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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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이 회자되던 당시, 다시 말해 포로 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염원하던 이들, 그들의 내적 갈망이 현시된 창세기가 집필되던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만의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이교도와의 종교적, 문화적 병립 관계로부터 단 하나의 차별성을 구상해야 했다. 그 구상은 아마도 이교도가 추구하는 종교적 숭배 대상의 전형적 저열함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지경에 대한 담론이거나, 한 다른 이야기이어야 했다. 그 이야기의 절정에 약속의 자녀, 이삭의 희생에 대한 강박, 혹은 결단이 존재한다.

민규는 부러 자신의 논문을 생각하지 않았다. 의도하든 않든 떠오르는 생각이란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 생각이 미치자 민규는 문득 자신의 삶을 복기하듯 되돌아봤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섬기는 신을 향한 열광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주어진 기회라면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붙잡으며 살아왔다. 세간에서 정략적 결혼이라고 손가락질할 지라도 민규는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위한 신성한 한 결단으로 믿어 온 것이다. 하지만 삶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신의 영광으로 귀결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벽한 절망, 혹은 비탄의 매듭으로 마무리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 민규 앞에는 한국교회에서 몇 안 되는 담임목사, 교회 당회장 정도가 누릴 수 있는 호사의 극치가 담긴 집무실이 펼쳐져 있고 자신 밑으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부목사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허울뿐인 영광이라고 해도 민규에게 주어진 현재는 외적 성과로만 보면 화려한 재기를 떠올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지방 광역시 중 하나인 율주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민규는 맞은편에 자신을 마주  보고 서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서주. 처음 봤을 때부터 스산한 냉기를 품은 한 영혼, 그 일그러진 영혼의 응달이 눈에 뜨였다.

민규를 찾아온 건 윤서주 혼자만이 아니었다. 신애원 원장 남궁숙애와 그녀가 직접 데리고 온 두 명의 여자 집사, 그리고 그녀들의 피붙이로 보이는 신애원 원생 두 명이 민규의 집무실을 가득 메웠다.

남궁숙애의 말투나 행동은 시종 고분했다. 지난번, 김인철 장로를 앞세워 으르렁거리던 표독스런 늙은 여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동물 농장을 경영하는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 고유의 위압은 여전했다. 하지만 민규는 지금 남궁숙애의 반응이나 그의 거슬리는 말에 신경을 할애할 겨를이 없었다. 민규는 자신이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윤서주에게 집중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소녀는 처음부터 시선을 피하거나 상대를 향한 자신의 격렬한 충동을 감추려는 의도가 없어 보였다. 윤서주는 내내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민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윤서주로부터 느껴지는 충돌의 감각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린 건 오히려 민규였다. 남궁숙애가 꺼낸 말을 듣자마자 민규의 시선은 광기와 폐허의 정서로 충만한 윤서주에게서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 집사의 손을 잡고 몸을 뒤로 숨긴 신애원 원생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이의 왼쪽 머리카락 일부가 불에 그슬린 흔적이 또렷했고, 무엇보다 아이는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남궁숙애는 이 상황을 한마디, 한 문장으로 담백하게 정리했다.

- 같은 방을 쓰는 아이의 몸에 불을 질렀어요.

- 예?

- 말하자면 아예 불태워 죽이려 했다는 거죠.

- 윤서주. 저 학생이요?

- 학생은 무슨.

윤서주의 옆에 앉은 남궁숙애가 꼬고 앉은 다리의 방향으로 반대로 고쳐 앉았다. 윤서주는 내내 민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윤서주. 이 아이는 신애원이 아니었음 지금 정신병원에 있거나 소년원에 있어야 했을 거에요. 아까 말씀드렸죠. 윤서주. 이 아이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남궁숙애가 한 말, 그 말을 어떻게 잊겠는가. 유재환 목사를 만나고 난 그 주의 토요일. 다시 민규를 호출한 남궁숙애가 한 말의 핵심은 윤서주가 신애원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3년 전, 윤서주는 같은 신애원 원생 중 한 아이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심장에 칼이 박힌 아이는 그 자리에서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손써 볼 틈도 없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윤서주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인정했고,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출동했고, 법적 보호자가 따로 없는 탓에 신애원 원장과 교사들이 동행한 경찰 조사가 이뤄졌다. 그렇게 윤서주에게 내려진 형벌은 집행유예에 해당하는 청소년 보호관찰 2년에 신애원의 법적 보호 아래 정신과 치료 병행이었다. 피해자의 부모가 시종 처벌을 원치 않았다는 점, 윤서주의 심리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 신애원이란 공신력 높은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보호와 감시가 있다는 점, 그러한 정황들이 정상참작에 도움을 준 것이다.

- 저 아이, 그렇게 같은 시설 아이를 죽이고도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어요.

남궁숙애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윤서주가 향하는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민규를 노려봤다. 민규의 시선 역시 자력처럼 또다시 윤서주에게 향했다. 붉은 실핏줄이 흰자위를 완전히 내리누른 두 눈동자가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들끓었다.

- 목사님은 적어도 이상주의자는 아닐 거라고 믿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교회나 장애인 복지시설이 적어도 굴러가려면 어느 정도의 잡음과 혼란, 모순을 용납해야 한다는 점을요.

-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 김정은 선생이나 한영호 장로가 목사님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접근했을까요. 그들은 목사님도 잘 알고 있는 유재환, 그 미치광이 목사의 이상주의에 완전히 세뇌되어 버린 기계들이에요.

남궁숙애의 그 말은 이미 민규가 어떤 경로와 현실에 눈뜨고 있음을 짐작한 상태에서 들려오는 일종의 경고였다. 민규는 남궁숙애의 이어지는 다음 말에 답하지 않았다. 남궁숙애가 말을 이었다.

- 목사님의 눈엔 김인철 장로, 그 양반이 천하에 쓰레기이거나 악마로 보이겠죠. 맞아요. 그럴지도 몰라요.

남궁숙애에게서 예상 밖의 말을 듣자 민규가 다소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더러운 때를 묻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특히 이런 아이들처럼 누군가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들은 인권, 평등, 차별을 앞세우는 이상주의보다 한 끼의 밥과 하루의 잘 곳이 더 필요하단 말이죠. 그게 친구를 칼로 찌르고도, 친구 몸에 불을 지르고도 계속 이곳에 남아 먹고 잘 수 있는 힘이에요. 알아듣겠어요. 정민규 목사님?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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