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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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자에 대한 예우는 없었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쏟아 낸 양심선언이었지만 파렴치한 수준을 넘어서 쉽게 입을 다물 수 없는 엽기적 행각에 함께한 불량 목사를 비호해 주는 검찰은 없었다.

형식은 대질심문이었지만 추가로 확인되는 내용은 없었다. 민규 앞에 김인철을 앉혀 놓은 젊은 검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김인철의 서슬 퍼런 기운 탓일까. 조사를 진행하는 내내 김인철에게 극존칭을 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성범죄 혐의에 대한 젊은 검사의 심문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김인철 옆에 앉은 변호사는 이 모든 게 김인철 의원의 명성을 노리고 율주시의 김인철 견제 세력이 벌인 자작극이란 사실과 신애원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판단력 미숙 상태에서 벌인 해프닝임을 주장했다. 변호사의 열띤 변론에 김인철은 시종 침묵으로 일관했다. 굳게 입을 다문 김인철은 팔짱을 낀 채 오직 한 존재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맞은편에 앉은 민규였다. 변호사조차 요청하지 않은, 그래서 철저히 혼자인 상태에 놓인 민규는 자신을 차갑고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김인철을 차마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원했다. 하지만 반투명 책상에 비추인 김인철의 검은 실루엣은 여전한 위세로 민규의 두려움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심문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초조해진 변호사가 꺼낸 마지막 카드는 고령인 김인철의 나이와 여러 지병이 있는 불안정한 심신을 핑계로 꺼낸 불구속 수사 요청이었다. 검사는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한 뒤 김인철을 바라보며 한마디 짧게 말했다.

- 더 하실 말씀 없으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 저기 … 검사 양반.

김인철이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그때, 민규도, 옆에 앉은 변호사도 불안한 눈길로 김인철을 바라봤다. 김인철이 말을 이었다. 여전히 시선은 민규에게서 떼지 않은 채로.

- 정 목사와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 …

검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 곤란합니다. 의원님. 정민규 씨의 정확한 신분은 현재 내부 고발자예요. 지금 이렇게 의원님과 대질심문하는 것도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 1분도 걸리지 않아요.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어서요.

순간, 민규의 숨이 조여 왔다. 검사는 자신의 선택을 민규에게 돌렸다.

- 정민규 씨가 결정하시죠. 김 의원이 할 말이 있다는데 … 거부하셔도 됩니다.

김인철의 말 상대는 검사에서 민규에게로 넘어갔다.

- 별거 없습니다. 목사님. 그냥 뭐랄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소.

본능적이라 해야 할까. 아님, 그 자신도 해명하기 힘든 호기심 때문이라 해야 할까. 김인철의 말을 들은 민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의 동의 의사를 확인한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김인철이 곧바로 변호사에게도 신호를 주었다. 검사의 뒤를 이어 옆에 앉아 있던 변호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이윽고 심문실엔 참을 수 없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침묵이 흘렀다. 처음엔 김인철의 시선을 피하던 민규였지만 20여 초 정도의 침묵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마치 강한 자력에 이끌리듯 시선의 방향이 김인철에게로 향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김인철이 침묵을 깨고 말을 이었다.

- 왜 그랬습니까?

3개월 전, 처음 일식집에서 봤을 때의 김인철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충격을 받은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김인철의 표정과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잠잠하게 흐르는 검은 빛깔의 강물을 닮은 눈빛에선 한 줌의 위악도 찾을 수 없었다. 민규가 자신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김인철이 말을 이었다.

- 날 고발한 이유를 묻는 게 아닙니다.

- 그럼 뭐죠?

- 왜 이런 방식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김인철의 표정이나 말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 순간 민규의 눈에 들어온 김인철은 자신의 철옹성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지켜 내며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들끓는 악마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민규는 김인철의 솔직하고 진지한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힘겹지만, 또렷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 제 논문의 마지막을 읽어 보셨습니까?

- … ?

- 이삭을 제물로 바치길 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를 스스로 드러냅니다. 어둠의 붕괴와 빛의 들어옴이란 극적 변화가 그렇죠.

- 유재환 목사가 빛입니까?

- 적어도 당신과 같은 악마는 아닙니다.

- 그럼 … 악마와 손잡은 당신은 무엇입니까.

- 난 지금, 내 방식의 회개를 진행하는 겁니다.

- 누구에게 말이요?

- 나를 바라봐 주시는 하나님에게요.

말을 이은 민규는 김인철에게 이런 말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강한 회의를 느꼈다. 몸과 영혼을 짓누른 김인철은 악마 중의 악마였다. 하지만 지금 이어지는 악마의 말이 민규의 신념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 당신이 만약 회개해야 한다면 하나님에게 해선 안 되는 거요.

- 무슨 뜻입니까.

- 회개는 우리 안에 숨 쉬고 있는 악마와 함께해야죠.

- 궤변이에요.

- 유재환 목사의 생각은 궤변이 아니구요?

- …

- 정 목사. 당신은 유재환을 몰라. 진짜 선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 …

-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 주지. 당신은 지옥문을 연거야. 한번 열리면 결코 닫을 수 없는 지옥문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김인철이 아니라 민규였다. 검은 강물을 닮은 김인철의 눈빛을 계속 바라보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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