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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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몸속에 스며든 독소를 빼내야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민규는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악마의 잔치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민규는 몸의 반사작용을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VVIP룸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끝까지 지켜보던 고동식의 비열한 무표정조차 더 이상 민규의 본능을 제어할 순 없었다.

민규의 눈에 비친 지옥도의 왕은 의심의 여지없이 김인철이었다. 60대 초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벗은 몸은 다부지고 단단해 보였다. 강철을 오랜 시간 용광로 속에 넣고 담금질한 듯한 강인함이 몸 곳곳을 오만하게 지배했다. 김인철은 악마의 의식을 집도하는 의사답게 시종 진지했으며, 타협이란 걸 몰랐다. 한없이 약하고 비루한 버린 자들, 부모조차 포기한, 그래서 율주시의 어느 한 명 이를 문제시하지 않으려는 집단 최면의 희생양들이 자신의 눈앞에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놓인 현실 앞에서 김인철은 특별히 더한 강인함을 선보였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 절규가 방 안 전체를 끔찍한 핏빛으로 물들였음에도, 그렇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음에도 김인철은 그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민규는 윤서주의 역할을 보며 경악했다. 윤서주는 김인철에게 있어 가장 표독스러우면서도 정복욕을 불러일으키는 맹수였다. 김인철은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를 자신의 수중에 넣고 피고름을 쥐어짜 내는 성취욕을 즐기기 위해 저항하는 윤서주를 더 잔인한 방법으로 몰아붙였다. 이 자리에 모여든 다른 이들은 이런 김인철의 엽기적 행위의 조력자, 공범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절규의 신음을 쏟아 내면서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윤서주가 내내 발작하듯 바라보는 한 대상인 민규 역시 김인철처럼 알몸 차림이었고, 그 역시 더는 곤두박질칠 길이 없는 저주의 골짜기를 뒹구는 악마의 공범이었다.

악마의 공범인 민규가 윤서주의 눈길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나갔다. 방을 빠져나올 때 자신이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허겁지겁 챙겨 갖고는 나왔지만 화장실에서 차려입는다 해도 흩트려진 옷매무새까지 정돈하진 못했다.

화장실 양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시작한 민규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몸속 체액의 한 방울까지 쏟아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게워 내고 또 게워 내도 충격적인 공범 의식의 한 장면이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규하는 파탄 난 영혼의 희생양 윤서주, 그 소녀의 야속함으로 점철된 눈빛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민규에게 그 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흠칫 놀란 민규가 힘겹게 고개 들어 검은 그림자의 상대를 바라봤다. 김인철이었다. 김인철이 무표정한 낯빛을 하고서 양변기를 붙잡고 쓰러져 있는 민규를 내려다보았다. 민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고 김인철을 바라보는 시선의 지속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빛의 역광을 받아 드러난 김인철의 구릿빛 얼굴, 그 이목구비의 틈새에서 이글거리는 무정한 눈빛은 민규의 고백 속에서는 단연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 사람이라면 저럴 수 없어. 저래선 안 돼.'

하지만 사람이 아닌, 생존의 절규를 잡아 삼킨,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진화해 가는 김인철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민규의 눈시울을 붉게 적셨다. 밀려드는 독한 취기 탓에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설 순 없었지만 민규의 정신은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 처음엔 다 슬프고 역겨운 거요. 정민규 목사.

- 무슨 말입니까?

- 당신은 눈앞에 펼쳐진 이 아수라장을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로 생각하겠지. 그래 맞소. 난 성에 중독되었고, 권력을 잡는 데 내 인생의 모든 걸 쏟아부은 노욕의 정치인이요.

- …

- 오늘의 이 여흥들은 일식집 건물 안에 설치된 곳곳의 카메라가 한 장면도 빼놓지 않고 기록할 것이요. 그리고 이 기록은 모두에게 공범과 가해자의 연대를 가져오겠지.

민규는 김인철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 궤변을 당장 다물라는 최소한의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바지를 착용한 김인철은 화장실 세면대로 걸어가 손을 씻으며 말을 이었다. 거울 너머로 비치는 창백하게 질린 민규의 얼굴을 바라보며.

- 정 목사. 공범 의식이 피의 제사를 요구하고 그 피의 제사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죄의식의 굴레로부터 방면해 준다는 걸 알고 있소?

-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겁니까.

- 물론.

씻은 손을 수건으로 닦던 김인철이 돌아서서 민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몸을 숙이고 손을 뻗어 민규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김인철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민규는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격렬한 떨림에 사로잡혔다. 김인철이 민규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얼굴을 대고 말을 이었다.

- 정 목사. 당신이 쓴 논문, 썩 괜찮더군. 잘 읽었소.

- 장로님도 그 논문을 읽었습니까?

- 피의 제사에 아들을 제물로 내어놓는다는 발상. 내게는 그 발상이 믿음, 사랑 그 따위 사탕발림이 아니라 힘으로 다가왔소.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힘.

- …

- 희생양들이 고통받는 곳에서 악마는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고, 다수의 우매한 백성들은 그 악마에 치를 떨거나 때론 악마가 가져다주는 권력과 힘을 적당히 긍정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거요. 그게 내가 당신 논문을 보며 깨우친 교훈이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장로님.

- 말하시오.

- 논문을 잘못 읽으셨어요.

- 뭐?

- 논문의 마지막은 그게 아니에요.

김인철이 천천히 민규에게서 물러섰다. 점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김인철의 마음속으로 교묘히 스며들었다. 민규가 떨리는 입술을 열어 말을 이었다.

- 그 피의 제사는 신의 뜻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어요.

- …

- 우리의 신은 희생양들의 피를 통해 만족감을 얻으려 했던 악마와 그 악마에게 기생하던 민중들의 기대를 산산이 깨 버렸어요. 그게 제가 쓴 논문의 결론이에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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