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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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환 목사님은 현재 전체를 위한 회개 기도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한영호와 민규가 다시 만난 곳은 한영호의 한의원, 어둑어둑한 그의 연구실이었다. 유재환을 만나고 돌아오자 하루의 시간이 빠르게 휘발되어 버렸다. 평일이었지만 한영호는 한의원 문을 굳게 닫아 놓았다. 예민한 짐작이 아니어도 한영호가 한의원 경영에 거의 관심이 없는 근거는 한의원 내부 풍경만 얼핏 살펴도 짐작 가능했다, 진료 책상이나 의료 기구 곳곳에 한가득 쌓인 먼지가 그 증거였다. 더욱이 한의원은 민규가 짐작하기에 한영호 외에는 다른 직원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지쳐 있던 민규가 한의원 내부 풍경을 보며 상념에 젖어 있을 때였다. 차를 한 잔 내 온 한영호가 유재환에 대해 꺼낸 첫마디는 회개라는 말이었다. 유재환 이름 석 자를 떠올리자 민규는 자신의 눈과 귀가 또다시 정오에 찾았던 기도원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래서일까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민규가 물었다.

- 전체를 위한 회개 기도요? 전체라 하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겁니까?

민규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런 민규의 궁금증에 대한 한영호의 답은 거침이 없었다.

- 율주제일교회 전 교인이 범한 죄업을 대신해 예수님의 자비와 속죄를 구하시겠다는 겁니다.

민규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의 목소리 톤은 점점 더 가라앉았고 조심스러워졌다.

- 그 전 교인의 범위에 김인철 장로도 포함되는 겁니까?

이번에도 한영호의 답엔 망설임이 없었다.

- 물론입니다.

- 김인철과 같은 악마를 대신해 유재환 목사가 피의 제물이라도 되겠다는 건가요?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을 하는 내내 민규의 마음속 울분이 들끓어 올랐다.

-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어요. 율주제일교회에서 유 목사님이 물러나고 난 뒤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는지 말이에요.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내내 앞장섰던 초선 국회의원 김인철이 대부분이 율주시 주민인 신도들을 떡값으로 회유하여 이곳을 어떻게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다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악마들을 용서해 달라는 회개 기도를 한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민규가 울분을 쏟아 내는 동안 한영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상대인 민규를 다그치거나 힐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그의 답은 민규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강렬했다.

- 유 목사님의 회개 기도가 그만큼 불가능한 것처럼 목사님이 작성하신 논문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건 사실 아닙니까?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자신의 논문 이야기가 나올 때, 민규는 숨이 막혔다. 아브라함의 믿음, 인신 제사를 넘어서는 초극의 믿음, 논문 속 문장들이 민규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한영호가 말을 이었다.

- 유 목사님은 자신의 부덕함으로 인해 율주제일교회를 지켜 내지 못했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셨습니다. 십자가 정신을 어떻게든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셨구요. 전 그런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괴로웠습니다.

- 어째서죠?

- 다녀오신 기도원의 열악한 환경을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말을 약간 흐린 한영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민규의 눈빛에도 기도원 컨테이너 내부가 재연되었다. 깨끗한 물 한 잔,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찾을 수 없는 춥고 습한 컨테이너 안에 있던 유 목사의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몸이 민규의 눈에서 일렁거렸다. 숨을 고른 한영호가 말을 이었다.

- 유 목사님은 이제 한계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 그 말씀은 더 이상 기도원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유 목사님을 기도원에서 도시로 모셔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 그거야말로 이상에 불과하며, 악마와 타협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 악마와의 타협 … 이라고요?

- 김인철은 … 끝없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고급 빌라와 전별금을 마련해 놓고 언제든 돌아오면 원로목사로 대우해 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떠들고 다닌 겁니다.

- ……

- 아시겠지만 유 목사님이 김인철과 타협해 원로목사 대우를 받게 되는 순간, 유 목사님은 악마가 뿌려 놓은 유혹의 덫에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그럴수록 김인철은 자신의 배후가 악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라고 간증할 테구요.

- 이건 … 유배예요. 한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일이라고요.

- 이 불가능한 미로 속 탈출구를 제시한 게 바로 목사님이십니다.

- 장로님.

민규가 한영호를 향해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

- 도대체 제가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 목사님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묻겠습니다.

- ……

- 목사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믿으십니까?

- 예?

- 목사님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기록한 피고름인 논문, 그 논문 속 아브라함의 믿음을 실천할 용의가 있으시냐고 물었습니다.

- 실천할 용의… 그래요. 용의는 있습니다. 하지만.

- 하지만 뭐죠?

- 계속 말씀드렸지만 전 아무 힘이 없습니다.

- 왜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 전 … 단지 계약직 목사에 불과합니다. 제 논문이 그 악마들의 마음을 티끌만큼이라도 교화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민규가 항변하듯 물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민규의 진심을 읽었던 걸까. 한영호가 잠시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 아브라함의 믿음을 믿으신다면 그 안에 극복의 힘도 함께 있습니다.

- 그게 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 말씀드린다면 … 하실 수 있겠습니까?

- ……

- 그 믿음. 실천하실 수 있겠습니까?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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