운 성적 농담'에서부터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까지 다양한 유형의 섹슈얼리티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인 간에 발생하는 성적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사실 예방 말고 별로 답이 없거든요. 교인들은 예방 차원의 인식 개선 교육을 넘어서는 교단의 실질적 규제나 치리가 불가능하잖아요."

위 활동가의 이야기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실무적 차원에서 고민을 더해 줍니다. 목회자성폭력 외에 교인 간 발생하는 크고 작은 모든 성적 침해 문제에 대해서 각 교단이 어떤 방향 제시와 규제 등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목회자들은 교단이 부여한 실제적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관리·통제할 의무도 교단에게 있지만, 교인 간 문제에는 각 교단이 관여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종교는, 교회는, 그리고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교회 성폭력 개념을 재구성하기(1)
: 없었던 게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그 일들
: 목회자 성폭력을 넘어 다양한 폭력에 응답하기

피해자가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고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도,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 목회자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라고 외치는 활동가들에게 각 교단은 '벽'이었고 '철옹성'이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목회자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여성들을 목도하면서 활동가들이 강력하게 주장해야 했던 것은, 각 교단이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을 부여한 목회자들에 대한 인사人事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었죠. 그 외에도 활동가들은 목회자와 교인 간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폭력이 장기간 은폐되는 문제, 발생 후 교회 공동체가 받을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목회자 성폭력에 집중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양적으로만 보면 일반 교인들 간의 문제가 훨씬 더 많다고 느껴지죠. 그 문제도 분명히 다뤄야 하긴 하는데. 그 심각성, 해결의 까다로움, 공동체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봤을 때, 그리고 교회 구조 안에서의 중요도와 피해자의 심리적인 타격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결국 목회자들 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거죠."

여전히 매스컴이나 언론에서는 기독교 성폭력 문제에 관해 목회자에 의한 사건만을 다루게 되고 피해자들의 모습은 매우 단편적으로 재현됩니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의 한국 여성운동의 맥락에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서도 '#교회_미투, 처치투, 위드유' 등  교회 내에서의 성폭력 경험을 고발하는 여성 주체들의 목소리가 활발히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고발하는 대상은 목회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발화는 기독교 조직 전체에서 사회와 동일한 양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젠더 권력을 드러냈고, 공고한 기독교의 성차별적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를 본격화한 촉발점이 되었죠. 

활동가들 또한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미투 운동 이후 목회자 성폭력뿐만 아니라 교인 간 성폭력 상담도 많이 증가되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교인 간 성폭력이 증가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고요. 가해자가 누구든 기독교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의 공통 특징이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문화와 공동체의 관계성이고, 기본적으로 성폭력이 젠더 권력의 불균형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독교 내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일상적 성폭력들이 이미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성폭력은 '대부분이 목회자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피해 폭로, 신고, 공론화가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운동은 '교단이 부여한 권력을 남용하는' 목회자들의 성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미투 이후에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목회자와 교인 간의 관계가 아닌 피해로 상담을 신청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확실히 여성분들, 한국 사회의 성 인지 감수성이 올라감에 따라서 교회 안에 다양한 성폭력을 인식하고 과거에 비해 문제 제기를 수월하게 하시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이러한 맥락에서 미투 운동 전에 일반 교인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운동 주체들에게까지 닿은 신고율이 낮았던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없던 게 아니라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가려져 있고 덮어져 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교회 성폭력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기보다 진즉에 드러나야 할, 이미 알고 있었어야 할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사소하다고, 별거 아니라고, 그냥 쓴 마음으로 넘어가던 우리 모두의 불편함과 불쾌함들이 떠오른 것입니다. 더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드러나도록 우리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교회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폭력 앞으로 나아가 직면해야 합니다. 곪고 있던 상처들이 드러나면 그때는 소독하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곧 새살이 날 것입니다. 가장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부터, 가장 작은 관계에서부터, '작은' 폭력과 침해가 만연한 일상에서 '큰' 폭력도 발생합니다.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더 많은 다양한 폭력이 드러나야 합니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폭력과 가벼운 책임을 져도 괜찮은 폭력, 두 가지만 존재하는 한 반성폭력 운동의 딜레마는 지속될 것입니다.

"결국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평등한 교회가 될 수 있는가'가 이 교회 성폭력 문제의 답이죠. (중략) 결국은 그거예요. 그러니까 성폭력 운동을 한다는 거는, 교회를 어떻게 하면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죠."

다른 사회운동도 그러한 면이 있지만, 특히 반성폭력 운동은 늘 앞서 걷는 피해자들의 경험과 발화에 따라 방향을 조정하고 쫓아가기 마련입니다. 현장에서 주로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경험하는가에 따라 운동 또한 그에 맞춰서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죠. 피해자가 없다면 반성폭력 운동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반성폭력 운동 담론은 피해자의 피해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늘 비판적으로 분석되고 재구성되기를 기꺼이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교회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성평등한 문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우리들의 교회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성평등한 문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운동 25년, 무엇이 변하였는가

앞선 연재들에서 폭행과 협박이 없는 형태로 발생하는 목회자 성폭력의 발생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고 피해자와 목회자의 특수한 관계 맥락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주체들은 '친족 성폭력' 개념을 차용하였고 활동가들은 현재도 친족 성폭력 담론을 많이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사회적 충격요법으로도 적절하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성폭력이 그렇게까지 충격받아야 할 내용일까요? 주변에서 이렇게나 많은 일상적 성폭력들이 있는데, 또 최소 25년 넘게 목회자들에 의한 성폭력을 보고 들어 왔는데 여전히 충격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충격은 현장에서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줄까요? 앞서 저와 친족 성폭력 담론이 현장에서 작동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우려도 짚어 보았고요. 이 개념을 통해 교회 공동체 전체의 회복과 성평등 운동을 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운동 주체들의 고민들도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삶의 주체이자 인식의 주인인 피해자 자신이 경험을 어떻게 해석·돌파·수용·인식하는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피해자 본인의 경험을 친족 성폭력이라고 명명할 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취해야 할 입장이 '어린아이와 같이 취약하고 미숙한, 연약하고 선택권이 없는, 수동적인 여성 피해자'로 보여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상황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수월한 '수동적·피해자적 섹슈얼리티를 가진 여성' 프레임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성폭력이 젠더 관계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구성되기보다 강력하고 단일한 남성 권력의 결과로, 개인화된 비극으로 구성될 때 여성들은 피해를 당한 고통스러운 피해자로서만 존재하게 된다(변혜정, 2004:62)2)"는 비판적 분석을 우리 현장에도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단순화되고 납작해진 피해자의 정체성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 공동체의 회복과 성평등 운동 또한 묘연해집니다. 조직과 권력자들을 연약한 약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과 배려의 주체로만 호명하기 때문에, 그 권력은 계속해서 단단해지고 약자는 보다 약해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조직 내 젠더 권력이나 섹슈얼리티에 관한 분석이 어려워집니다. 

또한 기독교 내 다양한 섹슈얼리티 침해 문제 가운데 친족 성폭력에 해당하는, 매우 지속·반복적이거나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가해 행위가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을 중심으로 운동 진영이 담론화하고 투쟁하다 보면, 의도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사소화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따라 피해의 양상, 피해자 숫자, 지속 시간 등의 심각성을 나열하여 피해 자체를 위계화하게 되거나 피해 자체를 자극적으로 재현하거나 소비하게 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겠죠.  

운동 초기에 활동가들이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구성한 운동의 담론들이 현재까지 유의미하게 활용되고 있을 만큼, 어쩌면 오늘의 교회는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이라는 전통적인 반성폭력 운동 담론 외에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던 한계와 그 한계를 돌파할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고 불가능했던, 그만큼 견고한 가부장적 기독교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교회 성폭력 개념을 재구성하기(2)
: '공동체 성폭력' 담론, 
  평등한 구성원으로 그들을 호명하기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이미 '공동체 성폭력' 개념을 도입해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친밀하고 신뢰가 있는 조직의 관계성을 잘 설명하면서도 관련 문제를 법적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닌, 각 공동체 조직들의 노력과 실천이 필요함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해서입니다. 

"이 친족 성폭력도 공동체여서 힘든 거죠. 친밀하고 신뢰한다는 게 가장 큰 특성이잖아요? 또 하나는, '정의' 개념이죠. 친족 성폭력은 정의까지는 얘기하기 어렵지만, 교회는 정의로운 곳이어야 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더 은폐되기 쉬운 구조다, 적어도 우리 공동체는 불합리하지 않아야 내가 그 공동체 구성원으로 있을 거잖아요. '내가 피해를 당했지만 이걸 드러내면 이 정의로운 공동체가 힘들어질 거야, 난 여기에 소속되기 힘들 거야.' 친족도 마찬가지죠. 결국은 공동체 성폭력이다."

흔히 '신앙 공동체'로 일컬어지는 기독교 조직 내의 교제와 친밀함은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로서 서로의 일상에 거리낌 없이 관여하고, 삶을 나누는 기도 제목과 보살핌을 나누는 것'으로 표상됩니다. 이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문화적 특성만 강조하다 보면 개인 간의 경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취약함을 갖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겠지요. 이렇게 신앙생활 속에서 취약해진 개인의 경계 감각 제고와 경계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데에도 공동체 성폭력 개념은 도움이 됩니다. 또 가해자 처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해·피해 당사자들이 공동체에 미치는 어려움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고 회복시킬 건가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 또한 공동체 성폭력 개념에 기대해 볼 수 있는 효과입니다. 

또한 기독교 성폭력의 유형과 개념 또한 재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에서 '과대표'되었던 목회자 성폭력 유형을 조정하여 더욱 세밀한 관리와 통제, 교단 특별법이 필요한 유형인 목회자 성폭력을 기독교 성폭력 중 하나의 유형으로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목회자 성폭력은 친족 성폭력과 유사하다'는 기존 담론을 조정하여, 모든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발생하는 폭력적·가부장적 조직 문화와 무너진 경계를 제고하기 위해 공동체 성폭력으로 '상향 조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목회자 성폭력 사건'만'을 효과적으로 치리하기 위한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을 넘어, 조직 구성원 전체를 보호하고 피해를 위계화·사소화·파편화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이 선물하신 평등한 섹슈얼리티 권리와 책임을 누릴 수 있는 기독교 문화 실현을 위한 운동 담론을 상상해 봅니다.

"교회는 예수 제자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회보다도 더 책임 있게 성폭력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해야 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거, 그다음 우리 교단을, 교회 전체와 공동체를 바꿔 내는 것. 그게 우리의 과제일 겁니다."

더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드러나도록 우리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더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드러나도록 우리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각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자체가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궁극적 목적일 리 없겠지요. 운동 주체들은 25년 이상 피해자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외쳐 왔지만, 최소한을 말한 것일 뿐 그것 자체가 운동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우리 기독교 구성원 전체는 이제 우선 과제와 세부 목표들에 관해 더욱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연약한 약자이자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와 가해 목회자에 대한 처벌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해서 피해자 집단의 '단일하고 통일된 비참한 경험'을 자원으로 하는 운동의 한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오히려 '제왕적' 권력을 지닌 목회자의 권력과 위치를 박탈하여 공동체 구성원 1인의 자리로 재위치시켜 공동체적 해결의 실마리를 논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은 어떨까요.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삶의 맥락 속에서 섹슈얼리티와 욕구, 그리고 그에 대한 침해를 규명하고 여성/피해자의 성과 성폭력 경험들 간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공론하는 반성폭력 운동 담론은 불가능할까요. 목회자 성폭력 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유형과 복합적 기제의 기독교 내 성폭력 경험을 다중적으로 발화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문화 전체에 흐르는 가부장적·남성중심적 가치관에 문제 제기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미투 운동 이후 완전히 달라진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지형을 인식하고, 급진적 정치 주체인 기독교 여성들의 피해를 위계화·사소화하거나 나열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면서, 여성/피해자가 단순히 요보호 대상이거나 음란하고 위험한 존재로 이분화되지 않을 수 있는 대안 담론 모색 테이블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함께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어려운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본 연재와 관련된 발제를 마치고 빠져나오기 직전, 한 분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입을 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함께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 

"제가 바로 그 피해자입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제 삶이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오장육부가 다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교회는 절대로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 그분 앞에서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아려 드리지 못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전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매우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여성이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정당하고, 우리의 신음은 더 크게 들려야 합니다. 울부짖는 피해자가 아닌, 연약하고 비참한 여성이 아닌, 섹슈얼리티를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 바로 '여성'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이 우렁찬 호명에 응답해야 할 겁니다. 교회도 바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여성으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성적 대상화되거나, 보호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연약하지도, 음란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을 책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내 몸과 성을 충분히 누리고 사랑할 것입니다. 안전할 권리가 아닌, 욕망하고 누릴 권리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1) 2021 개신교 성 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조사 시기 2021. 8. 30. ~ 9.9 / 조사 대상 만 19~65세, 교회 출석 개신교인 / 응답자 특성 여성 55.7%, 남성 44.3% (연령대: 20대 17.7%, 30대 18.7%, 40대 24.2%, 50대 25.0%, 60대 이상 14.3%)

2) 변혜정(2004), "성폭력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한국여성학>, 20(2),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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