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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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2층에 위치한 한영호 장로의 한의원. 평일 낮에도 굳게 문이 잠겨 있던 그곳을 한 남자가 박차고 나왔다. 단정하고 말쑥한 옷차림이었지만 어딘가 모를 불안의 기운을 한 가득 품에 안은 남자. 민규였다. 그의 모습은 정확히 그 상태였다.

민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의원 안에는 민규를 부르는 한 남자의 낮게 깔리는, 하지만 그처럼 절박할 수 없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영호 장로의 절규에 가까운 부름이었다.

한영호는 민규가 마지막 희망이란 말을 강조했다. 이제 더 이상 유재환 목사가 버텨 낼 힘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규는 그런 식의 절규의 말들이 자신에게는 독이 된다는 걸 애써 외면하는 그, 한영호가 야속하기만 했다. 민규는 자신에게 형벌처럼 주어지게 될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 용기가 없었다. 그 성배는 아무 대가도, 영광도 없을 십자가의 길이었다. 영혼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학은 민규에게 의식 세계의 달콤함을 허락했다. 신학의 세계는 정적인 연못과 같아 차분히 사유하면서 그 세계의 융숭함을 한 걸음씩 경험하면서 기록으로 남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독이 든 성배와 같이 현실을 돌파하고자 하는 실천적 요구를 민규는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없는 이에게 용기를 강요하게 될 경우 결과는 늘 최악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민규는 지금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영호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끝끝내 한의원 문을 박차고 나오는 지금 말이다.

문을 박차고 나와 복도에 나서자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벌 양복 차림의 무표정한 남자 고동식. 민규가 율주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한결같은 일관성으로 무장한 고동식이 민규를 차갑게 지켜보고 있었다.

고동식이 한의원을 찾은 민규에게 말을 건네려 할 때였다. 민규가 그의 말을 가로채고 먼저 말했다.

- 할 말이 있어요.

자신을 미행한 사실에 대해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꺼낸 민규를 보자 고동식이 도리어 몸을 움츠렸다.

- 말씀하시죠.

고동식이 고압적인 말투로 화답했지만 민규는 그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 김인철 장로님을 뵙고 싶습니다.

- 의원님이 그렇게 … 목사님이 만나고 싶으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느낌이 달라졌다. 피라미드 계급 구조에 익숙한 이들이 보일 수 있는 전형적인 기질이었다. 김인철의 서슬 퍼런 공격 성향, 그 타깃이 정민규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걸 파악한 고동식은 어느새 그 자신이 김인철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규는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고동식을 향해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신애원에 관한 일이라고 전해 주세요.

- 예?

- 이 말도 전해 주세요. 내내 거북한 불씨를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 …

- 지금요. 지금 전해 주세요. 지금 전하지 않으면 율주제일교회 10대 담임목사가 무슨 해괴한 짓을 벌일지 모른다고 전해주세요.

'해괴한 짓'이란 말을 들은 고동식의 시선이 흔들렸다. 흔들림은 언제나 균열과 여지의 틈새를 만드는 법이다. 민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 아시겠지만 저.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요. 잃을 게 없는 인간은 늘 그렇듯 무모해지죠. 이건 … 가난한 자들, 모든 걸 잃은 자들이 미치광이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여기서도 일자리를 잃으면 지금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저주의 칼춤을 추는 데 사용할 거라고 전해 주세요.

-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아니까요.

- …

- 지금 전해 주세요. 어서요.

고동식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사이 한의원의 문이 열렸다. 한영호의 노기 띤 얼굴이 나타났다. 그때, 민규는 뒤를 돌아봤다. 한영호와 김정은, 그 뒤로 유재환 목사를 따르는 기도 모임 멤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절망과 침묵을 민규는 피하지 않고 바라봤다. 그런 민규를 향해 한영호가 입을 열었다.

-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정민규 목사님. 당신이 정말 목사라면 신의 뜻을 거역하지 말아 주세요. 이 정의로의 부름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이번에는 민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저 악마와 손을 잡지 말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말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갖고 모리아산으로 함께 올라가 주세요.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요. 당신의 신학이 그렇게 부르짖고 있던 것처럼요.

그때였다. 고동식이 김인철의 이름을 불렀다. 김인철과의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민규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고동식과 마지막 결단을 원하는 한영호 일행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순간 극심한 번뇌가 민규의 영혼 깊숙히 파고들었다. 찰나의 순간 민규는 갈등하고 또 갈등했다. 자신의 신학 속에서는 분명 결단했을 것이다. 현실의 모든 번뇌를 박차고 새로운 세상, 개벽의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나섰을 거라고.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논문 속 세상이었다. 민규는 논문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구렁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심연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어느새 통화를 끝낸 고동식이 말했다.

- 목사님 예언이 통했네요.

- 뭐라고 하십니까?

- 의원님이 바로 뵙자고 하십니다.

그 말을 호기 좋게 내뱉은 고동식이 뒤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 1층에 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고동식이 먼저 내려가고 민규는 잠시 멈춰 섰다. 한영호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영혼 자체가 차갑게 굳고 식어 버린 느낌이었다. 민규는 절망을 넘어서서 망부석이 되어 버린 한영호를 향해 비루하지만 절박한 변명의 한마디를 짧게 남겼다.

- 장로님. 그건 신학일 뿐입니다.

- 정민규 목사님.

- 신학과 삶은 달라요. 다릅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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