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정'을 위해 교단법을 어기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고만호 목사. 고 목사는 2009년경 '교회 안정'을 이유로 200억 건축 증빙서류를 없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회 안정'을 위해 교단법을 어기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고만호 목사. 고 목사는 2009년경 '교회 안정'을 이유로 200억 건축 증빙서류를 없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회 안정과 성장을 위하여 고요셉 목사를 청빙하자는 건입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교단법을 무시하고 부자 세습을 강행한 여수은파교회 고만호 목사가 12월 26일 공동의회 사회를 보면서 한 말이다. 교회 안정·성장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위임목사로 청빙하자고 했고, 안건은 반대 의견 없이 그대로 통과됐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정'이라는 논리는 교단법은 물론 일반 상식도 가볍게 뛰어넘는 절대 기준이 됐다. 이미 세습을 완료한 많은 대형 교회가 이 논리를 가져다 써먹었다. 교회 안정은 세습뿐만 아니라 소위 사고를 친 목사들의 단골 멘트이기도 한데, 오래전 고만호 목사 역시 똑같은 말을 하며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교회 안정을 위해, 당회장의 권한으로 (예배당 공사 관련 지출 내역서를) 모두 태워 버리겠다."

고만호 목사는 10여 년 전에도 "교회 안정을 위해"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 그는 2009년 7월 24일 금요 저녁 예배 후 교인들에게 위와 같이 말했다. 지금보다 더 담임목사의 권위가 강했던 시절이었던 만큼 이의를 제기하는 교인은 없었다. 며칠 뒤 교회 사무장은 고 목사 지시대로 예배당 공사 관련 문서를 파쇄하고 소각했다.

별안간 벌어진 증빙서류 소각 사건은 예배당 신축 공사와 관련 있었다. 여수은파교회는 2007년 5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예배당 신축 공사를 진행했다. 연면적 약 4000평(1만 3000㎡), 지상 5층에 이르는 큰 공사였다. 총 공사비만 200억 원이 들었다. 당시 건축위원장은 고만호 목사의 최측근 안 아무개 장로가 맡았다. 안 장로의 추천으로 ㅇ종합건설이 공사를 진행했다.

고만호 목사 최측근 장로가 건축위원장
시공사 대표에게 건축 헌금 요구
2억 1000만 원 사적으로 유용

안 장로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 2007년 4월경 시공사 대표에게 '건축 헌금'을 요구했다. 시공사 대표는 안 장로 요구에 따라 교회 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1000만 원을 입금했다. 건축 헌금 요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안 장로는 공사가 끝난 2009년 3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2억 1000만 원을 챙겼다. 시공사 대표에게 건축 헌금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안 장로는 이를 자신의 빚을 갚거나 아들 명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썼다.

안 장로의 횡령 사건은, 여수은파교회 사무장이 2009년 6월경 시공사 대표에게 허위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면서 드러났다. 당시 시무장로였던 A는 1월 1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2억 1000만 원 기부금 영수증을 교회가 떼 줬는데 정작 들어온 헌금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회 차원에서 조사하다 보니, 안 장로가 헌금을 뒤로 받아 온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부 장로는 교회 건축 재정을 들여다봤고 예상보다 건축비가 많이 나간 것을 알게 됐다. A는 "원래 건축비 예산은 67억 원 정도였는데 200억 원이나 나갔더라. 장로들한테도 이야기를 안 해 줘서 전혀 몰랐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시무장로였던 B도 "공사 비용이야 하다 보면 늘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200억 원까지는 안 될 텐데, (고만호 목사와 안 장로가) 200억 원을 썼다고 하니 이상했다. 그래서 몇몇 장로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몇몇 장로는 먼저 건축위원장 안 장로를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A는 "당시 우리는 이 사건이 안 장로의 개인 일탈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횡령뿐 아니라 공사 비용 부풀리기 의혹 등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고발이 들어가고 얼마 안 돼 고 목사가 증빙서류를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그때 '아, 이거 뭔가 이상하다. 고 목사도 연관돼 있구나'라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장로들은 증빙서류 소각을 지시한 고만호 목사를 증거인멸, 재물 손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없다며 2012년 9월경 불기소했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불기소 이유서에는 고 목사의 입장이 담겨 있다.

"(몇몇 장로가) 교회에 불만을 품고 분란을 일으켜서 교회와 교인의 안정을 위하여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서류를 파쇄하도록 한 것이다."

200억 원 증빙서류를 없애라고 지시한 고만호 목사는 법망을 피해 갔지만, 그의 최측근 안 장로는 그렇지 못했다. 안 장로는 횡령 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2012년 6월 15일, 안 장로가 2억 1000만 원을 횡령했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안 장로와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여수의 대형 교회 중 하나인 여수은파교회. 새 예배당 건축위원장을 지낸 안 장로는 건축 헌금을 횡령했다가 출교됐지만 몇 년 뒤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재정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일부 장로는 교회를 반강제적으로 교회를 떠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수의 대형 교회 중 하나인 여수은파교회. 새 예배당 건축위원장을 지낸 안 장로는 건축 헌금을 횡령했다가 출교됐지만 몇 년 뒤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재정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일부 장로는 반강제적으로 교회를 떠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여수은파교회는 법원 판결 이후 안 장로를 출교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안 장로는 다시 돌아왔고, 2022년 현재 당회 서기를 맡고 있다. 안 장로는 지난해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여수노회 장로부노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하기도 했으나, 과거 횡령 사건 논란이 일면서 자진 사퇴했다. 여수노회 한 목사는 1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안 장로의 부노회장 출마는 부자 세습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밑그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자진 사퇴할 거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장로부노회장이 공석인 건 초유의 일이다"라며 황당해했다.

건축 헌금을 횡령하고도 잘나가는 안 장로와 달리 합리적 의혹을 제기해 온 장로들은 반강제적으로 여수은파교회를 떠났다. B는 "우리가 한창 의혹을 제기할 당시 고 목사가 강단에서 '구역예배도 참석하지 말고, 기도도 하지 말고, 찬송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러니 교회에 다닐 이유가 있는가. 미련 없이 떠났다"고 말했다.

여수은파교회는 여수 지역의 대형 교회 중 하나다. 1년 예산만 5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장로들은 고 목사가 세습한 이유도 돈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A는 "내가 있을 때만 해도 고 목사 사례비만 1억 원이 넘었다. 이 큰 교회를 누구한테 주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B도 "세습해야 받아먹고 살 거 아닌가. 다른 목사가 오면 싸움 날 수도 있고, 돈이 많이 나오니까 꾀를 써서 합병 세습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고만호 목사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로 △예배당 건축 증빙서류를 없앤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도 타당한 조치였다고 생각하는지 △건축 헌금을 횡령한 안 장로를 다시 받아 준 이유가 무엇인지 △교단법을 어긴 세습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으나, 역시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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