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반동성애 진영은 인권조례뿐 아니라 학생 인권조례, 양성평등 조례 등 다양한 기초 단체 조례를 반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제정뿐 아니라 인권조례의 내실을 기하겠다는 개정안만 올라와도 여지없이 반대 폭탄을 쏟아 낸다. 올 한 해 9월 제주학생인권조례 개정이 무산됐고, 11월에는 대구 인권조례 개정안도 좌초됐다. 모두 동성애 조장 등 하나같이 근거 없고 똑같은 주장의 반복이었다.

올해 7월 도봉구는 인권센터의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이의신청 조항을 신설하려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이틀간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를 받아야 했다. 진정인뿐 아니라 인권을 침해한 혐의가 있다는 피진정인에게도 이의신청할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내용으로, 반동성애 진영 주장대로라면 '성소수자 채용 거부로 고발당한 목회자'가 인권침해 결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도 반박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정에 반대하는 전화가 쏟아졌다.

보수 개신교계 일부의 반발로 전국 각지에서는 주민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조례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반대 세력을 의식한 의회가 조례 제정을 꺼리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보수 개신교계 일부의 반발로 전국 각지에서는 주민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조례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반대 세력을 의식한 의회가 조례 제정을 꺼리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역 주민이 아닌데도 집단적으로 항의하고 업무를 마비시키는 행태를 견뎌 내려면, 그에 걸맞은 인권 의식과 역량이 있어야 한다. 기초의원과 공무원의 의식을 보여 주는 사례를 하나씩 소개한다.

강남구청은 인권조례 제정 의사가 강한데도 강남구의회 의원들의 반대로 조례를 쉽사리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0월 20일 강남구의회 행정재경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보수 교계를 대변하는 듯한 구의원들 목소리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강남구청은 조례 제정에 앞서 2019년 강남구 인권 실태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구민 89.1%가 가장 필요한 인권 정책으로 '인권조례 제정'이라고 응답했다. 입법 예고 기간 중 접수된 반대 민원 1400여 건 중 지역 주민으로서 반대한다고 밝힌 의견은 8건이었음을 고려하면 주민의 여론이 읽힌다.

홍경일 감사담당관은 "주민들은 환경권·안전권·건강권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정책적으로 저상 버스 도입 등 접근권 향상, 1인당 공원 면적 증가 같은 것을 요구했다"는 구체적 내용도 소개했다. 구청에서는 "종교계 지도자들을 교단별로 면담했으며, 대다수가 조례 제정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구의원은 "인권조례가 제정되면 담당 공무원들 업무가 가중되는데 이들에 대한 인권 역차별 아니냐", "인권조례를 만들면 선량한 시민들이 역차별당한다", "지나가다 부딪쳤는데 성희롱이라고 하면 성희롱이 되는 역차별도 많이 생기고 있으니 이것(인권조례)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있는데 왜 굳이 또 조례를 제정하느냐", "학생 인권조례가 생긴 후 학생들이 인권을 찾겠다며 두발 자유권, 화장·복장 자율권 등이 생겨나 통제가 안 된다"고 질책했다. 결국 조례는 심의 보류됐다.

한편, 서초구에서는 묻지도 않은 질문에 '종교 단체' 반발을 의식하는 구청 공무원의 답변이 나왔다. 서초구의회 11월 26일 행정복지위원회 사무감사 회의록을 보면, 인권위원회 설치가 의무인데도 왜 여태껏 구성되지 않고 있냐는 김정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의에 대해 서초구청 감사담당관은 "누구나 차별받아서는 안 되지만 조금 예민한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무슨 문제냐고 물으니 구청 관계자는 "다른 구청에도 보면 종교 단체 반발이나, 퀴어 축제 등에 대한 갈등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도대체 서초구 인권위원회와 퀴어 축제가 무슨 상관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구청 관계자는 "언론 보도나 간접 경험을 토대로 드리는 말씀"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김 의원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엉뚱한 답변이 나왔다. 조례에 인권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으니 하자는 건데 이것이 길게 얘기할 문제냐"고 황당해했다.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보수 교계만 의식하다 보면, 결국 조례 제정은 어려워진다. 입법 예고 후 1년이 지났는데도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강남구는 올해 5월 인권지킴이단 등 자체 사업을 우선 시작하고 있다. 사진 출처 강남구청 홈페이지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보수 교계만 의식하다 보면, 결국 조례 제정은 어려워진다. 입법 예고 후 1년이 지났는데도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강남구는 올해 5월 인권지킴이단 등 자체 사업을 우선 시작하고 있다. 사진 출처 강남구청 홈페이지

기초 단체들은 주민 여론이라 할 수 없는 일부 극우 개신교의 민원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자체의 책무인 주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인권조례 제정을 수년간 준비해 온 서울시 금천구의 경우 '주민 참여형' 제정 과정을 통해, 쇄도한 반대 민원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천구민과 의회 의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올해 반동성애 진영의 민원 폭탄에 시달렸다는 서울 A구청 관계자는 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동성애 조장을 막으려고 반대한다는데, 그럼 오히려 조례가 제정된 이후에 더 극렬히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조례가 제정된 후에는 조용하고 찾아오지도 않는다. 만일 조례를 폐지하라고 계속 시위하고 민원을 넣는다면 그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고 씁쓸해했다.

윤대기 인천시인권위원장도 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인천에서는 올해 부평구와 동구도 인권조례를 제정해서 반갑다. 만들기 전까지는 극심한 반대에 시달리지만, 만들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하다. 이제는 '인권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인권조례 하면 '성소수자 확산 조장'이라는 오해와 편견이 만연해 있다. 인권조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조례가 인권 증진이나 의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는 차원에서라도 인권조례는 꼭 필요하다"며 "아직 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다른 기초 단체들에서도 제정 움직임을 가속화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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