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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은 타락의 극치이자 비극"
[종교개혁 500주년, 원로에게 듣다] 수송교회 홍성현 은퇴목사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7.11.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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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현 은퇴목사는 이력이 화려(?)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소속으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교회들을 두루 거쳤습니다. 그러나 평균 시무 기간이 2~3년밖에 안 됩니다. 늘 설교가 문제였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고, "민족의 화해"가 소원이라고 외쳤습니다. 가려는 곳 또는 가는 곳마다 장로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설교했다면 어느 교회의 원로목사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홍 목사가 직책에 연연하는 건 아닙니다. 설교를 부드럽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누구 못지않게 '양심'에 따라 목회를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홍 목사를 만났습니다. 현역 시절 목회자의 청빈 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서 온 그에게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인터뷰는 10월 31일 서울 구의동, 기독교인문예술아카데미 '사람ING' 사무실에서 진행했습니다. -기자 주

홍성현 목사는 2006년 수송교회에서 은퇴했다. 설교 문제로 38년간 여러 교회를 떠돌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홍성현 목사는 1936년 태어났다. 그 시대를 산 사람 누구나 그렇듯이, 격동의 역사를 살았다. 해방 이후 공산당의 핍박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강제로 월남했다. 한국전쟁 당시 폐렴에 걸려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다행히 '하늘의 음성'을 듣고 목숨을 부지했다. 홍 목사는 평생 목회자로 살겠다고 서원했다.

목사가 된 그는 거침이 없었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청년들과 함께 사회문제를 공부하고, 담임목사가 되어서는 군사정권을 비판했다. 젊은 사람들은 홍 목사의 설교에 열광했다. 반면 장로들은 설교를 불편해했다.

군사독재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니, '빨갱이', '좌파' 수식어가 붙었다. 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 홍 목사는 양심에 따라 목회를 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홍 목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지만,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심을 강조했다. 목회자는 양심으로 목회를 해야 하며, 타협하거나 물러나면 타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법과 질서도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다. 공동체가 협의해 만든 법을 어기는 행위를 '타락'으로 규정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교단 헌법에 어긋나는 명성교회 세습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홍 목사는 "교단 헌법을 어겨 가며 세습하는 건 타락의 극치이자 비극"이라고 했다.

홍성현 목사는 서울대 철학과,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새문안교회, 인천제일교회, 무학교회, 수송교회 등에서 시무했다. 현재 갈릴리신학대학원 한국원장, 사람ING 고문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종교 비판을 넘어서서>·<중국 교회의 전기와 새로운 중국의 신학>(한울) 등이 있다.

한국교회, '돈과 권력'부터 버려야
명성교회 세습, 명명백백한 타락
"후손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돈이다. 500년 전 가톨릭 신부들은 큰 죄를 지어도, 돈만 내면 용서받는다고 가르쳤다. 돈 때문에 부패했다. 지금의 한국교회도 똑같다. 다른 것 회개할 것 없다. 돈, 물질을 좇아온 것을 반성해야 한다. 대형 교회 목사나 자녀들이 돈 문제로 얽히는 것 봐라.

목회자는 돈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없는 자들 찾아가 심방하고, 불행한 사람 돌봐 줘야 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시골에서 '마을 운동'을 하거나, '작은 교회 운동'하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리 봐도 서울의 대형 교회가 문제다. 김삼환 목사 문제도 그렇고.

- 명성교회가 세습을 강행하고 있는데.

교단 헌법에 있는 '세습금지법'을 지켜야 한다. 원칙을 깨는 건 타락의 '극치'를 보이는 것이다. 총회 헌법을 어기고 세습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서울동남)노회도 그렇고, 시찰회도 법을 어겼다. 이건 명명백백한 타락의 모습이다. (세습은) 어쩔 수 없으니 봐주자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것도 타락의 한 단면이다. "왜 법을 어기느냐"고 야단쳐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역대 총회장들이 종종 명성교회를 찾아 예배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김삼환 목사에게 한마디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교단이 왜 세습금지법을 만들었나.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 문제가 생기니까, 이것을 막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아무도 안 가려는 교회, 다 쓰러져 가는 교회에서 세습한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결국 대형 교회가 문제인 것이다. 명성교회 세습은 타락한 한국교회를 그대로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세대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평가할 것이다. 후손들이 보면 창피해할 거다. 부끄럽지도 않나 싶다. 이건 비극이다.

- 한국교회가 2007년에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을 기념할 때, 교단 내 뜻을 함께하는 목회자들과 목사의 청빈을 강조하는 백서를 발간했다. 세금도 당당히 내고, 검소하게 살고, 교회 돈을 목사 개인 용도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는데.

종교인 납세는 진즉 시행했어야 했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인데 방해하는 사람이 있더라. 이해가 안 된다. 세금을 내면 나라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고 도움이 될 것 아닌가. 빨리 시행해야 한다.

보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정부가 '세무사찰'을 한다고 우려한다. 그런 일도 없겠지만, 설령 사찰을 해도 정직하게 회계해 놓으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필요하다면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 법에 어긋나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반대하는 건 '구린내' 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인 과세는 적극 찬성한다.

법을 어겨 가며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한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2007년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약한 자, 없는 자와 함께하셨는데, 예수를 따르는 목사들은 약자의 편에 서지 않고 늘 주류가 되려고 발버둥 친다. 어느 시대나 양심적인 사람들은 소수였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났는데, 당시보다 나아졌다고 보는가.

글쎄, 당시나 지금이나 약자의 편에 서는 목사는 적어 보인다. 양심에 따라 목회하는 목회자가 늘었다면, 한국교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소수나 약자와 함께하면 좋은데, 되려 갑질하는 목회자들이 는 것 같다. 양떼를 위해 목회해야 하는데,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목회자들이 많아 보이는데, 아쉽다.

공산당 핍박 피해 '월남'
분단, 민족문제로 접근해야
"민중·인민 중심의 사회주의 이해해야"

-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공산당의 핍박, 한국전쟁 등을 경험했는데.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공산당의 핍박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 당시 외삼촌이 부자였는데, 공산당에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서울 아현동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 와중에 폐렴에 걸려서 피 토하며 죽을 뻔 했는데, '깨끗하고, 정직하고, 거룩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았다. 그때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했다. 서울대 철학과와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목회자가 됐다.

-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나 반감이 클 법도 할 텐데.

외삼촌이 공산당 총에 맞아 사형당한 것만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가족 입장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다. 나라고 해서 반감이 없겠는가. 그러나 민족의 아픔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족이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다. 남북은 화해는커녕 어떻게 해서라도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싸우고 있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대결하려 하고. 만일 핵이 터지거나, 남북이 또다시 싸우면 다 죽는다. 다른 길은 없다. 화해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화해하자고 하면 좌파, 빨갱이로 몰아간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민족, 한 가족, 피붙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저쪽의 장점도 이야기해 주며 대화해 나가야 한다.

- 저쪽의 장점이라는 게 뭔가.

(사회주의는) 인민들을 위한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 인민 전체를 머릿속에 먼저 떠올린다. 가진 자들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정책을 추구한다. 대중 즉 인민을 위한 게 사회주의라면, 예수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속에 포함돼 가진 자 또는 재벌 중심으로 모든 게 엮여 있다. 이런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이야기조차 못하게 한다.

-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 않나. 북한은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인민은 어렵게 살아가지 않나.

그건 문제다. 사회주의 정신을 이탈한 거다. 3대 세습은 비판해야지, 옳다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의 북한의 현실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민중 중심의 사회주의를 이해하자는 거다. 무한 경쟁, 승자 독식의 남한 자본주의는 과연 괜찮나. 어느 한쪽도 완벽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양자가 대화를 하며 약점을 보강해 나가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서로 으르렁거릴 건가. 대화가 없으면 결국 분단도 계속될 것이고 민족의 개념마저 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루라도 빨리 남북이 '진실과화해위원회'를 만들어 무엇을 잘못했는지, 현실을 분석하고 개개인의 아픔을 헤아려 줬으면 한다. 위로할 사람은 위로해 주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적절한 보상도 해 줘야 한다. 천천히 하나씩 풀어 가면 풀릴 것으로 믿는다.

- 이승만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다가, 4·19혁명을 계기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대학생일 때 4·19혁명이 일어났는데, 정부가 총칼로 제압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많이 실망했다. 이승만 정부는 아쉬운 점이 많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당을 피해 월남한 보수 기독교인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북한과의 대화가 안 됐고, 대결 국면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북한을 이해할 줄 아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섰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 담임목사로 지낼 동안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설교를 많이 했는데.

전두환 정권 시절 특히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군대는 물러나고, 민주화해야 하고, 민정을 이양하고, 민족과의 대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설교 시간마다 이게 내 소원이라고 말했다.(웃음) 대사회적으로 발언을 세게 해서 그런지 몰라도 청년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한 달에 200~300명씩 교회에 등록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남산'에 끌려갔다. 새파랗게 젊은 정보부 요원들이 "왜 정부에 반대하느냐", "나도 서울대 나왔는데 도와 달라"고 회유하더라. 나는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다 싶어 무섭기도 했는데,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났다.

교회 사임과 부임이 반복됐다. 한 신학대 부교수로 청빙돼 강의를 맡은 적도 있다. 그런데 몇 년 안 돼 직을 박탈당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에 대해서 강연하니까, 누군가가 문교부에 고발한 모양이더라. 나를 '좌파 세력'으로 본 것이다.

- 이데올로기에 기댄 통치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당사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했는데.

나는 좌파가 아니다.(웃음) 평화를 위해, 민족을 위해 하나가 되자는 건데 그걸 처단하고 감옥에 보내는 게 말이 되는가. 절대로 좌파가 아니다. 양쪽을 하나 되게 만들려는 '화해 그룹'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고, 남한을 불리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서로를 위해 하나로 뭉치자는 건데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바꿔야 한다. 블랙리스트도 '극단론'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홍 목사는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했다. 남북이 대결 구도가 아닌 대화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한국교회와 사회를 염려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지난 목회 여정을 돌아봤을 때 후회되거나 아쉬움이 있다면.

한 교회에 오래 있어 본 적이 없는 게 가장 아쉽다. 보통 2~3년 주기로 교회를 옮겼다. 은퇴한 수송교회에서 8년간 목회했는데, 이게 가장 길었다. 만약 내 설교가 부드러웠다면 오래 있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대를 살다 보니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교인 중에 장로들, 특히 사회 고위층들이 내 설교를 적극 반대했다. 나 때문에 출셋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설교 문제로 담임목사 청빙을 받지 못하고, 아무 조건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할 때도 있었다. 한창 청년들이 몰려들 때였는데, 도망쳐야만 했다. 당시 나를 붙잡아 준 교인들에게 참 미안하다.

- 후배 목회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여러 교회를 떠돌아다녔는데, 한 교회에 오래 출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설교가 중요한데, 교인과 대중의 수준을 고려했으면 한다. '양떼들에게 설익은 밥을 먹이지 않았나' 후회가 될 때도 있다. (교인이) 체하지 않게 설교했어야 하는데, 너무 세게 감당 못할 이야기를 해서 쇼크를 주지 않았나 싶다. 교인에게 못 먹을 밥을 주면 안 된다. 알맞은 말씀을 줘야 한다.

홍 목사는 설교를 부드럽게 하지 않고, 강하게 직설적으로 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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