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유연희 회장) '퀴어스레 신학하기 시즌 7’ 마지막 시간이 4월 19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날 강좌에서는 유연희 회장이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요한계시록 편 저자 티나 피핀(아그네스스카트대학 종교학 부교수)과 마이클 클락(워렌윌슨대학 교수)의 해석을 소개했다.

요한계시록은 주로 '전천년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돼 왔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환란이 있을 것이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박해할 것이며, 예수가 재림해 사탄을 박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팔레스타인 전쟁', '유럽연합(EU) 설립', '전통 가족 가치 약화', '에이즈와 동성애' 등이 마지막 때를 암시하는 사건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티나 피핀과 마이클 클락은 '21세기 미국 현실 속 퀴어의 삶'을 바탕에 두고 요한계시록을 읽는다. 이들은 성서 해석에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사회학·심리학·대중문화 등을 활용한다. 스스로를 '성서 혐오적'이라고 소개하는 두 저자는 "우리는 이 계시록에 면죄부를 주려는 모든 작업에 대해서 '안 돼!'라고 소리친다. 그러면서 우리의 과제는 그리스도교 주류 및 근본주의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은 것에 반대하는 해석을 하는 것"(471쪽)이라고 설명한다.

존 마틴(John Martin)이 그린 '최후 심판의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 1851)',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존 마틴(John Martin)이 그린 '최후 심판의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 1851)',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두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모호한 본문들을 성애적 관점에서 읽어 나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은 폭력적인 가학적·피학적 신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두 증인의 순교' 이야기(계 11장)는 동성 커플의 커밍아웃으로 볼 수 있지만, 죽임당한 두 증인을 부활시키고 복수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폭력에 폭력을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본다. 14만 4000명의 '순결한 남성'(계 14:4)은 구원받은 '게이 남성 합창단'으로 볼 수 있지만, 남성 신의 욕망만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성적인 존재로 묘사된다고 주장한다.

두 저자는 종말에 대한 상상이 '관음증적'이라고도 했다. 종말·혼돈을 만들고 조율하는 신을 믿는 이들은 "보호받는 내부 그룹의 일원으로서 멸망과 욕망이라는 경기장의 맨 앞자리에 앉는다(486쪽)." 이때 '순결한 남성'들은 악인들의 폭력적인 섹스 행위에 대리 만족하며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계시록은 '이세벨'(계 2:20~22), '바빌론의 음녀'(17:16) 등에 대해 "보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계시록은 종말을 욕망하는 독자들에게 '난폭 운전 같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심판받는 '죄인들'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고 했다.

두 저자는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지우고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는 데 활용돼 온 전천년주의적 해석도 비판한다. 묵시문학은 기본적으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장르다. 저자들은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읽어 내는 전천년주의적 해석에서는, 예수가 재림하기 위해 악한 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때 전통적인 이성애 혼인과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성소수자들은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타자'로 손쉽게 동원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배타적인 종말론이 모호한 섹슈얼리티로 가득 찬 성서 본문을 성소수자 혐오 문구로 조작한다고 했다.

존 마틴(John Martin)이 그린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 1853)',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존 마틴(John Martin)이 그린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 1853)',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유연희 회장은 두 저자의 주장이 다소 논쟁적이라면서도, 성서 본문을 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이 성을 금기시하는 전통적인 해석을 넘어 본문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또, 성소수자를 '싸워야 할 적'으로 여기는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논리가 한국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주장에서도 발견된다며, 요한계시록이 쓰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유 회장은 당대 핍박받던 소수자를 대상으로 작성된 요한계시록이 폭력과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본문으로 탈바꿈했다고 했다. 그는 요한계시록이 쓰인 당시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는 신흥종교였고, 그리스도인은 피식민자였다고 했다. 계시록은 역사적으로 비주류 집단이 겪은 박해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주류 집단은 타자를 악마화하고 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묵시록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회장은 종말론적 폭력과 반묵시록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폭력적으로 보이는 성경 본문에서 틈을 넓혀 가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빈 마이어스의 <예수를 교회로부터 구출하라>(한국기독교연구소)를 인용하며, 예수와 성경의 계시를 '문자주의'로부터 구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복적 정의나 폭력이 아니라 급진적인 분배 정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등이 기독교의 진정한 메시지라고 했다. "성경에는 희년법·안식일법 등 하나님의 급진성을 나타내는 '참된 계시'와 인간 문명에서 정상으로 간주되는 '거짓 계시'가 있다. 두 메시지가 성경 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계시와 메시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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