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출간을 기념해 올해 7월 7일부터 8월 25일까지 '밀리와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 강독회가 열렸습니다. 이를 이어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가 QBC를 교재로 퀴어신학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퀴어신학은 한국교회에 제대로 소개가 된 적이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퀴어신학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단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뉴스앤조이>는 퀴어신학과 QBC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퀴어 입장에서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이 해석과 교회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소개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유연희 회장)가 주관하는 '퀴어스레 신학하기 - 퀴어스런 Queer Time' 세미나가 9월 30일 '출애굽기'를 주제로 열렸다. '퀴어스런 Queer Time'은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을 교재로 삼아, 퀴어신학적 관점에서 출애굽기·사사기·에스더기·욥기·12소예언서를 차례로 살핀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첫 번째 시간은 퀴신아 운영위원 변영권 목사(예사랑감리교회)가 맡았다.

이집트 땅에서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은 '출애굽'을 통해 자유인이 된다. 영화 '이집트 왕자' 갈무리
이집트 땅에서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은 '출애굽'을 통해 자유인이 된다. 영화 '이집트 왕자' 갈무리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의 민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출애굽기에는 노예살이를 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중심으로 이집트를 탈출해 시내산에 도착한 후 계명을 받는 여정이 담겨 있다. '출애굽'은 노예·하층민·유랑민 신분이었던 히브리인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건이었다. 변영권 목사는 "출애굽기를 볼 때,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이었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이야기를 기록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출애굽기는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 구성원들이 출애굽 이야기를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 기원 설화"라고 했다.

변 목사는 출애굽기 저자가 퀴어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작성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 독자들은 저자의 의도와 더불어, 저자가 가진 편견·한계를 발견하고 상상력과 현대적 감수성 등에 비춰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출애굽기뿐만 아니라 성서에 있는 책 중 21세기 성소수자를 고려해 쓴 것은 없다. 그렇지만 저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성서의 메시지를 발견해 내는 것이 현대의 주석이고,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교훈과 신학적인 지식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출애굽기의 저자들은 이 본문을 전수할 때 트랜스레즈바이게이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성서를 거룩한 문서로 가치 있게 여긴다면, 성서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에게 무언가 특별히 할 말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각 부분에 대해 뭔가를 가르치고, 생각하고 따를 것을 얘기해 주리라 여긴다면, 출애굽기가 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가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120~121쪽)

출애굽은 '커밍아웃'
"나그네 압제하지 말라"는
성소수자 환대하라는 것

QBC 출애굽기 편 저자 리베카 앨퍼트는 출애굽기가 지닌 해방적 성격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낙인찍히지 않는 시대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앨퍼트는 모세가 히브리인 정체성을 숨기고 이집트 왕자로 자랐지만 동족이 학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결국 민족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점을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 경험과 연결하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과정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과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앨퍼트는 하나님과 모세의 독특하고 친밀한 관계를 퀴어적 차원에서 상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등의 구절을 통해 모세와 하나님을 (동성) 성애적 관계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도 않는데, 모세만이 하나님과 이처럼 아주 가깝고 개인적인 특권적 관계를 가진다.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강렬한 순간에 시작하는 깊은 친밀감이 있다." (132쪽)

불타는 떨기나무와 모세. 영화 '이집트 왕자' 갈무리
불타는 떨기나무와 모세. 영화 '이집트 왕자' 갈무리

앨퍼트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남성·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뒤집는 인물이라고 했다. 십보라는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출 4:25)라고 말하며 할례의 집행자가 된다. 앨퍼트에 따르면, 이 독특한 본문은 트랜스젠더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140쪽). 그는 유대학자 다니엘 보야린이 할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 남자를 여성화한다고 한 해석도 언급했다. 변 목사는 "유대교는 결혼식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이 여자는 내 부인이다'라고 선포하는데, 여기에서는 역할이 반대로 뒤집힌다. 모세의 부인인 십보라가 '이 사람은 내 남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뒤집는 것"이라고 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 23:9)는 계명은 성소수자 해방을 지지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했다. 앨퍼트는 낸시 푹스 크레이머의 해석을 소개하며, 이 계명이 오늘날 우리에게 낯선 사람·생각·경험에 마음을 열라고 요구한다고 했다(141쪽). 변 목사는 "이 본문은 출애굽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와 광야에서 천대받았던 경험이 있듯이, 다른 이들을 천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확대해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주인과 노예 또는 내부자와 외부자 같은 구분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성소수자들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그네 된 것 같이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변 목사는 모세가 평생을 외부인으로 살며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교회 안의 퀴어들도 나그네 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안에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거나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고, 가족이나 다른 공동체에서도 늘 그런 느낌을 갖고 겉돌며 살아가야 하는 퀴어들의 심정과 본문이 연결돼 있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환대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니콜라 푸생이 그린 '홍해 건너기'(1634).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니콜라 푸생이 그린 '홍해 건너기'(1634).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변영권 목사는 퀴어신학을 '새롭게 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서를 단순히 규범적·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열린 사고로 새롭게 해석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QBC를 실제로 읽어 보면, 그렇게 말도 안 되고 이상한 내용이 아니다. 전통적인 성서 주석 위에서 새로운 관점을 더해 나가는 작업을 충분히 시도하고 계속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기독교적 가치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퀴어신학은 출애굽기 본문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현대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비춰 볼 때,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이 '가나안 정복'으로 귀결된 것이나, 10대 재앙으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이집트 시민들의 이야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변 목사는 "QBC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부분들을 짚어 낸다. 성경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옳고, 신앙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서의 권위를 핑계 삼아 폭력을 정당화하는 해석은 현대의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퀴어스레 신학하기 - 퀴어스런 Queer Time' 세미나는 9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목요일 열린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우연 씨가 사사기를, 기독여민회 정혜진 연구실장이 에스더기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Isaac(이삭)씨가 욥기를, 퀴신아 유연희 회장이 12소예언서를 주제로 강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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