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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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권사가 국을 내왔다. 시금치가 한가득 담긴 시금치 국이었다. 민규의 어머니 양 권사는 그의 입맛이 오래 전에 바뀐 줄 몰랐던 걸까. 이혼하기 전 아내가 시금치 알레르기가 있었기에 민규가 즐겨 먹던 시금치 국을 좀처럼 끓이지 않았다. 민규의 어머니 양 권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들이 좋아하는, 하지만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시금치국을 내온 걸까. 양 권사도, 민규도 시금치 국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금치 국을 아들의 자리에 내려놓은 뒤 순간적으로 양 권사의 시선이 오래된 집 단독주택의 현관 여닫이문을 향했다. 더 정확히는 반쯤 열린 여닫이문 틈에 놓여 있는 한 개의 커다란 여행 가방을 바라본 것이다.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민규의 시선도 여행 가방으로 향했다. 그때, 문득 민규는 율주시에 다시 돌아온 시간을 헤아려 봤다. 3개월, 정확히 3개월이 지났다. 아직은 한기 가득한 늦겨울에 율주시로 들어온 민규의 차림새는 어느새 재킷을 벗고 소매 단추가 헐렁해진 와이셔츠 차림으로 번해 있었다.

시금치 국을 두어 번 떠 마신 민규가 말을 이었다. 담담하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 일과의 한 부분을 무심하게 내어놓는 듯한 말투로 비교적 빠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 어머니 …

- 응.

- 저 … 교회 그만둬요.

- …

- 그만두기로 했어요.

숟가락을 내려놓은 민규가 양 권사를 바라봤다. 어머니, 오랫동안 율주제일교회에서 신앙의 여정을 보낸 어머니의 눈빛은 민규의 착잡한 속내와 다르게 한없이 투명했다. 그 투명함 앞에서 민규는 잠시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래도 민규는 말을 이어야 했다. 자식을 목사로 만들기 위해 새벽마다 무릎으로 기도하던 어머니 앞에서 말을 해야만 했다.

- 그리고 어머니. 저 이혼했어요.

두 가지 말이 천형의 선고처럼 내려앉았다. 민규는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서 최소한의 자신감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 경찰서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 그건 … 또 무슨 말이냐.

- 죄를 지었거든요.

- 죄?

- 어머니가 그러셨죠. 죄를 지으면 예수님은 영혼을 용서해 주시지만 사람에게 용서받아야 할 육체의 책임은 남았다고요.

양 권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관절염을 앓는 어머니가 몸을 일으킬 때마다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 흔들림 앞에서 민규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했다. 주방으로 걸어간 양 권사가 물 한 컵 떠 갖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한 숟가락 정도의 밥을 남긴 민규의 밥그릇 안에 반쯤 물을 담았다. 민규가 말을 이었다.

-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으려 해요.

- 밥 마저 먹고 가.

- 어머니.

- …

- 죄송해요.

- 정 목사.

- 예.

- 정 목사는 앞으로도 정 목사야.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밥 다 먹어. 그리고 가.

민규가 다시 숟가락을 손에 집었다. 그 사이 양 권사의 집 앞에는 후배 형사 김상현과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한 마지막 미개발 지역 단독주택 집에 살고 있는 양 권사의 집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었다. 열린 문 앞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낯선 풍경 앞에서 민규는 어머니를 걱정했다. 하지만 양 권사는 강한 어머니였다. 이제 실패와 저주 외엔 남은 게 없는 아들을 여전히 그녀는 목사로 불렀다. 민규는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나는 과연 목사인가?'

밥 한 그릇을 다 비운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 권사는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방 한구석엔 율주제일교회 로고가 새겨진 밥상이 있었고, 그 위엔 성경이 있었다. 민규의 시선에서 등을 보이고 앉은 양 권사가 기도를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속삭이듯 하지만 간절한 기도였다.

그 기도를 뒤로 한 채 민규가 걸어 나왔다. 마지막 말 역시 일상의 대화, 그 연장이었다.

- 가방은 잠시 맡겨 둬요. 다녀올게요. 어머니.

14년 전에 미국행을 결심할 때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책은 잠시 맡겨둘게요. 다녀올게요, 어머니'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문 밖으로 나오자 백차가 민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상현 경정은 민규의 손에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대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 형은 임의동행으로 시작할 거야. 그런데 사안이 좀 커져서 구속 수사로 전환될 것 같아. 이해하지?

- 당연히 각오하지. 잘 부탁한다.

- 내부 고발이라 해도 이런 식의 행위는 범죄야. 형.

- …

-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난 이해할 수 없어.

-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김 경정이 잠시 뜸을 들인 사이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율주제일교회 핵심 관계자들이 신애원 아이들을 오랫동안 성학대해 온 것으로 언론에 고발하셨는데, 고발하신 의도가 뭡니까?'

'김인철 의원 이하 율주시 지역 유지들 대부분이 연루된 동영상도 제보하셨는데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정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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