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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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과정에서 구성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제왕적 목회자와 요보호 피해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구성된 운동의 배경과 이에 따른 실천적 한계에 관해 다뤘고요. 지난 글에서는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가 '화간'을 저지르는 음란하고 위험한 '상간녀'와, 벗어날 수 없는 가족 굴레 속에서 무차별적 폭력의 대상이 되는 순결하고 연약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 사이에 취약하게 놓이게 된 여러 가지 맥락을 살펴봤습니다.

성폭력이 자꾸만 화간으로 굴절되는 피해 현장에서 내렸던 처절한 선택인 '화간 비판' 담론과 약자를 보호하고 가해자 처벌의 책임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차용한 '친족 성폭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또한 이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 질문과 우려를 나눔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했던 교회 공동체의 가족적 분위기, 호칭과 문화, 목회자의 윤리적 기준과 피해자다움 등을 좀 더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섹슈얼리티에 '교회'라는 특수성을 더욱 반영해,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의 몸에 교차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따로 떼어 보겠습니다. 종교 조직 안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권력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의 신학적·신앙적·문화적 영향을 교차적·중첩적으로 받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몸과 섹슈얼리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번 주제인 '운동의 피해자 담론(3)'은 지면 관계상 (상), (하) 두 편으로 나눠 게재할 예정입니다.

각 교단 지침서의 신학적 근거:
성과 성폭력에 관한 급진적 이해

각 교단은 성폭력 대응에 관한 '신학적 근거(또는 신학적 진술, 신학적 고백, 신앙고백 등)'를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지침서의 가장 앞쪽에 배치합니다.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성폭력 문제에 신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자세히 살펴 각 교단 운동 주체들이 성과 성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분석해 봤습니다.1)

각 교단의 신학적 진술에서 성폭력 논의의 근간이 되는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이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표상됩니다. 그래서 이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모든 폭력 행위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도전이자 훼손'으로써 매우 중대한 '죄악'이 됩니다. 또 성도 몸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 조건 없이 동등하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하나님의 선물을 물질화해 남용하는 것', '약자에 대한 억압',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 '하나님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행위'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서로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들을 '신을 모독한 죄'와 같다고 할만큼 매우 엄중한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운동 주체들은 이와 같은 신학적 진술을 통해, 여성의 성과 몸을 터부시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 왔던 기독교 역사 속 여성 혐오적 몸 인식에 관해 여성신학적 성서 해석과 인식론을 적용해 인간의 성을 '하나님의 선물'로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진술은 성폭력 가해자를 인간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선물을 대상화하고 훼손한 죄인으로 담론화하고 이에 대한 조직의 책임을 강조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몸은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동등하며, 다르지만 평등한 서로의 몸에 대한 침해와 폭력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죄악이라는 신학적 배경 진술은 매우 급진적으로 읽힙니다.

어쩌면 운동의 열쇠가 될 신학적 논의

비록 지침서의 매우 협소한 지면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폭력 대응에 관한 각 교단의 신학적 근거를 살피는 일은 우리 논의에 매우 유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 전통과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 몸과 성, 성폭력에 대한 인식, 기독교교육적·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교회 공동체의 책임 의식을 작동시키는 방식 등이 신학적 토대 위에 어떻게 설계·구축돼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도덕적 규범과 교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도 예외는 아닐"2) 것입니다. 특히 성을 매우 터부시해 온 남성 중심적 신학과 직제 구조 안에서, 공론조차 금기시됐던 기독교 성 담론은 오늘날 기독교 여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저 또한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는 일 자체가 사실 매우 급진적인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인터뷰했던 한 활동가의 이야기는 반성폭력 운동에서의 신학적 작업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교회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교단이 특별법 제정이나 징계와 처벌 위주의 운동이 아니라 기독교교육과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는 각 교단별로 신학적 연구가 동반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래 걸리고 더 복잡해질 수도 있지만요. 이런 신학적 작업을 통해 2000년 넘는 기독교 역사와 함께했던 여성 혐오와 성폭력 문제를 직면하고, 진짜 드러나야 하는 윤리적 부분이 뭔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는 거죠."

위 활동가는 기독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기독교 조직 내 구성원들도 더 잘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성폭력에 관한 기독교윤리적 연구와 성서 해석에 관한 신학적 작업이 수반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물리적 행위라는 표면적 문제로만 인식되어 성폭력의 근본적 문제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재 기독교 내 성폭력 예방 교육에도 보다 치열한 신학적 논의가 추가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 성서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독해하는 작업을 기반으로, 아주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사용하는 공과 교재에서부터 신앙 교육 안에 이러한 논의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위 활동가에게 '신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신학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던 설교와 성서 텍스트, 교회 안에서 당연시했던 언어·호칭, 교육 내용, 삽화·이미지 등 기독교 콘텐츠 전반을 젠더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역량과 관점"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어느 한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젠더 관점에서 조직 전체를 재해석·재구성하는 실천적 과제들을 도출해 내는 '성차별 철폐 운동'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반성폭력 운동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반성차별 운동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부장적 역사와 성서 해석,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교리와 조직 구조, 그리고 여성 혐오적 문화와 교육 등 방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모두 아우를 수는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기독교 조직 전반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조직적 제고가 없이는 반성폭력 운동이 지향하는 근본적 해결에까지 닿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보다 풍부하고 급진적인 신학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아주 오랫동안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폭력으로 얼룩진 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이 선물하신 성을 동등하게 누릴 권리와 관계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혹자는 교회는 사회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도 사회입니다. 사회의 일부입니다. 교회가 교회 밖 사회와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신학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급진적이지 않은,
혼란 속의 '취약한 피해자'

대한성공회가 2021년 출간한 <안전한 교회 - 가이드라인>의 신학적 근거에는 '안전 보호(Safeguarding) 신학'이 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언급한 성서의 세 가지 주제, 즉 모든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약자에 대한 보호, 가해자의 책임"(10쪽)이 가이드라인의 토대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가이드라인을 실행할 때 각 교회들은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취약한 성인(vulnerable adult)의 보호를 우선시하는 '안전한 교회' 또는 '안전 보호'의 신학이 반드시 뒷받침돼야만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취약한 성인'이란, 지적장애, 정신 질환, 기타 장애, 연령이나 환경으로 인해 영구적 혹은 일시적으로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의 비청소년 성인을 가리킵니다.3)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의 원인이나 배경이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피해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연약한 지체를 더 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글들에서 다뤘듯이, 약자 보호의 책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다 보면 운동은 언제나 피해자를 더욱 약자화해야만 피해 인정 투쟁에서 조직의 용납과 인정을 받기 쉬워진다는 '피해자 딜레마'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약자 보호'가 가부장적 조직 문화나 남성 중심적 성서 해석과 만나게 되면, 결국 여성과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주체'이기보다는 '객체'로 주변화하고 소홀히 다루게 되지요.

이처럼 피해자를 계속해서 '약자', '취약한 성인', '요보호 대상'으로 호명하는 신학적 진술들이 있는 한편, 또 다른 한편에는 '성적 주체', '하나님이 선물한 성을 지닌 동등한 몸'으로서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진술의 괴리 안에서 피해자가 겪는 충돌과 혼란에 대해서는, 향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다 면밀한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급진적이나 급진적일 수 없는 반성폭력 운동 현장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급진성'을 구성하고 상상하는 보다 발칙한 운동을 상상해 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성도, 피해자도 '취약하기 때문에'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공동체 구성원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목회자이든 리더십이든) 공동체 구성원이 폭력에 그 권력을 활용하는 것이 문제이지 피해자가 가해자들보다 힘이 없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 공동체 구성원 간의 과도한 권력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주체들은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연약한 피해자'와 '음란한 상간녀라고 비난받는 피해자' 사이에 놓인 여성/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여성신학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피해자의 몸과 성을 긍정하고, 모든 인간의 동등한 성적 주체성과 평등성을 선언하는 매우 급진적이고 강력한 신학적 메시지와 담론을 제시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각 교단의 지침서 내 신학적 진술 등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써 성적 자기 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주체적 존재'라기보다는, 여전히 폭력의 대상이 될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연약한 '약자'로 재현되고 있어서 개인은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 '혼재된 주체'로 놓이게 됩니다. 신학적 진술 외에도 지침서 등 문헌 속의 피해자 담론이 현장과 맞닿는 과정에서 어떤 굴절을 겪게 되는지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신학만 바뀌면 되는가?!
20년 뒤처진 교회, 도대체 왜?:
신앙생활 메커니즘

앞서 다룬 것처럼 성과 성폭력에 관한 신학적 작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기독교 신학과 교리, 조직 직제 구조 등 거시적 차원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활동가들은 과거에 비해 각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기독교 여성들이 일상적 신앙생활 안에서 '성적 주체'로 서기가 매우 열악한 조건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교회가 사회에 비해 딱 20년 정도 뒤처져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는데요. 그 이유로 '신앙생활'을 지목했습니다. 여전히 설교, 성서 공부, 기도 모임, 예배, 제자 훈련4), 심방5), 봉사, 교제 등 기독교 신앙생활 전반에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 문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지요. 또한 "교회와 교회 밖의 사회가 너무 다르게 가르치고 기대하는 통에" 그 괴리와 혼란과 갈등을 개인이 스스로 봉합해 나가는 과정에 드는 시간이 아무래도 교회 밖 사회보다 훨씬 더 길다고 했습니다.

'사회가 맞고, 교회가 틀리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회를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논하는 저의 관심에서 여성의 성과 성적 욕구, 조직 내 성폭력과 안전에 대한 논의를 '교회 밖'에서 훨씬 더 많이 공론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경험상 '교회 안'에서는 아직도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극악한 가해자일수록, 피해자가 어리고 연약할수록, 폭력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일수록 상대적으로 수월해지고요.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됐다고 평가하는 활동가들의 푸념이 오늘따라 안쓰럽습니다.

이러한 맥락은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일상적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젠더 분석을 수반해야만 더 나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주로 '신앙 공동체, 예배 공동체, 신앙생활'에서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성적 주체로 설 수 없도록 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말하지 못하는', '성적 욕구와 경험이 삭제되는' 기독교 여성들의 신앙생활 메커니즘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경계가 없을수록 칭찬받는
교회 공동체 문화

활동가들에 따르면 '제왕적' 목회자의 권력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특수한 조직 안에서 개인 간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성폭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쉽게 조성하게 됩니다. 예컨대 처음 친구를 따라간 낯선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형제님, 자매님' 등의 친근한 호칭과 환대, 일대일 제자 훈련이나 상담, 치유 사역과 구역예배, 수련회와 심방 등 소위 '일상적 신앙생활'을 통해 목회자에게는 더 의존하기 쉬운 구조가 되고, 공동체 전체의 경계가 없을수록 '친밀하고 사랑이 넘친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교회는 공동체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이고, 그만큼 '교인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는 친밀함이 우리의 자랑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제가 지난 글에서 던진 질문처럼 공동체 가치에 희생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소외된 개인들이 있지는 않은지 매우 성찰적이고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생활 메커니즘의 전반에 깔린 핵심 기제는 바로 '관계성'입니다. 목회자와의 절대적 신뢰 관계, 그리고 일반 성도 간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가 핵심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관계를 통해 성폭력으로부터 더 취약한 성별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피해자를 유형화하거나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또 일정 정도 비판받을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취약한 피해자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종교적 기제와 공동체 신앙생활 메커니즘을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그토록 지켜 왔고 소중히 여겨 왔던 '공동체' 안에서, 바로 그 공동체와 신앙생활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하거나 발생해도 발설할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면 말이지요.

다만 여기에서, 위와 같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메커니즘을 통해 성폭력에 더 취약한' 개인이 구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심리적으로 취약한' 개인이 신앙생활 메커니즘 때문에 성폭력 피해에 더 노출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두고 보다 세밀하게 분석·연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험한 신앙생활,
항상 조심할 것을 요구받는 여성들:
대체 언제 안전한가

기독교여성상담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 각각 2018년과 2021년에 발간한 성폭력 관련 지침서에는 목회자 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교회 성폭력의 유형'6)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대부분은 남성 목회자가 미성년 여성을 포함한 여신도를 상대로 가한 강간과 성추행의 유형"을 띤다고 밝히고 있고, 목회자의 종교 행위를 빙자해 성폭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높다고 부연하고 있습니다. 두 지침서에서 제시한 교회 성폭력의 유형을 아래 표로 정리해 봤습니다.

보시다시피, 8번의 '2차 가해형'을 제외한 1~7번 유형 전체가 목회자에 의한, 여성 대상 성폭력 사례입니다. 볼드체로 표시한 부분이 기독교 신앙생활이나 목회자의 종교 행위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인데, 대부분의 큰 유형에 1개 이상 포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 여성들은 교육, 상담, 치유, 기도, 설교, 심방 등 신앙생활과 연결되는 모든 교회의 일상에서 전방위적으로 목회자의 성폭력 가해에 노출돼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지요. 신앙생활 중에는 언제 어디서든 성폭력을 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총 8가지의 성폭력 유형 전체가 매우 자극적이고 심각한 수위의 성폭력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제 논문의 문제의식이 촉발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 교단의 반성폭력 활동가로서 제가 이 교회 성폭력 유형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은 충격과 자극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데요. '여성/피해자는 단순히 미련하고 어리숙한 몸뚱이로만 존재하는가' 하는 느낌과 의문이 들었다고 할까요. 가해자의 권력과 섹슈얼리티는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데 반해, 그 어디에도 여성/피해자의 주체성과 섹슈얼리티, 저항과 고통의 맥락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신앙생활 전반에서 상시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의 몸이 놓여진 취약한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고 만나면서 모아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유형화한 위 표에서는 악랄하고 극심하게 왜곡된 성 인식을 지닌 '괴물' 혹은 '제왕적 목회자'의 섹슈얼리티와, 피해로 얼룩지고 피투성이가 된 몸, 취약한 심리 때문에 늘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되는, 언제나 '목회자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되지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여성/피해자'의 몸만 파편화해 존재할 뿐입니다.

올해 3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 사이비 종교 문제를 다룬 시리즈물입니다. 대중이 잘못된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고 평가받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 안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재연 방식, 여성들의 사진·영상이 노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4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에서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 있는 여러 활동가·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았는데요.9)

현장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내용은 미디어가 특히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구체적 가해 행위를 재현하거나 피해자의 인터뷰 등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방식은 대중의 흥미나 관음증을 자극해 피해 자체를 소비할 위험이 있으며, 이는 시청자들이 쉽게 관객이 되게 만드는 구조를 조성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할 시민의 역할을 잊게 만든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악랄함과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정작 성폭력이 반복·지속되게 만드는 권력 구조를 간과하거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되면 성폭력은 매우 '특이한' 일로 인식되어, 나와 우리 공동체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로 간주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고 했습니다. 미디어와 운동은 다르지만, 운동 주체들 또한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고 사례를 직접 다루고, 이를 종합해 개념과 유형을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고민해 봐야 할 지점입니다. 운동 진영 내에서의 논의가 그대로 흘러서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 활동가들 외의 교회 구성원들도 사건 보도나 운동 방식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도치 않은 문제들은 늘 발생하니까요.

이 모든 것이 운동이 전략적으로 목회자 성폭력의 심각성과 가해 양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재연하는 방식이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 위 표에 나오는 8가지 유형에 충분히 담을 수 없는 기독교 조직 내 수많은 섹슈얼리티 침해 문제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성폭력을 매우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왜곡된 성 인식을 가진 몇몇 목회자들 개인의 일탈 문제로 축소하거나 파편화시켜 보다 구조적 차원에서 문제를 조명할 수 없게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성폭력에 관해 더욱 촘촘하고 밀도 있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폭넓은 토론을 열어 갈 수 있는 개념 정리와 유형화 등의 정리가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기독교 여성의 몸에 교차하는 특수한 권력, '신학'과 '신앙'(하)에서 계속 다루겠습니다.

1) 저자의 논문, 104쪽
2) 임희숙(2017), '교회와 섹슈얼리티- 한국교회에서 성 담론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성 인지적 연구', 23쪽
3) 취약한 성인은 다음과 같은 성인을 포함한다(집에서 방문 사목을 받아야 하는 사람 / 사고나 선천적 질병 등으로 한 명 이상의 보조 인력에 의존하는 사람 / 가족의 사망, 실직, 거주지 부재, 재산 부재 등으로 인한 재난이나 자연재해를 경험한 사람 / 가난, 전쟁이나 내전, 강제 이주, 인종, 성적 지향, 성별 규범, 기타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해 폭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사라진 사람). (성공회출판사, 2021:81)
4) '제자 훈련'이란 전도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영적으로 잘 양육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킨 후 그가 그리스도인 사역을 하며 영혼을 재생산하는 일꾼이 되도록 훈련하는 것을 뜻한다. (권순호, 2009:6)
5) '심방'은 기독교에서 가정을 방문하여 그 가정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을 일컫는 말. '직접 찾아가서 만나 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6) 지침서의 발간 연도를 참고하면 3년 사이로 발간된 두 자료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목회자 성폭력 유형을 8~9개로 분류했고 내용이 대부분 공통되므로 나중에 발간된 교회협 자료를 이용하여 표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7)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두 번째 아내.
8) 여기서 아내는 목회자의 아내, 즉 '사모'를 뜻한다.
9) "'나는 신이다' 재현은 왜 문제가 되는가? - 성범죄 고발을 담은 다큐 '나는 신이다'와 저널리즘 논의들" (박주연, https://www.ildaro.com/9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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