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관계를 정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서 몇 구절을 가지고 성서 자체와 그 성서가 나온 사회 세계 내에 있지도 않았던, 시대착오적인 이성애-동성애라는 이분법을 구성하는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 게이의 조상을 찾기 위해 오늘날 LGBT의 정체성과 단순히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이성애자들과 성서 등장인물들의 섹슈얼리티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다는, 암묵적이고 뿌리 깊은 전제를 깨는 것이 중요하다."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205쪽]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섹슈얼리티를 오늘날 독자들이 온전히 밝혀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현대 독자들은 성서 인물의 젠더나 성 정체성을 자명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바울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이성애자'라는 식이다. 하지만 바울이 이성애자였다는 근거는 성서 어디에도 없다. 정신분석학자 시드니 태러차우(Sidney Tarachow)는 사도행전에 묘사된 사울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그는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렸으며 이를 억압하기 위해 율법주의자가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서 속 무수한 틈새는 독자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퀴어신학을 비롯해 여성·흑인신학 등 소수자 관점을 지닌 성서 해석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 성서 해석이 무시하거나 설명하지 못한 내용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유연희 회장)는 이러한 취지로 QBC 신약성서 편을 함께 읽는 '퀴어스레 신학하기 시즌 7'을 진행하고 있다. 그 두 번째 시간이 4월 5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날은 퀴신아 총무 아이작(Issac·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이 '사도행전'을 주제로 강의를 이끌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이스라엘 땅을 넘어 이방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QBC 사도행전 편 공저자 토마스 보해치(Thomas Bohache), 로버트 고스(Rober E. Goss), 데린 게스트(Deryn Guest), 모나 웨스트(Mona West)의 해석을 소개한 아이작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방인과 이방 문명을 포용한 것은 성령의 퀴어한 능력과 인도 덕분이었다. 사도행전은 퀴어를 포용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퀴어 그리스도인들의 험난한 길에 복음의 메시지와 응원을 전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 뉴스앤조이 나수진
사도행전은 복음이 유대 땅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QBC 사도행전 편 저자들은 '게이다'(Gaydar·누가 게이인지 알아내는 감각)·'크루징'(Crusing) 등을 사용해 본문을 독특하게 해석한다. 크루징이란 게이들이 길거리나 술집, 공원, 사우나 등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게이를 만나는 것처럼, 퀴어들의 경험·관점을 통해 성서의 특정 본문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해석법이다.

일례로, 데린 게스트는 퀴어신학자들의 연구를 참고해 자색(보라색) 옷감 장수 루디아가 성소수자였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근거로는 △보라색은 오랫동안 연보라색·분홍색과 함께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졌던 점 △성서가 루디아와 남성 간의 관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루디아가 안식일에 여성들과 함께 강가에 모여 있었던 점 △이들이 모인 장소가 '레즈비언'의 어원이 되는 레스보스섬 근처였던 점 등을 제시한다. 아이작은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며 "성서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성애 규범적 틀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환관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성소수자다. 환관은 구약성서가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 하리라"(신 23:1)고 명시하고 있듯, 유대교 전통에서 예배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비주류 젠더였다. 하지만 빌립은 성서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그에게 복음을 전파한 뒤 물가로 데려가 세례를 준다. 사도행전은 에티오피아 환관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첫 이방인으로 기록한다. 모나 웨스트는 이 이야기를 교회로부터 배척당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퀴신아 고상균 교육위원장은 "만약 루디아를 레즈비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초기 기독교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으로 본다면 우리는 기독교의 모습을 다르게 그릴 수 있다. 퀴어 관점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복음에 대한 중요하고도 변혁적인 단초를 제공해 준다"고 덧붙였다.

아이작은 가부장적 이성애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서를 해석할 때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아이작은 가부장적 이성애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서를 해석할 때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남자나 여자가, 이성애자나 퀴어가 없습니다"

퀴어의 눈으로 보면 바울서신도 새롭게 볼 수 있다. 4월 12윌 '퀴어스레 신학하기 시즌 7' 세 번째 시간 주제는 '갈라디아서'였다. 갈라디아서는 예수를 따르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떠난 사이, 보수적인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방인이 유대 정결 규례를 지켜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의를 이끈 퀴신아 집행위원 변영권 목사(예사랑감리교회)는 QBC 갈라이아서 편 저자인 성공회 사제 패트릭 S. 챙(Patrick S. Cheng)의 해석을 소개하며 "기존 성서 해석을 뒤집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의 관점을 더한다"고 설명했다.

패트릭 S. 챙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거짓 교사들과 '동성애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오늘날 반동성애 개신교인의 모습이 서로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퀴어인 우리가 섹슈얼리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우기는 우파 근본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유대법의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과 유사하다"(274쪽)고 했다. 챙은 바울이 '악용', '다른 복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해 가며 '거짓 교사'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해석도 덧붙인다.

그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젠더 이분법을 넘어선 '급진적 평등'을 이야기한다고도 주장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됐으니 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구약 율법은 예수가 오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어 바울은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새번역, 갈 3:28)라고 선언한다. 챙을 포함한 퀴어신학자들은 여기에 "이성애자나 퀴어가"라는 문구를 덧붙여,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긍정하는 본문으로 읽는다.

"글레이저(Glaser)에 따르면, 갈라디아서 3:28에 있는 평등의 약속은 LGBT에 대한 주류 교회의 '학대'와 '충돌'을 초월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없다면, '하나님에게는 어떤 젠더를 우리가 사랑하든지, 우리가 어떤 젠더이든지, 또는 우리가 어떤 젠더라고 믿든지 상관이 없다'. (중략) 버지니아 몰렌코트는 갈라디아서 3:28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범주 '뒤집기'와, 간성이라는 '제3의 성',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 긍정하기로 보았다." (276쪽)

변영권 목사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남성·여성 이분법을 뛰어넘어 다양한 '퀴어'를 포용하는 평등 선언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변영권 목사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남성·여성 이분법을 뛰어넘어 다양한 '퀴어'를 포용하는 평등 선언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변영권 목사는 퀴어 해석이 갈라디아서를 읽는 방식을 새롭게 해 준다고 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늘날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교회들이 성소수자에게 이성애 규범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는 "교회가 성경적이지도 않고, 예수의 가르침과도 관계없는 규정을 계속 만들어 내면서 담장을 높이 쌓고 입구를 좁게 하는 시대에, 바울의 주요 서신 중 하나인 갈라디아서는 오늘날 교회들을 향한 살아 있는 말씀으로 들린다"고 평가했다.

"제게 친한 목사님이 있는데, 목회가 굉장히 힘들었대요. 그래서 어느 날 기도원에 갔는데 부흥사가 목사들한테 '하루에 6시간도 기도 안 하면서 어디 가서 목사라고 하지 말아라' 그러더래요. 그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서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했대요. 그랬더니 은혜가 충만한 게 아니라 머리끝까지 교만함이 차올라서 자기보다 기도 안 하는 사람들은 목사로 안 보이게 되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퀴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굴레를 계속 경험하잖아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 '여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것도 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목사라면 이래야 한다' 하며 우리의 신앙과는 본질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을 타인에게 강요하곤 하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믿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적 지향,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고백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퀴어신학이 성서 속 인물이 성소수자였는지 아니었는지를 가려내는 수준을 넘어,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변 목사는 "퀴어신학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공유하면서 성경을 읽는 눈이 넓어지고, 교회 공동체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퀴신아 유연희 회장은 "'퀴어'라는 말은 LGBTQ만이 아니라 무언가 이상하고 규범에서 어긋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퀴어'한 분이었고, 초기 기독교는 이방인을 환영하는 '퀴어'한 종교였다. 오늘날 기독교는 기성 종교가 되면서 본래의 퀴어함을 무디게 만들었다. 우리는 QBC를 통해 성서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