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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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악마는 과도하리만치 위악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순진해 보일 때가 있다. 이때, 악마가 펼쳐 놓은 굿판에 참여하는 당사자에게 실감되는 순진함, 혹은 천진스런 무구함은 끔찍할 정도로 흉측한 공포의 위엄에 압도될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악마가 되기로 작심한 김인철의 순진함 앞에 선 민규의 처지가 정확히 그랬다.

평일 저녁. 일식집 토코모토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율주에서 김인철을 중심으로 방사형처럼 번져 있는 주요 인사들을 접대하는 곳으로 유명한 토코모토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성업 중이던 곳이다. 하지만 민규가 김인철과 함께 들어선 이곳은 금일 휴업이란 간판이 내걸렸다.

문은 닫혀 있지만 내부는 평일 저녁과 다를 바 없었다. VVIP실의 불은 훤히 켜져 있었고, 퇴폐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일본 엔카가 들려왔다. 밖에는 문이 닫혀 있지만 내부는 그대로 영업 중인 이날은 김인철이 특별히 지목한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방과 같았다.

민규는 이때, 문득 자신이 쓴 논문 속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의식의 숙연함, 그 이면에는 이교도의 의식, 이른바 어둠의 의식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렇듯 역사는 성스러움을 향한 추구에 매달리는 거룩함을 향한 집착과 그 너머에 교활하게 꿈틀거리는 어둠의 의식, 그 강렬한 어둠의 찬미도 함께 했던 것이다.

- 정민규 목사님.

김인철의 말투는 시종 정중했다. 악마에게도 의식은 존재하고, 그 의식은 어둠 속에서도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본능을 가졌다는 실감이 현실의 민규에게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김인철의 안내를 받아 토코모토로 들어 온 민규의 눈엔 낯설거나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익숙하게 보아 온 교회 장로들과 율주 지역에선 잔뼈가 굵은 인물들로 민규에게 더없이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민규는 그들이 낯설었다. 그들은 진지한 눈빛과 얼굴로 민규에게 침묵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거웠고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김인철은 민규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스스로 내보이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 난 목사님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하겠군요.

- 무슨 뜻이죠?

- 말 그대로입니다. 정민규 목사. 당신이 내게 어떤 의도로 이 증거자료들을 상납하는지,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말한 김인철이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탁자 위에 민규가 상납한 신애원 관련 자료들을 내던지듯 올려놓았다. 수많은 서류와 파일, 동영상 자료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김인철의 사람들 모두들 그 자료를 경계심 어리게 바라봤다. 얼마 가지 않아 고동식이 그 자료들을 신선로 접시 안에 차곡차곡 욱여넣고는 불을 붙였다. 종이와 자료들이 빠른 속도로 불길에 휩싸였다. 김인철은 자신의 치부들이 불에 태워 없어지는 불꽃을 무심하게 지켜보며 말했다.

- 그렇지만 상관없어요. 난 적들과도 거래를 맺는 데 능숙하니까요.

- 전 장로님에게 적수가 될 수 없어요. 제가 이걸 갖고 온 건 일종의 항복 선언이에요.

- 더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김인철의 차가운 눈빛은 어둠의 의식을 목전에 두고 던지는 어둠의 신앙고백과 같았다. 김인철이 말을 이었다.

- 내게서 목사님이 얻고자 하는 걸 말해 봐요. 그래야 이 거래가 성립될 수 있어요.

거래의 성립. 민규는 자신의 내부에서 치솟는 비릿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꺼내 보여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직면의 순간과 마주할 때마다 망설이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지만 민규는 이 순간 그 본능을 정면으로 거역했다.

- 내가 장로님에게 기대하는 건 단 하나, 자리 보존입니다.

- 자리 보존이라 …

- 전 여기서 직을 잃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부패와 스캔들에 연루된 목사를 받아 줄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 …

- 전 … 제 인생을 말소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을 남길 때, 민규의 목소리 끝이 조심스럽게 떨렸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악마의 사제를 닮은 김인철의 완고함 앞에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흐르는 침묵 이후, 김인철의 차가운 시선이 민규에게서 고동식에게로 옮겨졌다. 김인철의 눈빛 지시를 받은 고동식은 VVIP 방의 정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러자 이내 지옥도가 펼쳐졌다. 신애원의 아이들 열 명 가까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방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신음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두 손과 발은 결박된 채로였다. 그 아이들 중엔 윤서주도 있었다. 소녀 역시 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포악한 어른들의 먹잇감이 되어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김인철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이들 일제히 경악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민규는 마른침을 삼키며 김인철과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 모두 종교적 의식을 앞둔 이들의 살벌한 긴장감을 한 가득 얼굴에 품고 있었다. 민규는 그제야 자신의 논문이 어떻게 현실과 관계 맺는지를 깨달았다. 고통과 불안으로 뒤엉킨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악마의 의식과 참된 야훼를 향한 인간의 진지함, 그 두 갈래 길에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파고든 그 진정성만으로는 어느 것이 야훼를 향한 길인지 식별 불가능함을 체감하게 된다. 그 불가지의 막막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게 되는가. 바로 신의 은총뿐이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아이들의 비명 소리,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잔인해지는 탐식자들의 알몸, 쾌락인지 고통인지 표정의 실체를 분간할 수 없는 김인철의 시종 진지함. 감정을 마멸시키는 괴이한 속도로 무장한 일본 음악. 민규는 이 엄혹한 광란의 불꽃을 향해 스스로 옷을 벗고 걸어 들어갔다. 김인철이 진설해 놓은 악마의 입교식에 참여한 것이다.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윤서주가 보는 앞에서. 더없이 진지하게.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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