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섹슈얼리티'는 대한성공회 양성평등위원회 전문위원이자 안양나눔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강은정 활동가의 연재입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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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법을 만드는가

지난 글에서 우리는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 목회자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투쟁하게 된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특히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회 법)'과 교회법 사이의 '사각지대'에 놓인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동 주체들이 공청회·토론회·연구·교육 등을 진행하며 운동 담론을 심화시켜 나간 맥락을 짚어 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운동 주체들이 각 교단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된 더 큰 문제와 현실에 대해 다뤄 보려고 합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억압돼 왔던 다양한 여성 문제들이 표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성폭력 사건들도 잇따라 드러났지요. 성폭력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1980년대 후반입니다. 여성운동 활동가, 연구자, 피해자,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위시한 여러 단체들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반성폭력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연대·투쟁해 나갔지요.

1992년 4월, 12개 여성 단체가 모여 '성폭력특별법제정추진특별위원회'를 발족했고, 그해 7월 이우정 국회의원(1923~2002)이 국회에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그 이후로 노력을 거듭한 끝에, 1994년 1월 5일 마침내 법이 제정되어 같은 해 4월부터 시행됐습니다.1)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우정 의원은 여성신학자·페미니스트·대학교수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그가 한국신학대학교(현 한신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등에서 재직했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회장,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 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부회장 등을 역임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도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문제를 가시화하고 법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 주체들과 실제로 법을 제정하는 국회 사이에 발생한 간극이지요. 운동은 성폭력 개념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 책임과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압박할 수는 있지만, 직접 법을 제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하고 제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몫이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조직적 제동이 걸렸습니다.

50~60대 남성 총대로 구성된 교단 총회의 모습은 교단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회법을 만드는 교단 최고 의결 기구의 구성원이 주로 50~60대 남성이라는 점은 교단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각 교단의 여성 대표성 확보 운동: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교회법'은 교단별로 그 명칭도 내용도 모두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사회와는 다르게 교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특정 규율과 규범, 금지와 권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지요. 물론 정관·조직법·규율 등 크고 작은 모든 조직에는 그 조직에 맞는 약속과 운영 근거가 필요하고, 이러한 점은 교회만 그런 건 아니지요. 각 교단은 교회법에 따라 조직을 관리하고, 대내외적 신뢰와 안정감을 확보합니다. 사회 법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법을 제·개정하려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 각 교단의 운동 주체들은 교단별로 운동 진영의 목소리를 반영할, 즉 교단 내에서 국회의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 대표성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말할 수 있는 자'를 찾아야 했고, 법을 만드는 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자를 키워 내야 했지요. 여성 안수조차 허용되지 않던 교단들은 여성 안수를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했습니다.

50~60대 남성만으로 구성된 주요 교단 총회 자리에서, 여성·성폭력 의제를 다룰 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령 관련 의제가 다뤄진다 하더라도 손쉽게 거부당하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지요. 그렇지 않아도 성을 터부시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 왔던 기독교 조직에서 성폭력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여성 목사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 안수 등 '여성 대표성 운동'과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제 논문에 인터뷰로 참여한 분들에게 '왜 교회 내 반성폭력 운동은 사회보다 20~30년 정도 뒤처져 있는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답을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성 안수가 보통 1990년대 중반쯤 본격화되는데, 여성 안수가 된다고 해서 이분들이 바로 특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안수 이후에 펼쳐지는 지난한 과정들이 있는 거죠. (중략) 단순히 여성이 안수를 못 받는 게 불평등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여성 리더가 없으면 그 안에서 나올 수 없는 수많은 목소리·한계가 존재하니까, 교회가 여성 교인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교회는 사회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 다 65세 이상이거든요. 그러니 이게 보수화될 수밖에…. 그래서 우리가 여성 할당제뿐만 아니라 세대별 할당제도 얘기한 거죠. 그런데 여성들의 목소리,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마음도 없고, 모든 의결 기구에는 남자들이 포진해 있고, 모든 스피커도 남자죠. 그래서 결국 사회보다 20~30년 늦게 되는 거예요."

결국 한국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은 정책 입안을 위한 '교단 내 여성 대표성 확보 운동'과 맥을 같이해 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쪽 어깨에는 '목회자 성폭력 문제', 다른 한쪽에는 여성 안수부터 의사 결정권 확보까지 망라하는 '여성 대표성 문제'라는 두 가지 짐을 다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죠.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애초에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 자들'조차 없었다는 조직적 한계를 안고 시작했지만, 결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추동하는 매우 정치적이고 운동적인 주체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 여성들,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주요 교단 여성 안수 제도 도입이 본격화한 지 약 20~30년 정도가 경과한 최근에 들어서야, 각 교단에서 성폭력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성폭력 관련 교단법 조항의 제정·개정, 목회자 및 후보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 교육의 본격화, 각 교단 실정에 맞는 성 고충 상담 창구 개설 등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요. 최근에는 교회협 내 '교회성폭력예방교육표준강의안연구소위원회'가 표준 강의안을 제작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이 부분은 추후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운동 주체들이 제안한 원안 형태의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이뤄 낸 교단은 한 곳도 없습니다.

국내 주요 교단 중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국내 주요 교단 중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각 교단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 '리부트'

지난 글에서 살핀 '성폭력특별법 초안'을 토대로 시작된 각 교단의 제정 운동은, 대형 교단 목회자들의 성폭력 문제가 다시 불거진 2015년경부터 재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사회 법정으로 가는 일 자체가 매우 희박했고, 설령 사회 법으로 처벌을 받았다고도 해당 교단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가해자가 형 집행을 마친 후 문제를 일으켰던 교회에 복귀해 목회를 이어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피해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해자의 사직서를 발빠르게 수리한 교단은 대중의 뭇매를 맞기도 했죠. 이는 여전히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사회 법과 교회법 사이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만큼 각 교단 실정에 맞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이 시급했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은 단순히 가해자 처벌, 공소시효, 재판 기탁금 등에 관한 물리적 조항 외에도, 피해자의 권리, 상황에 따른 지원 및 회복에 관한 여성주의적 판단 등 종합적·복합적 맥락을 고루 갖춘 법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기존 교단 헌법 외에 피해자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할 수 있는 별도의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가해자 처벌'에만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의 맥락과 과정, 방향성은 교단마다 약간씩 상이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성폭력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활동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습니다. 제 연구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교회'가 본래 전문적인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 아닌데도 '사회와 분리된 별도의' 사법적 역할을 하는 것 자체를 비판적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교회 재판에 참여하는 재판위원들의 법적 비전문성 또한 비판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50~60대 남성 목회자·장로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재판위원들은 법적 전문성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 발생 구조와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들의 무소불위한 발화 권력이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입히는 2차 피해는 어쩌면 필연적이고요.

작년 여름 목회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자, 한 목회자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교회법이 먼저예요. 시민사회가 구성되면서 필요에 의해 사회 법이 나중에 탄생한 거지." 언제나 교회가 먼저였다면, 약자인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성폭력특별법 마련에도 속도전으로 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미 사회의 크고 작은 단위들이 성폭력 문제 관한 각자의 기준을 세우고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한국 사회의 성폭력 감수성은 이제 더 이상 낮지만은 않지요. 그에 비해 우리 교회가 얼마나 뒤처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단의 운동 성과는 여신협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가 25년 전 운동 초기에 생산한 성폭력특별법 초안과 예방 지침서를 뿌리로 합니다. 당시 구성된 운동 담론을 운동 주체들이 끊임없이 수용·평가·해체·변형·돌파·극복해 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은 그야말로 '리부트' 시대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사건을 비롯한 목회자 그루밍 성폭력이 계속해서 불거지고 대중들의 이목을 끌면서, 운동 진영 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피해를 담보로 한 발짝 떼고 있는 것 같아서 피해자들께 늘 송구한 마음입니다.

최근 교계에는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최근 교계에는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획일화된 운동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고민과 논의가 이뤄지는 현장

현재 운동은 각 교단의 직제, 논의 구조, 상담 체계 등에 따라 차이가 큰 상황입니다. 어떤 교단은 정기적으로 목회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기도 했고, 어떤 교단은 목사 안수 전후로 평생 1회만 받으면 됩니다. 어떤 교단은 성폭력대책위원회나 상담 창구가 마련돼 있어서 피해자가 신속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어떤 교단은 이제야 상담 창구 마련과 의무적 예방 교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추후 마련될 각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이 '교회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가, 교단이 직임을 부여한 '목회자'만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조금씩 다릅니다. 교단 내 성폭력특별법이 일반 교인을 처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 고민은 필요하겠으나, 자신의 피해와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피해자와 해당 공동체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목회자는 물론이고 일반 교인도 처벌·보호할 책임을 명시하는 성폭력특별법이 조직 전체에 주는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활동가는 피해자 보호의 기본적 테두리를 구성하는 '법'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그것이 신앙 공동체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적절한지는 더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일반 교인은 교회법을 잘 알지 못하니, 법보다는 신앙생활 속에서 일상적·교육적·윤리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는데요. 성폭력이 정말 법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인지 보다 치밀하게 분석해야 하고, 사회의 운동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교계 실정에 맞는 운동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소속한 대한성공회는 '주교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 교단과 상이한 직제 및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교단에서 '독립적인' 성폭력특별법 제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기준의 부재'가 불러오는 혼란과 갈등이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공동체 전체와 조직의 치리권자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성폭력 특별법이나 매뉴얼이 성직 사회만 흔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 적용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겉으로는 다 젠틀하지만 속에는 성차별이 없지 않거든요. 저는 성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성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목회자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 안에 법이 마련되면 동일하게 적용돼야 된다고 봐요. 성직자도 평신도도."

현장 상황에 맞는 운동 방향과 전략을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보다 성평등하고 안전한 기독교 조직을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 열심을 내고 있지요. 그 일을 향한 방식과 방법에 옳고 그름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이 외친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은 본인이 겪은 피해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반복되는 일을 막고 싶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침해당하고 유린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고통스러운 행위를 기꺼이 감내한 매우 급진적이고 정치적이고 운동적인 주체들입니다. 과거 여성운동에서는 그러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재명명하는 실천을 전개한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이들을 '생존자'에서 '급진적 활동가'로 재해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회와 비교했을 때, 교회는 도덕적으로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 조직임에 틀림없습니다. 교회가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조바심이 납니다.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처절한 외침과 운동 주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1)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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