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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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주일 새벽, 민규는 율주제일교회로 가지 않았다. 김인철과 함께 끔찍한 어둠의 의식을 벌인 이후, 민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한 주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돌아오는 주일 아침, 그는 차를 몰고 율주제일교회의 반대편으로 나섰다.

계약직 담임목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리고 향한 곳은 유재환이 있는 기도원이었다. 민규가 기도원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을 때, 유재환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문을 열 때였다. 그때 민규와 눈을 마주한 유재환은 순간 뜻 모를 격정에 사로잡혔다. 두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이 민규의 시야에 전달되었다. 그 떨림엔 격한 감정의 요동침이 담겨 있었다. 민규는 유재환의 눈빛 속에서 환희와 회한, 두 상이한 감정의 충돌을 발견했다. 자신이 이곳을 찾아올 거라곤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체념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유재환이었기에 그러한 감정의 충돌은 더 한층 분명해 보였다.

기도원 내부는 처음 봤을 때보다도 더 초라해 보였다. 창문 틈새로 거친 바람이 몰아쳤고, 바닥은 냉기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유재환은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 애썼다. 오래된 양은 주전자에 담긴 방금 끓인 것 같은 차 한 잔이 민규의 자리 앞에 놓여졌다. 민규는 그 한 잔의 차를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입에는 대지도 않은 채.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만큼 둘 사이의 침묵도 함께 했다. 유재환은 민규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동시에 주일 오전 시간도 속절없이 지나갔다. 오전 11시를 훌쩍 넘어섰지만 민규는 예배 집례를 걱정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민규의 휴대폰에선 부산스런 진동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민규는 진동 소리엔 신경쓰지 않고 유재환 목사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문을 먼저 연 쪽은 유재환이었다.

- 한 장로님이 그러더군요. 목사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고.

- 실패한 것 같습니까?

민규가 되물었다. 되물음의 순간, 민규는 어제 저녁, 누군가에게 건넨 동영상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유재환이 말했다.

- 듣기로는 저희가 준비해 온 증거 자료 일체를 김인철에게 넘겼다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 사실입니다.

- 그렇게만 보면 완벽한 실패로 보이는데 … 목사님.

- …

- 왜 제 눈엔 목사님의 공의가 느껴지죠?

- 공의요?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민규의 탄식과 같은 질문에 유재환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 신의 뜻은 언제나 단순하고 쉽습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중심을 묵묵히 걷는 것, 그것이 공의입니다.

'빛'이란 말을 듣는 순간 민규는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 빛의 중심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합니까.

- 궁극의 악을 몰아내기 위한 취지에서 벌인 죄는 죄가 아닙니다.

- 죄가 … 아니라구요?

유재환이 한 걸음 더 민규에게 다가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숨소리를 느낄 정도로 가깝게 밀착했다. 유재환의 눈빛에선 귀기가 살아 꿈틀거렸다. 민규의 눈에 들어온 유재환의 정념은 분명 그랬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현실을 초월하거나 현실 밖에서 속삭이는 유령 같았다. 그래서일까. 민규는 유재환을 보며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유재환이 말을 이었다.

- 정민규 목사. 당신이 무엇을 행하려는지 알 것 같습니다.

- …

- 난 당신의 결단이 믿음의 절대 실천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주일 오전 11시 30분. 기도원 컨테이너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이윽고 기도원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서는 이들이 민규의 눈에 보였다. 한영호 장로가 보였고, 유재환 목사를 따르는 기도 모임 멤버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초라한 기도원으로 모여드는 이들 중 민규의 눈에 익숙하게 보아 온 교단 총회장으로 알려진 원로목사도 함께였다. 또한 유재환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보도했던 월간지 발행인도 눈에 뜨였다. 하지만 민규의 시선을 잡아 붙드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에 나타난 김정은이었다.

자신이 버린 여자,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추악한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 김정은을 보자마자 민규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서글픔에 사로잡혔다. 오열의 정서도 함께 밀려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표정이 너무나 슬펐고,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그 사이 유재환의 팔이 민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민규는 심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 당신이 범한 죄는 악마를 징벌하기 위한 자기희생임을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다고요? 제 행동을요?

- 그렇게까지 자신을 버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로 저 역시 깨달은 바가 큽니다.

- 무엇을 깨달았다는 겁니까?

- 제가 본 목사님은 제 기대를 초월하는 믿음을 가진 분이었어요.

- 말도 안 됩니다. 전 …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 타락한 목사에 불과합니다.

그 말을 하면서 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까. 민규는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 답은 이미 주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민규를 바라보는 김정은 역시 그를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사이, 유재환의 자기 다짐과 같은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이 민규의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 악마의 씨를 말리기 위해 전 결코 이전처럼 나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민규 목사. 당신의 이 고결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 …

- 이번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 거라 믿습니다.

- …

-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민규의 휴대폰 진동은 정오가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울리고 또 울렸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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