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38

- 그 사람이요?

민규가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란 표현을 쓰고 말았다. '그 사람'이란 말을 꺼내는 순간 민규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어 한영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한영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민규의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무덤덤했다.

한영호가 말한 사람은 유재환, 율주제일교회 초대 담임목사였다. 유재환이란 말을 듣자 민규는 자연스럽게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 양 권사의 손을 잡고 교회를 처음 찾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날은 민규가 난생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던 날이었다. 그건 그의 어머니 양 권사도 마찬가지였다. 술, 도박, 여자에 취해 있던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어린 민규를 데리고 집을 나왔던 양 권사였다. 서울에서 도망치다시피 민규를 데리고 내려온 율주시는 사실 그녀, 양 권사에게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율주시에 도착한 양 권사가 붙잡아야만 했던 유일한 길은 하나님뿐이었다. 대학 시절과 처녀 시절, 자신에게 빛과 희망의 이름으로 함께했던 신앙이 남편과의 결혼으로 인해 짓뭉개지고 말았다. 양 권사는 돌아온 탕자가 된 마음속 흐느낌을 가득 안고 교회를 찾았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그렇게 율주시에 오자마자 찾았던 율주제일교회의 주일 대예배 설교 시간. 따로 초등부 예배에 등록하지 않고 양 권사의 손길에 이끌려 장의자에 앉았던 민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낮고 낮은 강대상이었다. 민규가 고개를 쭉 내밀어야만 강대상 위에 서 있는 작고 마른 체형의 한 남자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강대상은 지금의 교회 구조와 가장 다른 특징이었다. 대예배실 전체에서 강대상의 위치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지금처럼 거의 천장에 닿을 듯 강대상이 올라서 있지 않았다. 그때엔 강대상과 장의자의 높이 차이가 거의 없었다. 더욱이 강대상 위에 올라서 있는 담임목사 유재환의 체구는 평범한 일반 남성에 비해서도 왜소했다. 초라할 정도로.

그런데 그날을 민규는 잊지 못한다. 강대상이 형편없이 낮아서도 아니었다. 유재환의 체구가 특별히 왜소하다는 특징 때문도 아니었다. 민규가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목사 유재환의 통곡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천명에 가까운 남자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강대상을 두들기며 눈물과 콧물이 뒤엉킨 채 설교에 열중했다. 설교를 하는 내내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민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히 기억에 남았다. 그 울음은 진심이라는 것. 형언할 수 없지만 가득 차오른 비통함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쏟아 내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점이었다.

진심을 담은 유재환의 설교 시간 내내 민규의 손을 놓지 않던 어머니 양 권사도 함께 울었다. 그때 민규의 머릿속을 맴돌던 두 단어. 그 두 단어가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죄와 용서. 두 단어였다. 민규는 다시 한 번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울먹임과 함께 뒤엉킨 유재환의 핏빛 절규를. 그 절규가 설교 막바지에 격정적으로 끓어올랐다.

'우리의 이 죄. 끝을 모르고 펼쳐진 짐승보다도 못한 이 죄, 이 죄를 씻어 내려고 우리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십자가 도상 위에 검고 붉은 피를 쏟아 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면서까지 우리를 용서하려 했던 그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에 앞서 생각해야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고 험악한 죄를 지었는지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

- 제가 왜 목사님을 이 지옥에 초청했는지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 지옥… 그렇죠. 지금 제가 서 있는 율주제일교회 강대상, 여기 지옥, 맞습니다.

민규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영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질문이 생겼다.

- 그런데 제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절 초청하신 거죠?

민규의 질문에 답하던 한영호의 눈에서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안광이 섬뜩하게 비쳐졌다.

- 목사님의 논문 속 이론과 유재환 목사님의 신앙 정신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유재환의 이야기로 돌아온 걸까. 민규의 정신이 처음 유재환의 설교를 들었던 순간에서 현재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민규가 기억하고 있는 율주제일교회 초대 담임목사 유재환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민규의 신대원 입학이 이뤄지던 그해, 유재환은 교회에서 물러났다. 그 떠오름의 순간 민규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한영호에게 말했다.

- 장로님.

- 말씀하세요. 목사님.

- 전 이단이 아닙니다.

단호한 결의를 품고 꺼낸 말이었다. 이단이 아니라는 말. 민규는 지역만이 아닌, 메이저 언론에서도 떠들썩하게 소개되던 기사 제목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율주제일교회 유재환 목사. 교회 전도사 자살 방조 혐의와 문제 많은 이단 교리 추문으로 인해 끝내 파면'

- 그분은 이단이 아닙니다.

- 그 사람이 이단이라는 건 교회와 교단, 총회와 세상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사안입니다.

- 한 가지만 물을게요.

- …… ?

- 유목사님이 어떤 이단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 예?

- 보통 이단 판정을 받을 때는 이단 사상이 충분히 검증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유 목사님의 이단 판정은 한마디로 마녀사냥이었어요.

- 마녀사냥이라고요? 그럼, 그 사건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 목사님.

- 청년 전도사 다섯이 죽었어요. 다섯 명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다고요. 그중엔 제가 아는 교회 형도 있었습니다.

- ……

- 그 책임이 유재환 목사. 그 사람에게 없다고 할 수 있나요. 말씀해 보세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