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완역·출간 후 첫 북 콘서트가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자캐 사제, 임ㅗ라 목사, 유ㄴㅢ 회ㅇ, 이영ㅣ 교 . 뉴스앤조이 나수진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완역·출간 후 첫 북 콘서트가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자캐오 사제, 임보라 목사, 유연희 회장, 이영미 교수.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교회의 금기와 편견을 깨고 나온 성서 해설서'. 지난 2월 완역된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에 붙은 수식어다. QBC 완역·출간을 맞아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가 6월 23일 대한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북 콘서트를 열었다. 일부 보수 개신교 진영이 성서를 근거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금지법 반대에 나서는 상황에서, 퀴어 시각을 담은 성서 주석 출간이 갖는 의미를 나눴다. 이날 행사는 QBC 번역·감수·출판 과정을 맡아 온 유연희 회장(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이영미 교수(한신대학교), 자캐오 사제(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가 패널로 나선 가운데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목회자·신학생을 비롯해 QBC 출간을 축하하는 그리스도인 50여 명이 참가했다.

QBC는 출간 전부터 보수 개신교 진영의 공격에 시달렸다. 한국 주요 교단들이 QBC 번역을 주도한 임보라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하고, 출간 전부터 '금서'로 지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향한 관심과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2015년 번역 작업을 시작한 지 6년만인 2021년 4월 세상에 나온 '히브리 성서 편'은 크라우드 펀딩에서 889명의 참여를 이끌어 내 모금액의 878%를 달성했다. 올해 2월 출간된 '신약성서 편'의 펀딩에도 453명이 참여해 290%의 높은 달성률을 기록했다.

이날 1부 행사는 '퀴어 그리스도인'을 주제로 한 공연과 축사로 채워졌다. 퍼포먼스 그룹 'Cross the Road'와 길찾는교회·섬돌향린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무지개를 여는 노래' 팀이 각각 연극과 노래를 선보였다. QBC 저자와 해외 퀴어 커뮤니티는 한국어판 완역·출간을 축하하는 인사를 보내왔다. QBC 저자 중 한 명인 모나 웨스트(Mona West)는 축하 영상에서 "QBC의 한국어 번역은 퀴어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폭력을 영속화시키는 퀴어 혐오적 성서 해석을 재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목회자, 교사, 학생, 교회, 학계 등이 좀 더 포용적이고 해방적인 기관이 되도록 애쓰는 데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퍼포먼스 그룹 'Cross the Road'은 '퀴어 예수' 이야기를 연극으로 펼쳤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퍼포먼스 그룹 'Cross the Road'은 '퀴어 예수' 이야기를 연극으로 펼쳤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1988년 32회 총회에서 LGBTQ 교인들을 회원으로 인정한 캐나다연합교회는 "교회가 오랫동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데 사용해 왔던 성서를, 이제는 그들의 성 정체성을 긍정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성소수자 해방운동에 있어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가는 길 중간에 이러한 크고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서로를 북돋아 주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QBC 출간은 교계 울타리를 넘어서 퀴어 활동가들에게도 울림을 줬다. 국내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연대 지오·오소리 활동가,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 신나는센터 김조광수 이사장도 축하 인사를 보냈다. 김조광수 이사장은 "일부 사람은 성서를 인용하면서 혐오를 선동하고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기독교는 성소수자들과 함께할 수 없는 그런 종교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는 성서가 차별과 배제가 아닌 사랑과 평등, 그리고 해방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줬다"며 기독교 신자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어 고맙다고 했다.

신학자뿐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인 번역 참여
"퀴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디딤돌 될 것"
임보라 목사는 국내외 그리스도인 30여 명이 참여한 번역 과정을 소개하며 QBC가 '다양성의 집합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임보라 목사는 국내외 그리스도인 30여 명이 참여한 번역 과정을 소개하며 QBC가 '다양성의 집합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부 패널 토크에서는 유연희 회장, 임보라 목사, 이영미 교수가 번역·출판 과정에 얽힌 이야기와 소감, QBC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갖는 의미를 상세히 소개했다.

QBC 한국어판 번역 과정에는 국내외 그리스도인 30여 명이 참여했다. 2014~2015년, 퀴어 문화 축제에 난입한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의 혐오 행태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낀 임보라 목사가 페이스북에 QBC 번역가를 모집하자, 수많은 사람이 댓글과 이메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초벌 번역을 하고, 이후 번역출판위원들이 감수하는 작업을 거쳤다. 임 목사는 QBC 한국어판 번역 과정에 '공동체'가 참여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했다. 그는 "주석을 번역할 때 신학자를 비롯해 연구자, 평신도, 목회자가 참여했다. 이는 QBC가 '다양성의 집합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교수는 QBC가 퀴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해석학적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고 평가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선동이 난무하는 교계에 토론의 장을 형성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성서가 의미 있는 이유는, 성서 자체가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권위를 부여하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QBC는 퀴어 공동체에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선동만이 난무하는 기독교계에서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줬다"고 했다.

이영미 교수는 신학 교육 현장에서 QBC가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영미 교수는 신학 교육 현장에서 QBC가 활용되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 교수는 QBC가 실제 신학 교육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년과 올해 한신대 성정의위원회·민중신학회에서 함께 QBC를 강독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해석하는지, 관점과 경험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성서를 다르게 볼 수 있을지 토론했다. 참가자들도 변하고 나도 변하는 시간이었다. 신학생들 사이에서 시야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저자마다 퀴어링 정도가 다른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번역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물었다. 유연희 회장은 "이전에 한 퀴어신학 책을 번역할 때 출판사에서 '탑'·'바텀'을 '위'·'아래'로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QBC는 최대한 원저자와 원문을 존중해서 그대로 번역하고, 젊은이들과 퀴어 커뮤니티가 원하는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만 수십 가지고 그 어떤 해석도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며, 해석 과정의 설득력과 학문성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누군가 이 해석을 통해 숨 쉴 것 같다고 하면 그런 해석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나 또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해석이 있었지만, 그 과정이 설득력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QBC를 통해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얻는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성서에 먼지만 쌓이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해석돼서 선한 용도로 쓰이는 게 좋지 않나. '이렇게 막 해석하는 것이 신성모독 아니냐'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QBC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 바로 신성모독이다."

유연희 교수는 퀴어 해석이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혐오와 차별이 바로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유연희 교수는 퀴어 해석이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혐오와 차별이 바로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신앙생활을 하며 실질적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혐오와 차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약성서를 근거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주장에 어떻게 반박해야 하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이영미 교수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성서적 가치'와 '제도적 가치'를 구분하면서 성서를 읽으라고 답한다. '이성애 가부장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를 성서 속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 가치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누구의 이해와 권력을 확장하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규범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해석이 제도적 가치를 넘어 성서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예배당 뒤편에 놓인 검은색 전지에 응원과 소감을 적은 포스트잇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퀴어 성서 주석은 단비입니다. 누구에게나 내리는 단비", "덕분에 성서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교회에 필수로 놓여야 한다" 등 다양한 메시지를 남겼다.

북 콘서트를 마치고 만난 한 신학생은 "신학적·목회적 차원에서 QBC를 강독했다. 목회 현장에서 성소수자 교인들을 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도 "역사적·문화적 한계를 가진 성서를 오늘날 굳이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성서를 통해 퀴어 문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성소수자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히브리 성서' 편과 '신약성서 편'으로 나뉘어 출간된 한국어판 <퀴어 성서 주석>. 뉴스앤조이 나수진
'히브리 성서' 편과 '신약성서 편'으로 나뉘어 출간된 한국어판 <퀴어 성서 주석>.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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