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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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아님, 돌려서 말씀드릴까요?

- …

- 민규 형. 아. 아닌가. 이젠 목사님으로 불러야 하지. 미안.

처음엔 장난스런 관심으로만 생각한 모양이다. 율주시청 옆에 위치한 율주 경찰서에. 고교 졸업 때부터 근무했던 민규의 교회 청년부 후배 김상현 경정은 사실 민규가 이곳 율주에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둘은 경찰서 지하 식당에서 만났다. 월요일 오후 3시. 점심을 먹기도, 그렇다고 저녁을 준비하기도 애매한 시간의 식당은 주방조차 텅 비어 있었다. 비밀스런 이야기, 밀담을 나누기에 딱 적당한 공간이었다. 한사코 표정을 풀지 않는 민규를 보며 상현도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그 역시 진지해졌다.

- 형. 난 형이 율주에 들어온지도 몰랐어요.

- 그게 이번 사건에 대해 묻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

- 기껏해야 몇 개월, 아니 한 달도 안 된 거 아니냐구요.

-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끝내 민규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난처해하는 상훈의 얼굴이 그대로 민규의 두 눈에 정확히 와 박혔다. 몇 년 만에 처음 찾아온,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누구도 만나 주지 않던 교회 선배다. 더구나 그는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다. 그런 그가 신애원 관련 사건에 대해 묻는다는 게 어떤 위험 부담으로 작용할지 민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상훈의 말은 민규를 더욱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작금의 상황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설득의 의지로 다가왔다. 상훈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대형 식탁 위에 올려놓은 붙잡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 난 형이 다치는 게 싫어서 그래.

- 내가 아는 게 다치는 게 확실한 거냐?

- 당연한 거 아니야? 형. 김인철. 그 사람은 율주시의 왕이야. 누구도 못 건드려. 서울이나 부산같이 규모가 있는 곳이야 견제 세력이 받쳐 주니까 왕들이 여러 명이지만 여긴 그냥 한 명에게로 올인되어 있어.

- 그래서? 조사도 않겠다는 거야? 김 선생이 자료까지 만들어 줬다며.

- …

상훈이 즉답을 피했다. 민규는 그 순간, 신애원에서 말한 정은의 말들을 기억했다.

*

'이런 파렴치한 것을 보고도 신고를 왜 안 해요? 김 선생. 당신도 정상이 아니야!'

'누가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해요?'

'그럼… 신고를 했다고요?'

'물론이에요. 지금 본 동영상 자료 들고 경찰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증거불충분… 아이들의 자작극으로 결론 맺었죠.'

'그게… 말이 돼요? 이게 아이들의 자작극이라고?'

'아이들 부모가 적극적으로 증언했어요. 지적장애를 심하게 앓는 아이들의 극심한 심리 불안, 그 병리적 현상으로 성적 자학 행동을 벌인 거라고.'

'그럼 저 악마는! 저 악마는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증, 거, 불, 충, 분'

'뭐?'

'증거불충분이요. 그리고는 더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아요.'

'…'

'이게 현실이에요. 알겠어요?'

*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이게 현실이라는 말. 민규는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근대화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전쟁 중도 아니고 독재자가 통금 시간까지 만들며 주민들을 통제하던 때도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라니', 성인 남자가 자신의 엽색 취미를 위해 지적장애아들을 성적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데도, 그리고 버젓이 그걸 동영상에 담아 감상까지 하는데 어떻게 이게 현실일 수 있단 말인가. 상현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 민규에게 조심스럽게 한마디했다.

- 형은 오랫동안 미국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 율주, 좆나 무서운 곳이 되어 버렸어. 그거 알아?

- 뭐가 무서운데?

-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거든.

- 감시?

- 시의원에서부터 말단 공무원, 제법 규모 있는 건설 기업에서부터 구멍가게 사장까지 모두 원전 허가받고 정부로부터 전폭 지원받을 때, 적어도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은 챙긴 작자들이야.

그 순간, 민규도 원치 않는 사이 그의 머릿속에선 아이들의 필사적인 발버둥과 비명 소리, 바닥과 벽으로 튀어 오르는 핏방울들이 떠올랐다. 끝으로 그 아이들을 짓밟는 악마 김인철의 구릿빛 알몸이 떠올랐다. 짧게 자른 머리에 굳게 다문 입술, 두꺼운 얼굴 가죽까지. 김인철의 그런 모습은 피도 눈물도 없는 늪지대의 포악한 왕. 악어를 떠올리게 했다. 민규의 마음 상태를 아는 걸까. 아님, 넘겨짚는 걸까. 상현이 말을 이었다.

-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목덜미를 쥐게 만든 게 누구겠어? 그 사람. 김인철의원이잖아. 지 아버지 때부터 그렇게 쳐 먹더니 이젠 아예 자손 대대 물려받는 왕국을 만들어 버렸어.

- 그래서.

-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딴 동영상 백 개는 더 있어. 그 인간 취미가 좆같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걸리겠어? 검사든, 사장이든 한번쯤은 그 야동 속의 주인공이었을 텐데.

- 그게 무슨 소리야?

- 상납. 모르겠어?

상납. 그 말이 맴도는 순간 민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언론은 왜 침묵하는지. 검찰 측에서는 왜 기소조차 하지 않는지, 그리고 상훈은 왜 조서 작성을 포기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거의 마지막 수순처럼 멍한 표정이 된 민규가 한마디 물었다. 어떤 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상현 역시 민규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너도 그중 하나야?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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