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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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폭력 이야기하기

교회에서 성폭력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동안 참 어렵고 예민한 문제로 간주돼 왔습니다. 저도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에서는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회·청년회를 거치면서도 '누가 누구랑 사귄대', '사귀다 헤어져서 교회 안 나오잖아'라는 식의 연애 후일담(?) 같은 소문만 무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개인 사이에 다양한 경계 침해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21년 교인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개신교 성 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교회 안에서도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품평, 별명 사용', '짙은 성적 농담', '심한 신체 접촉', '원하지 않는 성관계 요구'까지 참으로 다양한 경계 침해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회 내 성폭력에 대해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더 자주 만나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공동체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지는 않을까, 관계가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우려해, 바로바로 편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참게 되는 것이지요. 공동체가 와해될까 두려워 쉬쉬하고 숨기다가 결국 성폭력 문제 자체를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한국교회 전반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작지만 가장 큰 목소리로' 교회 성폭력 문제를 이야기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연재는 제 논문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섹슈얼리티 -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는 한국교회 전체를 포함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갖습니다. 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의 주요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제가 소속된 대한성공회를 포함하는 범주로 사용될 것입니다.

또 '교회'는 '기독교'의 하위 범주로써, 위 주요 교단 내 '지역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하거나, 맥락에 따라 '기독교'와 혼용하겠습니다. '목회자'는 교회협이 발간한 '교회 성폭력 예방과 극복을 위한 매뉴얼'(2021)에 따라, 목사·전도사·신학생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이는 이미 안수를 받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될 분들까지 포함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출발:
교회 여성들의 성차별 철폐 운동으로부터

여성운동과 성평등 운동은 최근에야 활발해진 이슈가 아닙니다. 벌써 몇십 년도 전에 이미 '교회에 성평등이 필요하다'고 외친 여성들이 있었지요. 1958년, 오랜 시간 가부장적 사회와 교회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아시아 교회 여성들이 홍콩에 모여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라는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 여성들은 1967년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교여연)'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여성 목회자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여성 안수'를 위해 연대·투쟁했던 교회 여성들의 경험은, 사회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고 기독교 조직 내 성별 권력에서 오는 폭력과 제도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변화 의지를 더욱 북돋는 계기가 됐습니다. 2023년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이 남아 있고, 이미 여성 안수 제도를 시행 중인 교단도 목회자 남녀 성비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교회 구조의 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교여연은 창립 직후부터 한국의 다양한 사회운동과 결합해 활발히 활동해 왔는데요. 원폭 피해 문제, 여성 노동자 문제, '기생 관광'을 비롯한 반성매매 문제, 일본군 위안부 성 노예 문제, 주한 미군 범죄 문제, 가족법 개정 문제 등 다양한 여성 의제를 중심으로, 각종 단체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성의 의식화' 운동과 한국교회 여성들의 지도력 강화, 소외 계층 여성을 위한 활동에도 매우 열심이었지요. 특히 1979년 1월 각 교단 여성 신학자들을 초대해 개최한 '교회의 민주화' 회동을 계기로 198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가 창립되면서, 이후 전개될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기반을 만드는 데 큰 자양분을 마련했습니다.

여신협은 여성주의 시각으로 성서를 재해석한 연구물을 활발히 생산해 내면서 교회의 가부장적 신학 전통에 도전하는 급진적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신학, 심리 상담 등을 집중적으로 교육해, 신학자·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여성 전체의 의식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이외에도 평화통일 문제, 호주제 폐지, 전쟁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여신협은 1987년 2월 발족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에 창립 회원 단체로 결합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사회 여성운동과의 긴밀한 연대와 상호 영향 속에서 명실상부 기독 여성운동을 주도해 왔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기본적으로 세계 여성운동의 흐름에서 싹을 틔웠고, 기독교 역사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한국 사회 성차별을 자각한 위와 같은 교회 여성 연대들을 중심으로 태동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 성폭력 문제는 '기독교 성평등 운동'의 맥락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던 것이지요. 교회 여성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이후 다루게 될 여러 굵직한 '목회자 성폭력' 문제를 비롯해, 1994년 사회 법에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의 한계 속에서 교회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고민과 노력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토양:
여성 신학자·목회자 중심의 연대

여성 안수 운동을 비롯한 교회 성차별 철폐 운동, 여성신학 운동, 교회 안팎을 넘나드는 시민사회 운동 등은 모두 교회 여성들의 참여와 연대로 가능했습니다. 특히 1998년 7월에 개소한 여신협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는 교회 내 가정 폭력, 성폭력 피해자들을 직접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 성폭력 피해자 상담원을 양성하고(1998년, 2002년, 2003년, 2006년, 2007년 등) 피해자 집단 상담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여성신학과 기독교 여성운동이라는 '학문'과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각 교단의 여성 목회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협 여성위원회(여성위)'가 탄생한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여성위 초기에는 외부 요청에 따른 연대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시작했지만, 1982년 '가족법 개정안 서명운동'을 펼치고 여성 대상 교육·상담, 실태 조사 활동을 전개하면서 더욱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한 연구와 사업들을 이어 가면서 각 교단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여성위의 주요 의제로 공통 발굴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2018년 이후 여성위에서는 각 교단의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공론장과 연대의 필요성을 더더욱 절감하게 됐고, 아마 여기에는 한국 '미투 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여성위는 한국 기독교 내 매우 중요한 여성 연대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답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전 세계를 포함한 아시아 여성들의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한국교회 여성들의 '성차별 철폐 운동' 맥락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여성신학이 본격화했고, 각 교단별 여성 안수 운동과 기독교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통해 오늘날까지 심화됐지요. 이러한 운동은 수많은 활동가들, 즉 여신협과 기독교여성상담소, 교회협 여성위를 중심으로 한 여성 신학자·목회자와, 의식화된 교회 여성 전체의 참여·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입니다. 참으로 '척박했지만 풍부한' 자원을 가진 토양 위에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활동가들은 한국 여성운동의 맥락 속에서 교회 밖 반성폭력 운동과 함께 공명하고 투쟁했음에도, 그 투쟁의 열매를 함께 누릴 수는 없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교회' 성폭력의 '특수성' 때문이었지요(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활동가들은 교회 성폭력의 특수성에 기반한 상담·연구 활동을 활발히 이어 나갔고, 이를 기반으로 교회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의 가부장성과 남성 중심적 조직 구조, 교단법에 대한 공론장을 열어 왔습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출발은 한국 사회 특유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권력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자각하고 '여성 해방'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응답한 기독교 운동 주체들의 소명 의식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국 교회 성차별 철폐 운동'의 맥락에서 필연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교회 성폭력'이라는 주요한 문제를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목회자 성폭력'을 중심으로 담론화된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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