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가 3월 29일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신약성서 편 '마가복음'을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가 3월 29일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신약성서 편 '마가복음'을 주제로 강의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유연희 회장)가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신약성서 편을 함께 읽는 '퀴어스레 신학하기 시즌 7' 첫 번째 강좌를 3월 29일 열었다. 정혜진 연구실장(기독여민회)이 '마가복음'을 주제로 강의했다.

복음서 네 권 중 가장 짧은 분량인 마가복음은 마태복음·누가복음의 기본 자료가 되는 책이다. 정 연구실장은 "마가복음 이야기를 '퀴어링' 하는 일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이야기들을 비교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저자는 시작부터 퀴어링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본문을 과감하게 해석해 나가는데, 이를 통해 퀴어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이 어떤 방식인지 여실히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QBC 마가복음 파트를 쓴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셀라 알타우스-레이드(Marcella Althaus-Reid, 에든버러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실천신학·조직신학 교수)는 본문에서 자신의 '퀴어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서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읽는 것은 본보기로서가 아니라 계시로 읽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친밀한 사랑 속에 계신 하나님의 가면을 벗기는 것, 사람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한 것과 그런 기대에 들어맞거나 어긋나는 것(contra/diction), 즉 잘 길들여진 본문에 담긴 전복적인 목소리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읽는 것이다." (108~109쪽)

오늘날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 본문은 대부분 특정 방식으로 해석된다. 보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성서 속 특정 문구를 퀴어 공격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전통적인 해석의 권위를 내세우며 계시를 닫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시대에 따라 '참조 기준'을 지속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이성애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을 넘어 예수 안에 드러난 다른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대중신문에서 동성애자들이 살해된 이야기들을 읽을 때와 같은 눈으로 예수의 생애를 읽을 필요가 있다. 예수의 열정을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 속에 두지 못하면 성육신(화육)의 의미도, 또한 부활이 뜻하는 몸의 전복도 이해할 수 없다."(109쪽)

실제로 마르셀라 알타우스-레이드의 주석 방법은 그 자체로 '퀴어적'이다. 그는 QBC 마가복음 주석에서, 아르헨티나 퀴어 작가 네스똘 뻬르롱겔(Nestor Perlogher)이 '그들이 한 동성애자를 죽였다'라는 작품에서 사용한 '십자가/픽션(cruci/fiction)' 기법을 차용한다. 십자가/픽션이란, 십자가(cruci)와 허구(fiction)를 십자가형을 뜻하는 단어 'crucifixion'과 형태가 비슷하게 조합한 것으로, 한 인물의 서사에서 메시아적 죽음을 발견해 내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십자가에서 죽임당하는 예수의 옷에 주목한다. 예수는 왕을 상징하는 가시관과 왕의 보라색 망토를 걸쳤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다. 이는 마치 크로스 드레서(cross-dresser)·트랜스 베스타잇(Transvestite·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의 옷을 입을 때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 - 기자 주) 등에 해당하는 성소수자들이 '옷차림'이라는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조롱받는 것과 비슷하다. 정혜진 연구실장은 "저자는 예수 안에 있는 소수자성을 과장되게 겉으로 표현한 보라색 망토와 가시관이, 결국 '드래그 예수(Jesus in drag)'를 말한다고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퀴어 성서 주석 2 - 신약성서> / 데린 게스트 엮음 /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528쪽 / 3만 5000원
<퀴어 성서 주석 2 - 신약성서> / 데린 게스트 엮음 /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528쪽 / 3만 5000원.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수와 퀴어의 삶·죽음이 겹쳐지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십자가 죽음 이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당한 예수는 우울·고립·소외를 겪는다. 이는 퀴어가 겪는 정체성 위기와 비슷하다. 저자는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배고프고, 일자리도 없고, 고립된 예수가 시험을 겪으며 '성전 꼭대기'에 서자, 자살 충동을 느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광야는 세례 요한, 쿰란 공동체 등 사회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예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저자는 이를 깨달은 예수가 자신과 같이 종교적·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한다.

"고립과 위기, 거의 신경쇠약에 가까운 시기를 보낸 후 예수는 동반자들을 찾는다. 예수는 그의 '시험'에서 돌아와 새로운 친구,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 퀴어들이 보통 하듯이 말이다. 여기저기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운이 좋으면 우정과 사랑의 그룹을 시작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예수가 네 명의 어부와 한 일이다. 퀴어의 시각에서 읽을 때, 이 본문은 활력을 일으킨다. 이것은 우울감에 대한 치유이고, 스스로가 다르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즉각 생기는 관계를 보여 주는 본문이다." (111쪽)

정체화한 예수는 당시 사회제도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한다. 예수가 치유한 사람들은 모두 당시 몸의 정상성에서 벗어나 '불결'하다고 취급받는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불결을 예수의 시선으로 보는 대신, 당시 종교·사회가 정상성을 규정하기 위해 부과한 범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예수는 이들을 해방했고, 그들은 예수와 좋은 관계를 가졌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서에서 '불결'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성애적 성서 읽기는 이원론적인 논리와 양극적인 세계 구성에 사로잡혀 있어서, 정결한 예수가 불결한 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정의로운 예수가 죄인들을 만나는 것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 경우에 쓰인 죄나 정결함에 대한 구성은 명확하지가 않다. 이 본문을 접하며 우리가 놀라는 것은 '불결한 영들'이 예수에게 복종한다는 점이다. 양성애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으면 우리는 여기에서 가족도 없이 많은 것들에 굶주려 있고, 커밍아웃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을 보게 된다." (112쪽)

저자는 예수의 죽음이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죽임당하는 퀴어와 닮았다고 해석했다. "하나님의 한 퀴어 남자가 제거"됐지만, "그는 당시 사회질서가 불결하다고 따돌린 사람들 사이에 계셨던 이상한 퀴어 하나님을 알린 메시아"(117쪽)라고 했다. 마가복음에는 부활 이야기가 없지만, 전체 복음서 이야기를 통해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퀴어 예수는 부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 하나님은 성적이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좁은 한계를 넘어서, 소외된 사람들 가운데 온전히 현존한다고 여전히 담대하게 믿는 모든 그룹과 개인과 함께 하신다"(118쪽)고 했다.

강의를 이끈 정혜진 연구실장. 줌 화면 갈무리
강의를 이끈 정혜진 연구실장. 줌 화면 갈무리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석자들의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예수가 정말 퀴어였다면 제자들이 어떻게 이를 받아들였겠냐고 질문했다. 정혜진 연구실장는 "실제 복음서에는 예수의 섹슈얼리티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가 거의 없다. 저자도 예수의 성적 실천에 주목하는 것 같지는 않다. '퀴어'라는 말은 경제적 지위가 낮고, 불결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로 확장해서 사용한 것 같다. 예수의 섹슈얼리티에 국한해 제자들도 모두 퀴어였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넓은 차원에서의 '퀴어'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는 "세상을 떠난 퀴어들이 친구들의 기억과 말 속에서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를 생각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해석에 감동을 받았다. 우울에 빠졌을 때 자기 긍정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독교적 체험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이외에도 "퀴어라는 용어를 성적 영역에만 국한하는 것은 왠지 성소수자를 성행위에 몰두하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느낌이 든다", "성별 고정관념을 벗고 보면 성서 어디에도 예수가 이성애자라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성애주의를 내려놓고 성서를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의견이 있었다.

문학적 상상력 등을 적극 활용하는 퀴어신학이, 성서를 각자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할 소지를 열어 준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강의에 참여한 퀴신아 유연희 회장은 "규범적이고 표준적인 것들을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것,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는 것이 '퀴어'라는 단어다.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는 게 중요하지, '이건 진리가 아니야, 틀렸어'라고 하는 것은 성서를 교조적으로 대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퀴어의 정의가 광범위한 것처럼, 퀴어 해석도 각양각색이다. 퀴어신학이 한국 신학계에도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퀴어스레 신학하기 시즌’ 7 강좌는 3월 29일부터 4월 18일까지 매주 화요일 열린다. 2주 차 강의는 4월 4일에 열리며, 토마스 보해치·로버트 E. 고스·데린 게스트·모나 웨스트가 쓴 '사도행전' 파트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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