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출간을 기념해 올해 7월 7일부터 8월 25일까지 '밀리와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 강독회가 열렸습니다. 이를 이어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가 QBC를 교재로 퀴어신학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퀴어신학은 한국교회에 제대로 소개가 된 적이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퀴어신학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단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뉴스앤조이>는 퀴어신학과 QBC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퀴어 입장에서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이 해석과 교회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소개합니다. - 기자 주

"이 책은 성과 젠더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지만,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독자들을 포함한 '비정통'으로 여겨지는 관점을 갖거나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성서 독자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료이다." (455쪽)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유연희 회장)가 10월 21일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욥기' 편을 주제로 '퀴어스레 신학하기 - 퀴어스런 Queer Time'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퀴신아 총무이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생 Isaac(아이작)이 이끌었다.

QBC 욥기 편의 저자 켄 스톤(Ken Stone)은 욥의 정체성을 통해 욥기를 '퀴어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욥기의 배경이 되는 '우즈(Uz)' 지역은 유다나 이스라엘 땅이 아닌 모호한 장소이며, 주인공 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주변부 존재, 즉 '이방인'이다. 그는 욥기 저자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밖의 가상공간과 인물을 설정했다며, 이는 성서 안에 종교적 정통 주류에 들어맞지 않은 이들을 위한 틈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그는 욥의 아내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해석한다. 스톤에 따르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욥 2:9)라는 욥의 아내의 말에 등장하는 '바락(barak)'은 일반적으로는 '축복'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다. 특정 문맥에서는 '저주'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욥의 아내가 어떤 의미로 '바락'을 사용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욥의 아내의 말은 부정적인 의미(저주)로만 번역된다. 그러나 스톤은 욥의 아내가 욥기에서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즉 욥의 아내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고난받는 욥으로 하여금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부당한 고난과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연결돼 있는지' 능동적으로 선택·행동하라고 촉구하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레옹 보나가 그린 '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레옹 보나가 그린 '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스톤은 욥을 인내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욥을 순종·인내의 아이콘으로 보지만, 오히려 욥은 부당한 고난에 대해 불평하고, 인습적인 믿음을 뒤집으며 하나님을 고발한다. 스톤은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말을 빌려, 욥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성서의 지배적인 전제에 도전하는 '대항 증언'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Isaac은 이를 설명하며 "욥은 신의 부조리와 신앙적 정통성, 진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에 맞서 저항한다. 보수적·전통적 신앙과 자기가 겪은 실제 삶의 경험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욥의 한탄은 퀴어 당사자와 앨라이(Ally·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의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사람들은 '실제 경험'과 전통 종교의 '핵심 주장' 사이의 '괴리'를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이다. (중략) 욥의 말 및 그와 유사한 다른 본문들은 성서의 '퀴어적 해석'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 본문들은 우리의 온전함과 경험을 정직하게 토로하는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데, 정통적 전통과 그 수호자들이 그러한 주장을 사악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몰아세우며 격렬히 반대하는 순간들에도 그렇다." (466쪽)

스톤은 욥기가 선·악, 상·벌에 대한 전통적·이분법적 개념을 뒤집는다고도 주장한다. 욥기는 악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탄이 하나님을 부추기고, 경건한 욥이 이유 없이 악성 종기에 시달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그를 향해 "악한 이들이 벌을 받는 것"(욥 8:4), "고난은 훈계일 수 있으며 받는 이에게 유익할 수 있다"(욥 5:17)며 비난하지만, 결말부에서 하나님은 이들의 주장을 기각한다. 이러한 본문은 신명기와 같은 구약성서가 강조하는 내용과 모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톤은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소위 '인과응보적 신학'을 전복하는 내용이 욥기를 관통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강의를 이끈 Isaac은 욥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욥의 친구들은 고난과 고난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에 대한 '정통적인' 관점을 강요한다. 고난을 죄의 대가로 보고, 무조건적인 회개와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오늘날 신학적 정통성이나 진리를 운운하며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과 닮았다. 하지만 정통적인 신앙의 대변자인 양 행세하던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에 의해 거부당한다"고 말했다.

제라드 세헤르스가 그린 '인내하는 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제라드 세헤르스가 그린 '인내하는 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Isaac은 욥기가 비인간 동물들을 인간과 대등하거나 혹은 우월한 존재로 묘사한다고 했다. 욥기의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응답하시지만, 그 대답은 욥의 질문과 정확히 호응하지 않는다. 대신 "사자의 식욕을 네가 채워줄 수 있느냐"(욥 38:39),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욥 40:15)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Isaac은 이러한 구절들이 하나님의 개입은 결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비정통적'인 메시지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는 스톤의 해석을 소개하며 "정통적인 신학에서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자 자연·동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권한을 갖는다고 하지만, 욥기의 하나님은 인간만큼 동물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욥기의 '비질서'는 결국 이성애 규범성에 맞서 온 성소수자들의 저항과 연결된다고 했다. Isaac은 "우리는 욥기를 읽으며 이분법적 관점이 아니라 성·젠더·몸의 문제를 둘러싼 수많은 복잡성·모호성을 바라볼 수 있다"며 "욥기는 세상이 인간의 경직된 생각 체계와 결코 같지 않고, 타인에게도 특정 삶을 독단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평가했다.

"창조 세계가 항상 질서 정연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퀴어적 저항과 또 다른 중요한 접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동성애 또는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종교인들은 종종 자연법 또는 창세기 1장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창조 이야기에 의존함으로써, 창조 세계를 이성애와 이성애적 결혼에 대한 규범적인 시각, 그리고 성과 육체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욥기의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세계가 인간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영역임을 인지한다. 창조 세계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기이하고, 인간의 가치, 믿음, 질서 정연한 틀 따위에는 들어맞지 않는다."(480쪽)

'퀴어스레 신학하기 - 퀴어스런 Queer Time'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은 '12소예언서'를 주제로 10월 28일 진행한다. 퀴신아 회장 유연희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가 강의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