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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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들의 섹슈얼리티에 교차하는 '신학'과 '신앙' 이야기를 이어 가 보겠습니다. 운동의 맥락을 거치며 대부분 교단 문헌에 구성된 성폭력에 관한 신학적 진술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성폭력에 관해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성폭력을 하나님이 부여하신 선물에 대한 남용이자 신에 대한 모독으로, '동등한 성적 권리'와 '평등한 몸'을 가진 '성적 주체'의 경계를 함부로 침해한 죄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신학적 진술 내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계속해서 '약자, 취약한 성인, 요보호 대상'으로 호명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자의 괴리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 매커니즘 자체가 기독교 여성들이 성적 주체로서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성평등하게 발현하지 못하게 한다는 활동가들의 지적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친밀감과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공동체 문화와 신앙생활 전반에서 다양한 목회자 성폭력에 노출되는 여성의 취약한 위치를 다루면서 자칫 피해자 재연이 선정적으로 다뤄지거나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파편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짚어 보았죠. 

이번에는 신앙생활 이야기를 좀 더 이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함께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점검하라!

제왕적 목회자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정조준해서 주요 담론을 구성해 온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당장에 속출하는 목회자 성폭력 피해들을 막아야 했습니다. 성폭력에 관한 신학적 연구와 더불어 성폭력에 무지하고 가부장적인 각 교단에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저항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지만 현실은 더디기만 했지요. 

앞의 글들에서 다뤘던 1998년, 1999년, 2000년 사이에 활발히 추진된 교회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청회와 교회법 토론회 기억나시죠? 공청회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들은 여성 목회자 한 분은 "한국교회 여성들이 이다지도 신앙적으로 무지한가 하고 회의가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여신협, 2020:156)1)"고 하는데요. 이토록 순종적이고 복종적으로 목회자를 신뢰하여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강간인 줄 모르고 목회자가 안수하는 방식이 그런 줄 알았다(위 인용 같은 쪽)"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당시 활동가들의 답답했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98년 공청회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목사 바로 알기 10계명(여신협, 2000:182)2)3)'입니다. 이후에 여신협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발간한 <기독교인을 위한 성폭력 예방 지침서>(2005)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발간한 <교회 성폭력 예방과 극복을 위한 매뉴얼 그리고 자료집>(교회협, 2021:33)4)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단골 메뉴이고요.

'목사 바로 알기 10계명'(1998)

1. 목사도 인간이다. 하나님처럼 믿지 말라.
2. 목사에게도 사적 감정이 있다. 목석이라 생각하지 말라.
3. 목사도 성적 사랑을 느낀다. 박애의 화신으로 착각하지 말라.
4. 남자 목사도 일반 남성과 같은 존재이다.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
5. 남자 목사도 사랑을 위해 결혼한다. 부인과 불화 관계에 있는 목사를 조심하라.
6. 남자 목사도 여자 앞에서 성적 흥분을 느낀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상담을 피하라.
7. 교회 담임목사는 개인보다 교회를 더 중요시한다. 나만을 총애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8. 교회 담임목사도 명예와 권위를 추구한다. 만일 피해를 입은 경우 끝까지 싸워라.
9. 교회 담임목사가 요구하는 물질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물질에 집착한 목사를 조심하라.
10. 하나님의 종은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다. 참된 하나님의 종이 목회하는 교회를 찾아라.

이 십계명은 발표 당시 매우 획기적이라는 평과 함께 현장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상하리만치 당연한 이야기를 여성들에게 계명이라고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 가해자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는가에 대한 의구심일 텐데요. 속출하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운동의 노력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목회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를 믿지 말고, 착각하지 말고, 가까이하지 말고, 조심하고, 피하라는 것이죠. '목회자를 무조건 믿고 의지하지 않을 책임', '목회자와 거리를 두고 조심해야 할 의무', '총애나 은총을 입는다고 착각하지 않을 판단력', 심지어 '목회자의 부부 관계를 살필 것'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목사도 남자다.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는 제3계명을 보니, 어쩐지 청소년기에 자주 듣던 "아빠 빼곤 남자는 다 위험해. 항상 조심해야 돼"라는 엄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위의 십계명이 가진 논리를 따라가 보면 핵심 메시지는 결국 '목회자는 신이 아니라 남자다'라는 것일 텐데요. 결국 기독교 여성들은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종교 지도자의 권력을 가진 '남성 섹슈얼리티' 자체를 조심해야 하는 '잠재적 피해자'가 되겠고요. '남성'은 성욕과 충동으로 언제든 성폭력을 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잠재적 가해자'로 호명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여성들에게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비기독교인들은 받지 않는 특수한 의무가 추가로 더 주어졌습니다. 젠더 권력에 종교 권력이 중첩되면서 기독교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에 관통하는 억압은 더 커졌지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로 '개인 여성'에게 '피해자 되지 않기' 메시지를 쥐여 줌으로써 문제는 파편화되고 여성들은 다시 '성적 주체'와는 한 걸음 멀어지게 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교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과 규범, 폭력과 차별만을 도려낼 보다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과 규범, 폭력과 차별만을 도려낼 보다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목회자 개인이 할 일

그렇다고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조심하라고 외친 것은 아닙니다. 운동은 목회자들에게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적 책임을 제시하는데요. '목회자 개인이 해야 할 일'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기독교여성상담소의 지침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기독교 목회자로서 사회보다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할 것에 대한 촉구와 성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할 의무 외에도 몇 가지 사항을 더 권고하고 있고요. 이와 더불어 가해를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또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요. '금지'의 성격을 띠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 발제해 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목회자가 성폭력을 행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공통 제시하는 것은 '이성 교인에 대한 일대일 심방'이나 '밀폐된 공간'을 피하는 것6)입니다. 이는 주로 목회자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적 특성이 외부와 고립되거나 분리된, 별도의 공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죠. 그러니 이런 둘만 있는 공간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말고 스스로 알아서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 해결 방법이 될 수 없겠습니다. 또 현장에 있는 목회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으리란 것도 예상해 볼 수 있죠. 흔히 말하는 '펜스 룰7)'과 '잠재적 가해자' 논쟁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무리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목회자는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에 대한 조심', '교인과 데이트 관계 금지', '배우자와의 친밀함 유지', '이성 교인과 비밀스러운 관계 금지', '자기 탈진과 스트레스 관리', '성욕 통제', '가해 후에 교회 안팎에 일어날 일 상상' 등에 관한 책임을 부여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도 목회 활동 전반에서 성폭력 가해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잠재적 가해자'로서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관리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우리의 성(sexuality)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 견제하고 조심해야 할 위험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죠.

여기서 특히 목회자에게 '배우자와의 친밀함 유지 및 성욕 통제'를 요구하는 것이 성폭력을 막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배우자와 성적으로 친밀하여 평소에 성적 욕구를 원만히 해결하고 있다면 타인의 경계를 침해하는 데 주저하게 될까요? 이렇게 되면 자칫 성폭력의 원인을 목회자 개인의 성욕 또는 성 충동으로 회귀시키게 되는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성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통찰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의 지침과 관점들은 문제의 핵심을 조직 전체의 문제로 분석하지 못하고 개인화·파편화하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어서 언제나 비판적으로 재독해되어야 합니다.

또 이러한 맥락에서 목회자에게 '교인과 데이트 관계를 금지'하는 등의 개인 금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오히려 공동체 내에서 빈번히 생성·소멸하는 관계를 쉬쉬하며 숨기게 되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관계 자체를 숨기다가 막상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발설할 수 없게 되어 오히려 성폭력이 드러나기 어려운 환경을 공고히 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또는 한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애정이 싹터 결혼까지 하는 사례도 많지 않나요? 어떻게 연애하셨습니까? 몰래몰래 숨어서, 007 작전 한 번쯤 해 보지 않으셨나요?

상담이나 의료 서비스 같은 클라이언트와 서비스 제공자 간의 권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관계에서는 개인적 관계를 금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칫 전문적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감정이 이입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원래 알고 지내던 지인과도 위와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기도 하고요. 해외 기독교 교단 중에도 목회자와 교인 간의 개인적 관계를 할 수 없게 권고하여서 목회자가 교회/교구를 옮겨야 하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전문적 심리 상담이나 의료 서비스와 목회자의 종교적 서비스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어떤 차이와 공통점을 가지는지 말이죠. 목회자의 전문성과 힘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도요. 그리고 상담·의료 서비스에서 클라이언트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말라는 포괄적인 매뉴얼이 성적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직 내에서 데이트 관계에 대한 명시적 제재 의무를 부여받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관리와 통제가 교회 성폭력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되거나 예방책이 될 수 있을지 심도 깊게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해체해야 하는가
활동가들은 기독교 신앙생활과 종교 행위의 남성 중심적, 위계적 매커니즘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화 전체가 가부장 시스템 작동을 필요로 하는 문화이며, 남성들만의 문화라고 지적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활동가들은 기독교 신앙생활과 종교 행위의 남성 중심적, 위계적 매커니즘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화 전체가 가부장 시스템 작동을 필요로 하는 문화이며, 남성들만의 문화라고 지적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면과 저자 식견의 한계상 신앙생활 전체에서 작동하는 젠더를 모두 다루지는 못합니다.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되겠지요. 다만 운동 담론 내에서 보이는 몇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기독교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중첩되고 교차되는 젠더화된 신앙생활을 다루어 보았는데요. 부족하지만 그러나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몇 가지 단서만으로도 교회와 교단의 조직적 문제, 그리고 제왕적 목회자의 권력과 피해자를 요보호 대상으로 호명하는 운동 담론, 여기에 더해지는 신학적으로 엇갈리는 혼재된 피해자의 정체성과 젠더화된 신앙생활 문제를 보다 복합적으로 연관시키면서 기독교 성폭력 문제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정말 모두가 젠더 문제였네요!

논문 연구를 진행할 때도, 그리고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지금도, 기타 관련 교육 중에도 회의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러한 문제 요소들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토록 사랑하는, 오랫동안 자라고 성장해 온,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던 교회 전체가 해체 대상이 되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체하고 무엇을 지키려 노력해야 할까요? '교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과 규범, 폭력과 차별만을 도려낼 보다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없는 걸까요?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할 책임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이런 접근은 어떨까요? 예컨대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전통적 방식대로 수행되던 기독교 종교 서비스 및 신앙생활 전체에 대해 '왜?'라고 묻는 방식이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독교 조직의 고질적 문제들에 대해서 모두가 허심탄회 끝장 토론을 하는 것이요. 공동체 가치에 뒤로 밀리고 희생된 피해자들과 그들의 행위성을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재고하고 검토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요. 목회자의 '권위'와 '권력'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의사 결정권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워 보는 것이요. 목회자가 제공하던 여러 가지 복합적 서비스를 분류하고 분산시킴으로써 치중되던 권력 또한 감소시키는 것은 어떤가요. 보다 예민한 감수성과 경계 감각을 가지고 주일예배와 애찬 식사, 구역 예배 교재와 일상적 교우 관계 등 신앙생활 전반을 점검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교회' 그 자체가 해체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젠더화된' 여성의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 사회화된다는 것은 곧 젠더화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기독교 조직은 남성 중심적이고 권력과 위계가 가부장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입니다. 여전히 여성 목회자가 없는 대형 교단들도 있는 현실이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젠더화된 신앙생활에 익숙해진 기독교인들 또한 보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감수성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분석 렌즈를 갖추고 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재해석될 것입니다. 좀 아플 수는 있지만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예컨대 목회자가 몸이 아픈 교인의 환부에 당연하게 손을 대고 기도하는 행위나 고해성사의 매커니즘, 또 그러한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시공간, 기독교 전례 전통과 몇 천 년 동안 반복적으로 읽혀 왔던 기도문과 찬송들, 교인들 집으로 일일이 찾아가는 심방, 큰일을 앞두고 목회자에게 받는 안수, 축복기도, 성경 텍스트와 설교, 각종 교재 등 기독교 신앙 행위와 콘텐츠 전반에 관한 젠더 분석을 통해 기독교 여성들에게 선험된 젠더화된 신앙생활 매커니즘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수행된다면 우리의 논의가 보다 생산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자 상담을 해 오신 활동가 중 한 분은 오늘날 '기독교 신앙 교육과 신학 교육' 전반이 여성들, 특히 피해자들에게 '평등한 문화로 경험되거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성폭력 문제가 반복되거나 다른 공간보다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교회 여성들은 전 생애 과정에서 설교·기도·예배·봉사·교제 등 대부분의 신앙 행위를 통해 일상적으로 '젠더화된 신앙 습관'을 체득해 왔고, 이는 자기 권리에 대한 부적절한 포기가 반복되거나 자아 주체성뿐만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데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국 이러한 젠더화된 신앙생활이 야기할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재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오랜 역사 속에서 기독교 전체의 가부장적·남성적 문화에 도전해 왔습니다. 교회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신앙생활에 젠더가 어떻게 연결되고 작동하는지도 함께 비판해 왔고요. 기독교 신학 전체를 젠더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여성신학 연구도 지속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운동이 구성한 담론이 교차하면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이중 삼중으로 작동하는 억압을 분석하는 일도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담론을 정리하며:
피해를 타고 넘는 피해자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지난해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 107회 총회 현장에서 '교회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헌법 권징 조례 개정 헌의' 통과를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지난해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 107회 총회 현장에서 '교회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한 헌법 권징 조례 개정 헌의' 통과를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교단법 관련 조항을 제·개정하고, 예방 교육 의무화나 상담 창구 개설 등 각 교단별로 분주하게 제반 사항들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힘을 모은다면 다 같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여성을 '성폭력 피해자'로, '요보호 대상'으로만 재연하거나 귀결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열매의 달콤함을 버려야 합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성적 주체'로서 개인의 성적 선택과 결정이 침해된 것으로서 성폭력을 재개념화해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말하고 쟁취하는 '성적 저항운동', '성 해방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전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관해 더욱 촘촘하고 밀도 있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폭넓은 토론을 열어 갈 수 있는 운동 담론 논의가 꼭 필요합니다.

"성차별로 인한 모든 것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성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별 고정관념도 저는 성폭력이라고 생각해요. 평등을 저해하는 모든 것들. 가부장 문화에서 오는 것들이 다 폭력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다 성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남성 문화, 가부장 문화에 차별받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기독교 신앙생활과 종교 행위의 남성 중심적, 위계적 매커니즘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화 전체가 가부장 시스템 작동을 필요로 하는 문화이며, 남성들만의 문화라고 지적합니다. 교회 시스템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계속해서 주변화되고 객체화되는 여성의 역할과 몸에 대한 인식이 전승되고 있는 면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 내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적 조직 구조 전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위 활동가의 외침은,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담론의 대안을 모색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고려 사항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성폭력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해서 가부장제나 남성 문화 전체를 성폭력이라고 개념 정리하면 오히려 성폭력을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발생할 것입니다. '성폭력'과 '폭력'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성'일 것입니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성, 성적인 것'에 대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앞서 다룬 모든 논쟁과 논의들을 모두 포괄하여 다루면서 기독교 성폭력 운동 담론을 재구성하는 공론장을 여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일보한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상상력과 끝장 토론을 할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왠지 문제는 점점 커지고 우리의 논의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요? 제 논의의 핵심은 기독교 조직에서, 그리고 운동 담론을 구성하는 운동 진영 내에서 '여성을 성적 주체로 전제하고 있는가'입니다. '반성폭력 운동의 궁극적 목적이 여성의 안전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매우 지난한 과정일 테니 치밀함과 끈질김이 필요하겠습니다. 남은 글 두 편에서는 작게나마 연구를 통해 제안하는 바를 나누려고 합니다. 거의 다 왔네요. 



1) 한국염.(2000).[여정7] 자궁이 떨리는 마음으로 (1988. 10~현재).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타 간행물,150-163.
2) 한국여성신학자협의회(2000). <성폭력과 기독교>(개정증보판)
3) 뉴스앤조이(2007.4.16.)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0
4) 이 매뉴얼의 3장 교회 성희롱 근절과 예방을 위한 지침 안에 '여성 십계명'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수록되었고, 계명 내용도 조금 수정되었다. 2018년 수정된 이 여성 십계명은 저자의 논문 114쪽에 실려 있다. 또 2018년 기독교여성상담소가 발간한 지침서에는 '교회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되는 여성 십계명'이라는 제목으로, 2021년 교회협이 발간한 매뉴얼에는 '여성 십계명'으로 몇 차례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 
5) 총 12개 조항이나 여기서는 금지 사항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6) 위 표에 강조 글씨체로 표기하였습니다. 
7) 의도치 않은 성적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제외한 다른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인터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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