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복음을 전하도록 세워진 거룩한 신앙 공동체다. 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누군가는 순교의 피를 흘렸다. 그런데 예수 탄생의 복음을 나눠야 할 복된 성탄절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부끄럽게도 남쪽에서 전해 온 '세습 교회'에 관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교회 세습의 폐해를 알기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에서는 법으로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헌법 제28조 6항). 설령 교인들 모두가 원한다고 해도, '불법'에 대해서는 각 치리회(당회-노회-총회)에서 허락할 수 없도록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상위법을 위반하는 하위법은 그 자체로 무효가 되도록 했으며(헌법시행규정 제3조 2항), 법규를 위반한 안건은 의안으로 상정되어도 결의에 부칠 수 없도록 하는 회의 진행에 관한 의장 의무 규정도 만들어 뒀다(장로회 회의규칙 제26조). 여기에 더하여 목회지 세습금지법을 위반해 결의를 강행하는 경우, 해당 치리회장에 대해서는 상회 총대 파송 정지 이상의 책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헌법시행규정 제72조 7항 6호).

그러나 예장통합은 이미 서울 명성교회 세습을 우여곡절 끝에 교단법에 따라 '불법'으로 판결해 놓고도, 당해 교회의 위세에 눌려 바르게 치리하지 못했다. 교권과 금권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수습안'이라는 명분으로 덮으려 하고 있지만, 수습은커녕 그 여파로 교단의 권위와 질서는 무너졌고 해당 노회(서울동남노회)는 아직도 크고 작은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명백한 불의다.

2021년 9월 예장통합 106회 총회 현장. 뉴스앤조이 이용필
2021년 9월 예장통합 106회 총회 현장. 뉴스앤조이 이용필

한때 교회는 세상을 선도先導할 만큼의 권위가 있었다. "예수의 권위가 남달랐다"(막 1:22)라는 성경 구절에 등장하는 '권위(έξουσια)'는 '합법적(έξεστι, lawful)'이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유래한다. 예수의 권위는 하늘의 법도를 우습게 알던 당대 서기관들과는 달리, 철저한 '준법'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추상같던 교회의 권위도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하게 돼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세습금지법을 만들어 놓고도 이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긴 예장통합 총회를 두고 누가 그 권위를 인정하겠는가. 이제는 세상을 향해서도 법을 따르라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자기 소견에 치우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를 흔히 '미개인未開人'이라 부른다. 미개한 사회일수록 준법 의식이 없다. 강자의 횡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무법천지가 아니다. 가장 강력한 '사랑의 법'이 작동하는 나라다. 거룩한 신앙 공동체는 서로 배려하고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와 반대로 세습의 영성에는 타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세습은 북한 같은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직 공교육 제도가 미비하던 시절, 가정은 학교나 다름없었고 부모는 자식에 좋은 스승이 되어 가르치며 가업을 잇게 했다. 같은 차원에서 구약 시대 제사장의 세습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의식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제도였다고 본다. 하지만 전문 사역자들이 공적 교육의 장을 통해 배출되는 이 대명천지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세습을 고집한다면, '우리 교회는 미개하다'라고 만천하에 자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수은파교회의 세습은 대단히 잘못된 처신이다. '이미 다른 대형 교회가 세습을 했고 총회가 이를 묵인했으니 우리도 한다'는 변명은 가당치 않다. 배울 게 따로 있지, 어찌 못된 것만 따라 하려 하는가. 하지만 이 같은 일은 교단이 자초했다. 이런 일을 예상했기에 지난 수년 간 그 난리를 쳤던 것 아닌가. 이제 어찌하랴.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습을 허용해 주고 말 것인가?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다시 풀어 제대로 끼워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교단의 권위를 회복하고 미개한 우리 영성을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불법 세습은 교단 차원에서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김수원 / 태봉교회 담임목사, 서울동남노회 전 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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