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명성교회 11교구 59구역 교인이라고 밝힌 이정범 씨가 쓴 "누구 마음대로 '세습'인가"에 대한 이호열 목사의 반론입니다. - 편집자 주 

명성교회 교인이 썼다는 "누구 마음대로 '세습'인가"라는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몇 자 적고자 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전형적인 확증편향(자기주장을 펼치기 위해 유리한 면만 보고 불리한 것은 외면하는 경향)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타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교회 일에 일일이 관심을 기울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또 한 교회가 세습하려고 하는구나.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하며, 다소 체념하면서 사태를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명백한 세습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마냥 묵과할 수 없다. "한 번만 봐 달라"고 읍소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세습이 뭐가 잘못이라고 따지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전체 교회 측면에서 이것은 결코 한 교회 일이나 특정 교단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 문제이기는 하지만, 권력에 밀착하려는 한국교회 경향과 더불어 금권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일탈이 중세 가톨릭의 일탈에 근접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담임목사 2세가 교회를 잘 알고 있다거나, 담임목사 2세가 담임목사가 되면 새로운 리더십을 세울 때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은혜로운 교회 유지를 빙자해 그들만의 세계를 보존하고 권력·금력·지위를 지키고자 하는 일부 교인의 과욕을 부정하고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다. 교인과 담임목사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에 교회 세습이 있다. 세습 시도는 전체 교회의 신뢰에 절대적 손실을 가져올 뿐이다.

독재국가나 재벌 기업에서 2세에게 지위를 물려주는 것도 아니고 교인들 투표로 민주적 절차를 따랐는데 어떻게 세습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항변은 교회론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기업이나 국가가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공동체다. 한 교회가 성장해서 수많은 교인을 거느리고 건물을 짓고 부설 학교와 병원을 소유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개교회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고는 비신학적이며 반교회적이다.

독재자나 기업가가 투표 형식으로 (외형적으로) 이사회라는 민주적 절차로 권좌를 아들에게 넘겨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세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어느 국회의원 지역구에 이전 국회의원 아들이 도전해서 당선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회의원 지역구에는 선출한 국회의원뿐 아니라 많은 정당 유력 인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지속적 정책 대결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교회는 다르다. 담임목사 중심으로 결속돼 있다.

이미 교인 대다수는 담임목사 목회 철학과 지도력에 동화 내지 세뇌돼 있거나, 개교회주의적 사고에 천착돼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타당한 신학, 교회론에 기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리더십 교체가 교권의 동맥경화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몇몇 교단은 교회 법으로 세습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반대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전체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는 에큐메니컬 정신과 더불어, 전 우주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나라를 지향한다. 개인주의는 공동체 전체에서 자기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비전과 성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정신을 깨뜨린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까지 부정한다.

필자는, 같은 맥락에서 교회의 반대 개념을 이단보다 오히려 개교회주의로 본다. 이단은 바깥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해 가지만, 교회 안에 있는 개교회주의는 공동체성 자체를 파괴한다. 개교회주의에 뿌리박고 있는 세습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대형 교회는 막대한 예산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교단 및 개교회 선교지와 교계에 위력을 떨치고 있다. 담임목사는 그런 영향력을 일거에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할 것이며, 이 같은 영향력 아래에서는 교단 정치나 선교 차원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교단 정치권력의 속성은 세상 권력의 속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인 물이 썩듯이 거대 카르텔이 형성되고 여러 형태로 이익과 대가를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결탁하는 경향이 있다.

선교라는 미명 아래 교회 재정이 금권을 만들어 내고, 금권의 가장 높은 자리에 대형 교회 목회자가 있다. 그들이 비신학적 설교를 하거나, 비신학적 행태를 보여도 묵과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교회를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다. 벌써부터 공무원은 강제 순환 방식을 채용해, 오래전부터 일정 기간 이상 하나의 보직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등 기준을 두는 이유가 있다.

신학자 알렌 크라이더는, 선교 수행 기관은 '교회 공동체 자체'라고 말한 바 있다. 세습 문제는 이미 교회 안팎에서 교회가 타파해야 할 최우선적 과제로 인식해 비난하고 있으며, 교회 공동체성과 일치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공감하고 있다. 부목사를 '바지 사장'처럼 앉힌 다음에 진행하는 징검다리 세습, 교회 재정을 아들에게 떼 주어 개척 아닌 개척을 하는 변칙 세습 모두 세습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헌금을 우리가 쓰고, 우리 교회 일을 우리 뜻대로 하려는데 왜 문제인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를 기업의 범주로 타락하게 하는 언행이다. 대형 교회의 잘못은 대형 교회 자신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형 교회는 이미 확보한 수많은 교인과 조직·네트워크·시설·프로그램을 통해 목회를 지속하는 데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이같이 복음과 별 관계없는 외적 장치를 선호하는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대형 교회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추락한 이미지와 세속주의 때문에 교인 한 명을 전도하기에도 버거운 소형 교회 및 개척교회는 부정적 물결의 파고를 쓰나미처럼 느낄 것이다. 대형 교회나 목회자가 저지르는 폐해를 작은 교회가 뒤집어쓰는 격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지금껏 성장한 교회가, 이제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세상적 가치를 따르고 많은 교회가 우려하고 반대하더라도 자기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는 일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신들이 전한 복음을 짓밟는 행위에 불과하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세습을 포기하는 것으로 얻는 전체 교회의 이익이 담임목사 2세 청빙을 포기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개교회의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호열 / 목사, UMCCC 대표, 전 국방부 군종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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