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선 사람,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가 2월 4일 별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곁에 선 사람,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가 2월 4일 별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성소수자부모모임 월례 모임에 가면 항상 가톨릭 사제·수녀님 10여 분 정도가 참여하십니다. 특히 수녀님들이 수녀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성소수자와 부모님들이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 자신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겠구나. 특히 가톨릭을 비롯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이나. 한번은 제가 목사라고 밝혔더니, 모임이 끝난 뒤에 교회에서 오래 봉사하셨다는 성소수자 부모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지요.

임보라 목사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임보라'라는 이름을 두고 앞서 이야기한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 '자신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리라는 것입니다. 그중 많은 사람은 누군가 자신들의 곁에 서 있는 '목사님'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을 테고요. 목사가 자신들 곁에 서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그런 목사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느낌, 그래서 어쩌면 다른 이들의 지지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그런 느낌.

임 목사님은 작년에 있었던 '성소수자 교인 목회 토론회'에서 당신에게 이런 문자메시지가 자주 온다며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교인은 아니지만, 저도 한때 그로 인해 힘들었던 입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하나님을 많은 친구들이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목사님에 대한 성소수자분들의 감사와 그 절실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임보라 목사님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섬돌향린교회 목사'라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노래 모임 '새하늘새땅',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수많은 행적을 남기셨습니다만, 어쩌면 그 모든 행적을 한마디로 응결시킨다면 '섬돌향린교회 목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임 목사님의 회고에 따르면, 향린교회가 분가 선교의 일환으로 섬돌향린교회 창립을 준비하던 시절에 향린교회 교회당에서 동성 결혼식이 가능한지 문의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교회 내부에서 격렬한 찬반 토론이 벌어졌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 목사님의 분가 선교가 '동성애자 교회 만들기'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고 하지요.

창립되던 시점부터 그런 의심을 받으며 시작한 섬돌향린교회는 무엇보다도 '교회'였습니다.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함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말입니다.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곳 대다수가 '성소수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정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말입니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섬돌향린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리더십인 임보라 목사님 혼자 이끌어 왔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교인이 한 발 한 발 밟아 가며 함께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임보라 목사님이 그리스도교가, 국가가 하지 말라는 것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강인한 성향을 지닌 분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위 보수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은 임 목사님을 보며 펄펄 뛰었고, 때로는 이단을 운운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제가 섬돌향린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봤던 임 목사님은 그 자리에 계신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 편안하게 다가가는 부드러운 분이었습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하나였던 분,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있었던 분, 이것이 임보라 목사님의 참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임 목사님은 그렇게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하나 된 마음이 가는 대로, 강정마을에도 가시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도 하시면서, 누군가의 곁에 서셨습니다.

임보라 목사님의 소천 소식에 많은 사람이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가 임 목사님이 자신 곁에 서서 지지해 줬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그분들 삶에 힘이 됐다는 말일 것입니다. 소천 소식에 많은 사람이 애통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분의 삶이 아름다웠다는 말일 것이고, 그러기에 더더욱 애통하기도 한 것이겠지요.

누가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든,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따른다면 하나님에게는 임보라 목사님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말일 터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곁에 계신 모든 사람에게, 임보라 목사님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말일 터입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의 곁에 서셨던 임 목사님의 삶,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하나 된 마음 가는 대로 사셨던 그 삶이 허무하게 사라질 리 없다는 말일 터입니다.

임보라 목사님, 감사했습니다.

황용연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회선교사, 사회적 소수자 선교 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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