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55

신애원 사건을 놓고 언론은 희대의 권력형 종교 범죄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권력형 종교 범죄, 이 말은 어떤 언론도 직접 사용해 본 적 없는 생소한 표현이었다. 

율주시 지역구에 관록 있는 국회의원이자 차기 대선주자로도 이름이 오르내리던 김인철의 주도적 개입이란 점에서 언론은 ‘권력’이란 단어를 첫 단어로 내세웠다. 더구나 김 의원은 원전 마피아라고 명명되는 한수원의 주요 고위직 공무원들과의 유착 관계로도 오랫동안 요주의 인물로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언론사와 방송은 오히려 이번 사건이 가져오는 파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해 했다. 

당혹감의 절정은 그 모호한 헤드라인 문구에서 이미 그 의중을 나타냈다. ‘권력형 종교 범죄’라는 표현 속에는 안타깝게도 위계관계를 악용한 성범죄란 의미가 퇴색되어 있었다. 부모들조차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갈 곳 없는 아이들, 심지어 정신지체란 질환까지 앓고 있는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를 촬영해 이른바 매춘 파티에 참여한 율주시 지역 유지, 교회 장로들, 부목사, 이를 보고도 묵인하고 오히려 비호하던 신애원 원장과 교사들 모두 성범죄와 더불어 아동 성학대란 끔찍한 죄악의 공범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와 같은 진실을 들춰내는 데에는 인색했던 것이다. 

김인철에게 완전한 패배자로 분하고 스며들어 매춘파티의 성 착취 현장을 휴대폰 카메라로 고스란히 담아낸 민규는 추악한 악의 고리를 고발한 양심적 내부 고발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규를 전혀 양심적 인물로 보지 않았다. 언론이 주목하는 정민규는 뉴욕한인교회 시절, 부적절한 스캔들로 인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부도덕한 인물이란 오명뿐이었으며, 그 부도덕한 흠결을 갖고도 어떻게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는지에 대한 의혹 제기가 전부였다. 어떤 언론도 민규가 터뜨린 양심선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출혈은 모두에게 심했다. 피해자, 가해자 가리지 않고 내려지는 언론의 따가운 시선과 내내 침묵하던 검찰의 설레발은 신애원 교사로 일하며 오랫동안 파고든 종교 범죄의 부당함을 호소한 김정은 선생까지 다른 선생들과 마찬가지로 불구속기소 하기에 이르렀다. 신애원은 바로 폐쇄 명령을 앞두게 되었으며, 율주시에서 활동하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가 아동 성범죄의 직, 간접적 공범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 지역 전체가 술렁거렸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한 가지만 물읍시다. 

30대 초반의 젊은 검사가 타이를 풀고 셔츠 윗단추를 끌렀다. 메모를 하기 위해 갖고 온 노트북은 아예 덮은 지 오래였다. 민규는 비교적 초연한 표정으로 검사를 바라봤다. 문득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기소해야 하는 초임 검사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검사가 이어 말했다. 

- 왜 하필 지금 시기에 일을 터뜨린 겁니까.

그 질문은 이미 경찰 수사 초기부터, 아니 언론사에 제보할 때부터 숱하게 받아 온 질문이었다. 민규가 옅은 한숨을 내쉰 뒤 답했다. 

- 왜 하필 선거철을 앞두고 이러느냐, 그 말씀이십니까?

민규의 물음 안엔 김인철 의원의 견제 세력과의 모종의 결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도를 짚는 데 집중되었다. 민규가 되묻고 그 자신이 바로 답했다. 

- 경찰 수사 때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일 없습니다.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절 담임목사로 추천한 사람은 김인철 장로가 아니에요.

- 내가 묻는 질문은 그런 상투적인 게 아니에요.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던 젊은 검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검사가 펼쳐 보인 파일은 지금까지의 조서 파일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민규도 약간 긴장된 눈빛으로 검사를 바라봤다.

- 유재환 목사 … 알죠? 듣기론 율주제일교회 개척 목사라 하던데.

-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교회에서 성장했으니까요.

- 유재환 목사가 복귀를 준비하던 사실은 알고 있었을 테고…

검사가 말을 흐렸다. 자신의 말을 듣던 민규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유재환이 복귀를 준비한다는 정보는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던 사실이었기에 그랬다. 검사가 말을 이었다. 

- 몰랐던 겁니까? 정민규 씨. 당신을 추천한 한영호 장로가 유재환 목사 복귀를 두고 몇 년 동안 물밑 작업을 벌여 왔던 사실 말이에요.

잠시 숨을 고른 민규가 바로 답했다. 

-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상관없다는 민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사가 한 권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의 이단>이란 제목의 월간지였다. 

- 이번 달 <오늘의 이단>이란 잡지예요. 여기 편집장이 양심선언한 내용이 특집으로 실렸어요.

표제가 검사의 말을 뒷받침했다. '이단의 멍에 씌운 거짓 기사를 회개한다'. 검사가 말을 이었다.

- 이번에 양심선언한 편집장이 당시 기자 시절 율주제일교회 창립자인 유재환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죠.

- …

- 한마디로 물밑 작업이 치밀해요. 이건 마치 정민규 씨. 당신이 행동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일을 벌인 거로밖엔 보이지 않는다고요.

- 상관없습니다.

검사가 잠시 민규를 바라봤다. 젊은 검사의 눈빛엔 수많은 계산과 궁리가 오갔다. 하지만 민규는 그와 다르게 차갑고 낯설게 가라앉았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하던 검사가 말없이 파일을 덮었다. 유재환의 복귀 시나리오와 관련된 파일로 보였다. 검사는 아주 잠깐 감상에 빠져 있던 자신의 마음 상태를 돌이키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서는 수순인 듯 화제를 돌려 다른 말을 했다.

- 자. 정민규 씨. 아니, 정민규 목사님.

- 부르던 대로 부르세요.

- 그럴 수야 있나요. 한 번 목사님은 영원히 목사님이라면서요? …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용의자가 있습니다. 원래 내부 제보자는 이런 식으로 다루지 않지만 대질심문이 불가피해서요.

그렇게 말한 젊은 검사가 핵심 용의자 김인철을 호출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