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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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과 함께 여성 대표성, 즉 여성 안수 운동에 박차를 가해야 했던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교단별 직제·구조·상황에 따라 다양한 운동 방식과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 또한 들여다봤지요. 이번 글에서는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운동 주체들이 모색해 온 다양한 대안을 살피려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전진해 왔던 피해자들과 운동 주체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향후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실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최초 시점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 혹은 불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논문과 이 연재에서 굳이 최초 시점을 1998년 목회자 성폭력 공청회로 특정한 이유는,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25년간의 운동 맥락에 더욱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한국 여성운동이 같은 기간 이뤄 낸 성과들과 비교해,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부각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말했으나 듣지 않았고, 들렸으나 대답 없었던' 현장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선과 차선 사이에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교단 헌법 개정 운동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차츰 쌓이고 운동이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편협한 성폭력 인식에서 비롯된 저항과 반발 또한 더욱 본격화한 것이죠.

"우리가 다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말이냐"
"신성한 교회에서 왜 자꾸 불경한 성폭력과 간음을 이야기하느냐"
"일부의 문제일 뿐인데 왜 굳이 법을 제정하려 하느냐"
"법이 아니라 예방 교육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법을 만들면 교회법이 누더기가 된다"
"사회 법으로 처리하면 되는 일을 왜 교회법에 따로 명시해야 하나"
"교회는 화해·용서를 하는 곳이지 처벌하는 곳이 아니다"

각 교단 총대들을 비롯한 의사 결정 책임자들은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해 여성운동에 대한 저항감·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의 내용과 그 안에 담긴 고민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고,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며 사안의 본질을 회피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논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운동에 귀를 기울인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끊임없이 설득하고 제안하고 머리를 맞댔기에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처절한 외침과 운동 주체들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한 교단은 아직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운동 주체들은 '최선'과 '차선'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을 따로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봉착한 문제의 시급성에 따라 '교회 헌법 개정 운동'에 돌입했지요. 다시 말하면,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는 교단 헌법 조항부터 수정하거나 단서 조항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남성 중심적 의결 기구를 설득하고 거부감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교단법 개정 상황은 교단별로 상이하지만, 2019년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목회자의 범과를 명시한 조항에 성폭력을 추가한다거나, 목회자가 성범죄로 사직·면직된 경우 복직이 불가하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고소가 가능한 기간을 최대 7년에서 10년까지 연장하고, 피해자가 재판 기탁금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헌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죠.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들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목회자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걸 교단들이 보니까, 이게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은 거죠. 그러니까 헌법이 누더기가 되느니 마느니 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단, 단, 단' 하며 (단서 조항들을) 붙인 거고요. 한쪽에서는 계속 (성폭력)특별법을 올리고, 한쪽에서는 이 '단'을 계속 늘리자. 이게 어느 정도 쌓여서 '단'이 많아지면 나중에 별도로 빼서 특별법을 만들자. (중략) 교회의 변화는 온 세상 변화 중에서 가장 느린 변화 같아요."

최근 활동가들은 과거에 비하면 교단 내 성폭력 인식과 총회 분위기가 변한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적 인식과 구조가 존재하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많이 바뀌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998년 최초의 공청회로부터 출발한 운동이 2000년 교회법 토론회에서 '성폭력특별법 초안'을 교계에 제안한 뒤, 약 20년 만에 드디어 각 교단의 헌법이 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법을 만들고 의사를 결정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온 세상 변화 중에 가장 느리게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 낸 운동 주체들의 '버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온 피해자들의 급진적 발화와, 이에 응답해 가부장적 조직 문화를 해체하고 돌파하고자 다양한 실천과 전략을 도모한 운동 주체들의 노력 덕분이지요. 이렇게 교회는 오늘도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식 개선 사각지대,
교육으로 돌파하라!:
성폭력 예방 교육 제도화

조직 구성원들의 왜곡된 성 인식을 점검하고 성 인지 감수성을 토대로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공적 시스템으로서 '폭력 예방 교육'은 이미 우리 사회에 두루 자리 잡았습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가정 폭력, 성매매 예방교육, 최근에는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으로까지 확대될 만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적 사업이죠. 크고 작은 사업장과 공적 시설 등에서 의무적으로 실시 중입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의 제도화는 여성이 처한 가부장적 성 문화와 성폭력 문제를 공론하고 한국 사회의 전반적 성 인식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일반 신도들은 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잖아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목사만 안 받아요. 그래서 목사가 저지르는 일이 너무 힘든 거죠. 신도들은 교육을 받으니까 신도 간 문제는 성폭력 상담 센터로 가거나 직접 고소하거나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동안 목회자 성폭력은 사각지대였던 거잖아요. 그래서 (목회자 성폭력에) 좀 더 치중해야 했던 거죠."

위 활동가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에서 폭력 예방 교육 의무로부터 공식적으로 자유로운 조직이 바로 종교 조직입니다. 물론 (과연 그럴까 싶긴 합니다만) 자발적으로 교육을 수강할 수도 있고, 소속된 종교 재단에서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한다면 해당 기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 지침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겠죠. 그러나 그 외 목회자 대부분은 예방 교육 의무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또다시 뒤처지게 되는 것이죠.

교회와 목회자는 많은 사람과 대면해 의사소통하고 교육・상담・사회복지 등 다양한 직간접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과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성폭력에 관해 직접적으로 배우고 토론할 기회가 없다는 것은 사실 다른 누구보다 목회자들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사회 인식 수준에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거나, 관련 정보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 인지 관점을 세우지 못하고 왜곡된 통념이나 편협한 언론 보도로 성폭력 문제를 오독할 위험이 커지게 되는 것이죠.

활동가들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교육의 기회를 확보하지 못해, 인식 개선 부분에서 사회보다 현저히 뒤처지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 조직에서는 성폭력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최소한의 처리 기준에 대한 무지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알기만 해도 해결될 문제들이 몰라서 반복되는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특별볍 제정 요구에는 매우 높은 저항감을 드러내던 책임자들이 성폭력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도화하는 데는 다소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포착한 운동 주체들은 교단 내 단위별 예방 교육 의무화 카드를 꺼내 들었고, 특히 목회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을 법제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최근에는 몇몇 교단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되고 있고, 현직 목회자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신학대학원생 및 예비 신학생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21년 발표한 '개신교 성 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필요성에 대해 개신교인(800명)은 64.8%가, 목회자(212명)는 96.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교육에 대한 현장의 요구가 이렇게 높은데도, 현재 각 교단 실정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연 1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 격년 1회, 기독교대한감리회가 회원 등급에 따라 1회 필수 이수1)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은 보완할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예방 교육 의무가 제도화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촘촘한 정책 입안과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 필요하겠습니다. 교육을 담당할 실제적 강사 풀이나 교육 시스템, 교육을 검증할 체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운동 진영이 기대했던 교육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 강사를 양성하거나 확보하는 일 또한 예방 교육 의무 제도를 뒷받침할 중요한 부분이겠습니다. 어렵게 마련되고 있는 교육이 빛을 발하려면 말이죠.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내 '교회성폭력예방교육표준강의안연구소위원회'가 표준 강의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각 교단 활동가·연구자·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세부 수정・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교회 성폭력 예방 교육의 실효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마 올해 11월에는 위원회가 준비한 표준 강의안을 보실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주체들은 이렇게 성폭력특별법이라는 '최선'과 다양한 의제의 '차선' 사이에서 더욱 활발하게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비록 특별법 제정은 난항을 겪었지만 상황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면서 지침서·매뉴얼 등의 문헌 자료 발간을 고민하게 됩니다.

가뭄에 단비였을
사막에 오아시스였을!:
성폭력 예방·처리 지침서 발간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각 교단의 의사 결정 기구 안에서 여성 대표성을 확보하려는 성평등 운동과 더불어, 성폭력특별법 제정, 교단 헌법 개정, 예방 교육 의무화 추진, 지침서 발간, 성폭력대책위원회 및 상담 창구 설치, 이를 위한 성 인지 예산 확보 등 다양한 의제로 펼쳐졌습니다. 그만큼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는 폭넓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이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면 모두 시행됐을 정책들을 별도로 추진해야 하는 한계 속에서도, 운동 주체들은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비록 강제성을 가진 교단법 내 성폭력특별법은 아니지만, 성폭력에 대한 신학적 이해, 개념과 처리 절차에 관한 다양한 매뉴얼을 담은 '성폭력 예방 및 처리 지침서(교단·기관에 따라 공식 문서명이 상이)들을 발간하기 시작했죠. 기독교여성상담소가 2003년 발간한 <기독교인을 위한 성폭력 예방 지침서>가 최초의 지침서이고, 2017~2018년 이후 목회자 성폭력 사건이 다시 대두되며 각 교단에 지침서가 활발하게 발간됐습니다.

교단·기관별로 발간 부서와 발간 시기 등에 차이가 있고 정식 문서명도 다르지만, 운동 주체들은 이미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기독교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문제 제기해 왔습니다. 저는 이 문헌 자료들을, 사회 여성운동과 함께 공명하면서도 기독교 현장에 맞는 정책과 지침을 고민해 왔던 치열한 '역사적 산물'로 봅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해외 교단들의 성폭력 정책을 연구하고 사회 법과 사회 여성운동 담론들까지 다양한 자료와 정책을 망라해 발간한 지침서를 배포·홍보하는 일은 척박한 운동에 활기를 더해 주는 단비 같은 실천들이었을 겁니다.

제가 소속된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는 세계성공회가 2019년 작성한 <안전한 교회 - 가이드라인>을 직접 번역·강독하는 작업을 통해 2021년 번역본을 출판했는데요. 저도 이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대한성공회가 직접 작성한 문서는 아니지만, 세계성공회가 함께 결의한 문서를 공동체에 소개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정말 뜻깊었습니다.

지침서들은 매뉴얼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강제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교회 성폭력에 관한 전반적 이해와 처리 절차 등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피해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 요구해야 할 것과 법적 지원 방법도 소개하고 있지요. 또한 공동체 내 주변인·조력자와 교단 재판위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요긴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희롱 사건 재판을 하는데 우리가 재판 전에 재판국원들한테 이 지침서를 나눠줬어요. '먼저 보고 오십시오' 하고요. 왜냐하면 다들 성폭력 사건은 처음인 거예요. 이걸 어떻게 재판해야 하는지 근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걸 끌고 가는 재판국장의 고민은 더 크겠죠. (중략) 그래서 지침서들을 드리고 읽도록 한 거죠."

교단별 성폭력 지침서 발간은, 성폭력 피해자의 맥락과 가해자의 책임, 공동체의 역할과 회복까지 모두 담아내는 '최선'의 성폭력특별법 제정까지 가는 큰 흐름 안에 있는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최선'이기도 하고 '차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지침서가 담고 있는 몇 가지 한계들도 지적했습니다. 지침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으려면 해당 조직에 훈련된 성 인지 감수성을 가진 재판위원·상담자·조력자가 필요한데, 과연 교회 현실이 그렇느냐는 점이지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은 지침서라도 이를 오독하는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지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침서에 대한 홍보가 미비해 정작 필요할 때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지침서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외에도 부족한 예산 때문에 인쇄가 적게 된 점, 강제성이 없는 지침에 그친 점 등이 현재 상황에서의 한계입니다. 결국은 교단 차원의 명시적인 법이 필요한 것이지요. 물론 강제성이 없다고 해도 지침서 자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운동 주체들의 의견입니다.

아직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는 산적하고 속도도 더딥니다. 하지만 운동은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중심 의제로 삼고, 여성 대표성 확보, 헌법 개정, 예방 교육 의무화, 지침서 배포와 상담 체계 구축까지 한국 기독교 성평등 운동과 더불어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뤄 왔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성과는 1998년 최초의 교회 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청회 이후 사회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목회자 성폭력 고발을 이어 간 기독교 여성들이 더 이상 스스로를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발화를 통해 저항하는 '성적 주체'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들은 더욱더 '연약하고 불쌍한', '피해자다운 피해자'여야 하는 딜레마, 즉 '인정 투쟁'의 전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됐습니다. 폭력을 묵인하고 은폐하기 급급했던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기독교 조직 앞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는 피해자들의 행위는 매우 급진적이었고, 운동은 이 급진적 행위에 응답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속한 기독교 구조·문화·제도로부터 '진짜 피해자'로 인정받아야 하는 불안한 저울 위에 서게 됐지요.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인 '피해자 섹슈얼리티' 이야기로 들어가야겠습니다.

1) 매년·격년 의무화가 아닌 준회원(전도사) 때 1회, 정회원(목사) 때 1회 필수 이수이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의무 교육'이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저항이 거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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