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예장 통하프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마을에서는 양치기 소년이 생각보다 끈질기고 실감나게 거짓말을 한 나머지, 하나의 놀이가 되고 만 것. 어느새 노인이 된 양치기 소년은 아직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지금은 학업도 사역도 떠나 있는 상황(떠난 건지 떠밀린 건지 아직도 구분이 안 된다)인 나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의 마지막 인상은 '대형 교회 세습'과 '반동성애', 이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사실 코로나 확산 상황이 없었다면 여태 저 두 가지 이슈가 총회·개교회·신학교를 가리지 않고 시끌시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교회 세습 반대 목소리가 높아질 때면, 어디선가 교회 정체성을 수호한다는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동성애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양치기 소년은 노인이 되는 동안 자신의 거짓말이 필요한, 그 거짓말을 '팔아 줄' 사람들을 알게 됐다. 그들이 양치기 소년에게 거짓말을 의뢰하면, 그는 필요한 거짓말을 개발하고, 부풀리고, 퍼뜨려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그 과정이 마을의 수익 구조가 됐다. 양치기 노인은 이제 동료를 모아 이미 죽은 늑대의 가죽을 벗겨 탈을 쓰고, 마치 정말 늑대가 나타난 것마냥 연극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양들을 훔치고 팔아 추가 수익을 챙긴다.

학교를 다니면서 지켜본 바로는, 세습을 반대하는 이나 반동성애를 외치던 이 모두 '총회'에 기대고 있었다. 물론 세습 반대 진영의 전략과 전력이 더 형편없었다. 개혁을 표방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커질 대로 커진 총회 조직 자체에 힘을 더 실어 주는 꼴이었고, '노회'가 기본단위인 장로교 정치제도와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는 현실을 드러낼 뿐이었다. 세습과 동성애는 항상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돼 왔는데, 동성애 지지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축출하는 법은 (지적 자체가 진부하지만) 매우 문제적이다. 이 법은 '양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장로교단들이 그러하듯, 예장통합도 매년 10월 '양심과 신앙의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건 종교개혁 정신 및 개혁가들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 학교를 다닐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유난 떠는 이 시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꼬박꼬박 학술제에 참여하면서 내가 서 있는 뿌리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새해 다짐을 하듯 그들의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나도 그 길을 따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예장통합 교회법은 제2편 '정치' 1장 1조에 '양심의자유'를 위치시켜, 교회가 이를 소중히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제2편 정치
  제1장 원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제1조 양심의자유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각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하거나 지나친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무엇을 처벌 근거로 삼을 것인지, 무엇이 '동성애 지지 행동'인지 아직 규정되지 않은 2017년, 행동이 아닌 '사상과 양심'을 처벌하겠다는 발상이 총회에서 공적으로 발화되고, 1500명이 넘는 총대들 중 단 한 명도 이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새삼 충격적이다. 당시 그 헌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아무도 적법성에 관한 논의조차도 꺼내지 못하는 수준일까' 하며 원망과 함께 직감했다. 그리고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엄마, 나 목사 못 될 것 같아."

통하프 마을 양치기들 중 '고만 호스본'은 꽤나 충성스럽고 실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행동대장이었다. 마을의 큰손이 자기 사업체를 자식에게 넘겨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마을에는 세습금지법이 있었다), 그는 흉악한 늑대 탈을 만들고 크루를 꾸려 공포스러운 연극을 시연했다. 마을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그렇게 반대 목소리가 잠잠해진 틈을 타 큰손은 세습에 성공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교단 세습금지법 위반이라는 교계·사회의 비판에도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을 강행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교단 세습금지법 위반이라는 교계·사회의 비판에도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을 강행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그리고 이 불안은 2018년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로 미디어에 소개된 성소수자 연대 행동 이후 내려진 징계와 2019년 목사 고시 특별 면접 과정에서 현실이 됐다. 한 목사님의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동성애 지지자냐, 동성애자 지지자냐."
"동성애 인권 지지자냐, 동성애자 인권 지지자냐."

이런 질문을 면전에서 받으니 실제로 내가 뭘 지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결국 목사 고시를 합격했지만 '면접 불합격'으로 결론이 났다. 이 일을 생각하면 이따금씩 무서워진다. 나를 목사 고시에서 떨어뜨린 것은 그들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최근 부자 세습을 결의한 여수은파교회 한 장로님의 말씀이다(저 말은 역사적으로 매번 치트키였던 것 같다. 너무 치사하다). 나도 교회를 위해,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행동한 것인데. 나는 법을 어긴 것이 없는데도 어겼다고 불이익을 당했고, 저 교회는 명백하게 법을 어겼는데도 세습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고만 호스본은 큰손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준 이래로 '자랑스러운 해결사'로 인정받고, 자신 또한 마을의 법을 어기고 자기 사업체를 자식에게 물려줬다.

여수은파교회 고만호 목사도 최근 교단법을 어기고 아들 고요셉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수은파교회 고만호 목사도 최근 교단법을 어기고 아들 고요셉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100회, 2015) △다시 거룩한 교회로!(101회, 2016)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102회, 2017)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103회, 2018)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104회, 2019)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105회, 2020)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106회, 2021)

최근 예장통합 총회 주제만 놓고 보면 개혁과 회복에 대한 의지가 아예 없는 것 같진 않다.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권력기관이 스스로 개혁하는 게 가능한지 정직하게 자문하면 좋겠다. 총회가 그들의 바람대로 '성스러운' 총회가 되려면, 총회가 사실상 대형 교회를 위시한 권력기관임을 인지해야 할 텐데 말이다. 물론 그런 자문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자꾸 총회의 결정에 기대며 결과적으로 대형 교회에 힘을 실어 주는 행동에도 반성과 경계가 필요하다. 교회 규모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노회 중심의 대의정치, 다양한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정치가 개교회·노회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총회와 교단 개혁을 위한 현실적인 수순이다. 개교회와 노회가 그대로인데 총회 풍경이 바뀌길 바라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비단 여수 고 씨 부자의 교회 세습만이 문제일까. 이것만 아니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인 양 구는 위선과 기만의 태도가 더 위험하다. 자꾸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덮는 방식으로 이용되니 말이다. 세습 반대 운동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학교 후원금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교단 내 반동성애 광풍에 문제를 제기하며 행동했을 때도 같은 얘기가 돌았다. 결국 다 돈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장학기금 현황을 보면, 2020년 3월 ~ 2021년 2월 명성교회(김하나 목사)가 26억 원에 가까운 장학기금을 낸 것으로 나온다. 장신대 관계자는 "1년 사이에 낸 게 아니라 누적 장학기금이다"라고 알려 왔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장로회신학대학교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장학기금 현황을 보면, 2020년 3월 ~ 2021년 2월 명성교회(김하나 목사)가 26억 원에 가까운 장학기금을 낸 것으로 나온다. 장신대 관계자는 "1년 사이에 낸 게 아니라 누적 장학기금"이라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장신대에 쌓인 명성교회발 장학기금 25억 원. 청년 조직부터 교단 꼭대기까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돈이 있는 게 문제고 돈이 없는 게 문제다. 어마어마한 자본과 계급을 세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교회 세습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목적을 위해 '반동성애' 의제가 소환됐을 뿐이라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

혐오와 폭력은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여러 사회적 통계 지표들은 개신교를 향한 상당한 반감을 보여 준다. 표리부동에, 인면수심에, 걸핏하면 뻔히 돈 때문에 부린 수작을 하나님 핑계 대며 덮으려 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 상황이 이쯤 되면,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는 풍경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 그니까 반대하지 말고 얼른 열심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합시다. 기독교인들이 보호를 받을 거예요.

말을 맺기 전에, 사실 2020년에도 학생들의 감시와 제보로 몇몇 목회자 후보생이 면접에서 탈락하는 일을 겪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사람이 피해자가 될까. 제발 이 끔찍한 공포 팔이 문화가 종식되면 좋겠다.

어느새 통하프 마을에는 공포와 선동이 난무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감시, 고발로 공포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과연 통하프 마을은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 나갈 수 있을까? 아니, 헤쳐 나가고 싶긴 한 걸까?

*P. S. 한때 군종 사관후보생이었던 나는 곧 병사로 군대를 간다. 이따금씩 얼굴이 뜨거워지고 온몸이 탄산수에 빠진 것처럼 따끔따끔할 정도로 화가 나지만, 보통의 경우 생각보다 초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는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근데 왜 나만 아름다워야 하는가. 양치기 노인들은 언제쯤 아름다워지려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름다워지길. 꼭 아름다워지길.

오세찬 / 테크트리 잘못 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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