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2022년 1월 4일 보도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의 목회지 부자 세습 소식에 부쳐, 전남 지역의 한 목회자가 보내온 글입니다. - 편집자 주
부자 세습을 강행한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 뉴스앤조이 이용필
부자 세습을 강행한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 뉴스앤조이 이용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여수은파교회(고만호 목사)가 지난달 말 공동의회를 열어 여천은파교회(고요셉 목사)와 합병하고, 고만호 목사의 둘째 아들 고요셉 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의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교회 세습(목회지 대물림)'을 공식 결정한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고만호 목사 후임으로 그의 아들을 청빙하기로 결의할 때 교인 중 반대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대형 교회의 세습은 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벌써 오랫동안 큰 관심과 논란을 빚을 만큼 예민한 사안입니다. 더욱이 전남 동부권 제1의 도시 여수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교회의 후임 담임목사 청빙 건이었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데 모든 교인의 의견이 일치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만장일치'는 흔히 독재 사회에서나 가능하기에 어찌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류영모 총회장)은 지난 2013년 제98회기 정기총회에서 '담임목사직 대물림 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헌법 규정(제28조 제6항의 ①)에 의하면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인 사람을 위임목사 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여수은파교회가 공동의회를 하면서 이 같은 교단 헌법 규정을 교인들에게 충분히 숙지시켰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당장 교단 헌법 규정 위반인데도 교인들이 이번 결정에 기꺼이 찬성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수은파교회에서는 여천은파교회와 '합병'하고 고요셉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했으므로, 헌법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입니다. 고요셉 목사는 여천은파교회를 분립 개척하기 직전까지 여수은파교회 부목사였습니다. 잠시 여수은파교회 교인 일부를 떼다가 분립 개척 형식을 취했을지 모르나, 전형적인 '변칙 세습' 수순에 불과했음을 이번 결정이 잘 보여 줍니다. 하지만 교단 헌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건 어쩌면 둘째 문제일지 모릅니다. 

여수은파교회의 후임 담임목사 청빙 결정을 '교회 세습이 아니다'라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 어떤 변명을 하든 교회의 부와 권력을 아들에게 사적 재산처럼 물려준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봉건시대의 그릇된 풍습인 '세습'이 교회에 남아 있음을 보며 조롱하고 실망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 의로운 일을 하려 몸부림치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욕먹는다면 달게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세상 상식에도 맞지 않는 교회 세습 때문이라면 심히 부끄러운 일이고 깊이 참회할 일입니다. 

여수은파교회는 12월 26일 공동회의를 열고, 고만호 목사의 아들 고요셉 목사(여천은파교회)를 청빙하기로 결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수은파교회는 12월 26일 공동회의를 열고, 고만호 목사의 아들 고요셉 목사(여천은파교회)를 청빙하기로 결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 앞에 서서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고 외치라 명하신 적 있습니다. 마치 "도둑의 소굴"(렘 7:11)처럼 변한 예루살렘성전을 주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전'이라며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모습을 보시고, 예언자를 보내 그 허상을 과감히 폭로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부패한 예루살렘성전을 정화하시며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라고 준엄히 꾸짖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을 머리로 삼고 모인 성도들의 모임이자 "하나님의 집"입니다(엡 1:22; 2:19, 고전 3:9). 예수님이 아닌 담임목사를 머리로 삼고 그의 소유물처럼 변질된 곳은 이미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역겹게 여기십니다(암 5:21). 아무리 많은 이가 모이는 교회라고 해도,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면 '도둑의 소굴'처럼 변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 구원의 순례 여정을 걷는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더욱 타락시키는 온상이 될 뿐입니다. 

현재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에 이르기까지 권위를 두루 인정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은 교회의 '공교회성'을 의미합니다. 세계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르는 교회로서 보편적·우주적 성격을 띱니다. 어느 특정인의 소유물이나 된다는 듯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 세습은 맘몬에 굴복하는 배교 행위나 다름없으며,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길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부디 여수은파교회의 재고를 바랍니다.

쿠션(가명) / 전남 지역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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