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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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동안, 아들도 아버지도 잠시 동안, 죽음보다 더한 깊은 절망을 실감한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별다른 희생 제물을 준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을,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동안 이를 견딜 수 없는, 하지만 수행해야만 하는 필연에 대한 긍정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절망은 초월을 향한 한 믿음을 향해 극적으로 수렴되고 또 수렴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절망을 넘어서서, 이교도와 벌이던 믿음의 경쟁, 비교 종교의 사명마저도 넘어서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넉넉히 허무는 초월의 한 극점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고, 또 내딛는 것이다.

- 날 죽여 달라고 했거든.

- 누가? 머리카락 절반이 불에 그슬린 그 아이가?

남궁숙애와 다른 아이들이 퇴장한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 집무실엔 민규와 윤서주, 둘만 남았다. 늦은 오후, 새빨간 석양이 창밖을 한가득 메워 버린 집무실에 홀로 남은 윤서주는 입가 주위에 시커먼 칠을 한 듯 짜장 양념의 흔적을 잔뜩 묻힌 채로 민규를 바라봤다. 윤서주의 눈빛은 상대를 할퀴듯 노려보는, 그 스스로도 온몸에 생채기가 깊게 패인 짐승의 그것을 닮았다. 적어도 민규의 눈에 비친 윤서주는 그랬다.

민규의 질문에 윤서주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는 탕수육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삼키고는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 아빠도 그랬어.

- 아빠? 아빠라니.

- 아빠. 아빠 몰라? 아빠도 죽여 달라고 했어.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윤서주의 성난 두 눈동자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혼란스런 한 장면이 떠올라 견디기 어려웠다. 소녀의 눈빛 속엔 진의를 헤아릴 수 없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모호함이 들끓듯 끓어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 지금 너. 횡설수설하는 거 알아?

- 횡설수설이 뭔데?

- 네 끔찍한 현실을 망상과 거짓말로 정당화하고 있잖아.

못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윤서주는 민규의 말을 듣고는 그 눈빛에 품었던 노기의 변화를 나타냈다. 붉게 달아오르는 낯빛의 변색이 그 증거였다. 그에 아랑곳 않고 민규는 말을 이었다.

- 네가 말하는 말들, 이젠 믿을 수가 없어. 아니.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할 만큼의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게 낫겠지.

독백과 닮은 민규의 말을 윤서주가 알아들은 걸까. 윤서주의 입에서 새어나온 반박의 말이 날카롭고 매섭게 민규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 우릴 이렇게 아프게 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해?

-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거라고.

- 지랄하지 마. 아저씬 지금 도망치고 싶은 거야.

- 뭐?

- 아저씬 우리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애들과 엮이고 싶지 않은 거야. 내 말 틀렸어?

말을 잇는 윤서주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고, 질린 만큼 격렬히 떨리고 있었다. 민규는 소녀의 비수와 같이 파고드는 말에 자신의 이성이 서서히 마비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 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어. 충분히. 아이들을 구원할 나름의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하지만 넌 아냐.

- 뭐? 왜? 왜 난 아냐? 왜 아니냐고?

- 넌 살인자야. 넌 결코 네 몸속에 스며든 더러운 악마의 피를 제어하지 못해. 정신 분열이란 울타리 속에 숨어 사람을 죽이고, 위협하고, 언제든 불에 태워 죽일 충만감으로 가득 차 있어. 그런 너에게 자비, 용서, 아니 심판. 그런 건 없어!

윤서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실을 철저히 가렸다고 확신케 한 초점 잃은 눈동자 사이로 서글픈 흐느낌의 낙인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럴수록 민규는 흔들리지 않고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로 마음속 작심을 견고히 했다. 윤서주의 진심 따위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민규는 이 소녀가 열여섯에 불과한 여리고 어린 친구란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의 마음속 울분과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 냈다.

- 넌 똑똑히 알아야 돼! 네가 신애원 아이들의 구원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너희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잖아.

- 도와준다고? 아저씨가?

- 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뭘 어떻게!

민규의 절규에 대한 윤서주의 반응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끔찍한 재앙에 비견됨 직했다. 윤서주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압력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던 민규의 눈앞에서 자신의 웃옷을 찢기 시작했다.

- 뭐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윤서주의 돌발 행동에 민규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민규의 입은 굳게 다물어지고 말았다. 웃옷이 찢겨지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윤서주의 상체가 그대로 속살을 드러냈다. 이후 소녀의 몸이라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상흔이 상반신 전체를 끔찍하게 수놓았다. 자해라고는 볼 수 없는, 누군가의 잔인한 무력이 가해진 흔적일 수밖에 없는 상흔이었다. 그 상처 앞에서 민규는 할 말을 잃었다. 불가항력적 침묵에 사로잡힌 민규를 내려다보던 윤서주의 모습은 붉은 석양을 역광으로 받아 끓어오르는 용광로를 방불케 했다.

- 날 죽여 달라고 했어.

- …

- 하지만 목사님 …

목사. 그 말이 윤서주의 입에서 나올 줄 민규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 놀라움에 고개 들어 윤서주를 올려다 본 민규는 순간 경악했다. 윤서주의 두 눈엔 붉게 달아오른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소녀의 목소리는 맹수 앞에서 구원을 간청하는 노예의 그것처럼 끝을 알 수 없이 서글프고 처연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목사님 … 날 구원해 줘요.

- 뭐?

- 날 구원해 줘요. … 구원해 줄 수 있잖아요.

- …

- 구원해 줄 수 … 있잖아요. 예?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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